정신적 스승은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일까?

용서
텐진 갸초(달라이 라마).빅터 챈 지음, 류시화 옮김 / 오래된미래 / 2004년 9월

달라이 라마가 쓴, 또는 그와 관련되어 나온 저작으로는 처음 읽게 된 책이다. 오래 전에 달라이라마가 풀이한 반야심경을 읽은 적이 있지만 대부분 불교 이론적인 부분이었고 잘 이해하지도 못했었다. 이 책은 그가 실제 생활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자세히 보여주고 인터뷰라는 형식을 통해 달라이 라마가 지닌 ‘사상’의 핵심을 드러내 준다. ‘성인’을 가까이서 보여줌으로써 그를 직접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훨씬 친근감 있게 이 ‘성인’과의 정서적 거리를 좁힐 수 있게 도와주는 셈이다.  

티벳 불교와 달라이 라마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이 책의 위와 같은 의도들이 독자들에게 잘 전달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나 또한 그러한 독자들 중의 한명이라고 생각한다. 용서가 개인에게 지니는 현실적인 의미에서 출발해서 그것의 궁극적인 의미를 ‘공’과 ‘상호의존’을 통해 설명하고, 또 실천방법으로는 ‘자비’와 ‘친절’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용서’라는 것이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행동 중의 하나가 아닌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한, 종교의 (불교의) 궁극적인 본질과 통하고 있음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결국 그는 ‘용서’를 통해 불교의 핵심을 전파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그가 활용하는 지적이고 분석적인 명상의 방법에 호감을 많이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책이 가질 수 있는 난감함, 또는 위험성 역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용서’가 가진 그 거대한 의미와 그것이 행해졌을 때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거듭하게 된다. 이렇게 좋은 ‘용서’를 왜 이제까지 행하지 못했던 거지? ‘에이, 어리석은 ○○’. 그런데, 책장을 덮고 나의 현실로 돌아와서 보니, 일상의 자잘한 틀어짐, 마음 어딘가에 잠자고 있는 누군가에 대한 깊은 분노, 구조적으로 행해지는 정치경제적 죄악들 그 어느 곳에 아름다운 ‘용서’를 들이밀어 보아도 그 감동의 불씨는 이내 사그러들고 마는 것이다. 왜일까?  

그가 보여주는 용서의 경지는 너무나 훌륭하지만, 그 궁극의 경지와 내 자신의 수준, 현실 적용가능성 사이에는 거대한 공백이 자리하고 있다. 그 공백을 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련과 도전, 시행착오들이 필요할 것이다. 이 책이 보여주는 감동적인 용서의 예들은 참으로 숭고하지만, 한발짝 떨어져서 생각하면 정말로 처참하고 끔찍한 역사적 상황들의 소산이다. 이러한 용서의 ‘승자’들에게 정말로 존경을 보내고 싶지만, 그들이 겪었음직한 상황과 ‘용서’에 까지 이르게 된 그 과정들을 생각하면 정신이 아찔하다. 물론 그 길이 옳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런 얘기들을 너무 쉽게 제시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토록 심각하고 근본적인 이야기를 이렇게 말랑말랑한 형태로 해도 되는 걸까? 다양한 수준의 대중을 한꺼번에 대하는 정신적 스승의 가르침은 항상 이런 식일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이 책이 어떤 독자들에게는 ‘용서’에 대해 너무 감상적인 태도로 접근하게 할지도 모르겠다는 우려가 든다. 또한 그런 접근이 개인에게 때론 피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책에 나오는 북아일랜드 소년의 경우 ‘용서와 화해’에 대한 달라이 라마의 연설을 듣고서 한껏 정서적으로 고양이 되어 이전에는 피해 다니던 다른 교파 지역을 ‘용서’라는 숭고한 무기를 가슴에 지니고 씩씩하게 걸어들어갔다가 그쪽 아이들에게 집단구타당하는 장면은 좋은 예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런 과정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내가 아직 가슴속에서 용서할 수 없는 상태 또는 단계에서 용서에 대한 강박은, 또는 지나친 당위는 자신의 감정에 대한 억압이나 무시로 작용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자신의 감정을 속이게 되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얼마 전 한겨레 신문에 실린 ‘착해빠져도 암이 많더라’는 한면짜리 기사를 보면 그러한 감정억압이 병을 부를 수 도 있음을 잘 보여준다.  

- 이런 성격 ‘암’을 부른다.

1) 사람들의 행동을 언제나 이해하려고 한다.

2) 모든 대인관계의 갈등을 이성으로 극복하려고 한다.

3) 감정을 상하게 한 사람한테도 이성적으로 대하고, 그를 이해하려고 한다.

4) 어떤 사람이 자신의 욕구를 좌절시켜도 그를 이해하려고 한다.

5) 어떤 상황에서도 이성적으로 행동하고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6)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도, 그 표현을 하지 못하며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7) 상대방을 공격할 충분한 이유가 있더라도 이성을 통해 공격 반응을 억제한다.

                                          - 2010년 2월 2일자 한겨레 신문

전에 현경이 쓴 ‘미래에서 온 편지’에서도 특정 종교전통 아래 있는 여성들이 우울증이 많다는 내용이 있었다.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억압하는 종교적 전통 아래서 우울증이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또한 특정한 정치적 상황에서 섣부른 용서는 거대한 역사적 반동을 불러올 수 있다. 현재 한국의 극우지배집단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생명을 거리낌 없이 죽이는 강도흉악범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다. 물론 그들도 어느 시점에 가서는 용서해야 하겠지만, 그 전에 그들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많은 과정과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왜 중국의 루쉰이 ‘미친 개는 몽둥이로 다스려야 한다’라고 했겠는가? 약간은 비약일 수 있지만,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지금 전개되고 있는 정치적 상황도 이런 사실을 뒷받침 한다고 볼 수 있다.   

달라이 라마는 훌륭한 영적 스승이고 그의 ‘용서’는 훌륭한 책임이 분명하지만, 그 내용 중에는 빠질 수 있는 함정들이 있음도 잊어서는 안되겠다. 정신적 스승은 ‘화내지 말라’, ‘용서하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일까? 다른 적절한 표현을 해주면 안되는 것일까? 
 

정말 깊은 사유와 통찰

아름다운 파괴 - 깨달음과 사유의 인도 ㅣ 이상의 도서관 50
이거룡 지음 / 거름 / 2000년 10월

읽으면서, 계속해서 드는 생각. . . .이 사람은 진짜배기구나, 정말 깊은 통찰이구나. . . . 하는 감탄뿐입니다. 종교와 진리의 절대성과 상대성, 체념과 초월의 차이, 여자와 몸에 대한 해석, 요가, 힌두교와 불교의 차이점 등등 굵직굵직한 주제들이 타래에서 실 풀리듯이 줄줄 풀려나옵니다. 사실, 모두 어려운 주제들이라 이 한권의 책을 읽고 흐름과 윤곽을 잡기는 힘들지만, 우리의 일상 생활, 자본주의 문화와 연결해서 풀어주는 이야기들은 지식의 습득을 떠나서 우리를 문득 성찰의 방석위에 앉게 합니다.

강의 중에 지나가는 이야기로 “ 깊이는 어둠에 있다 ” 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전등 불로 인해 밤을 잃어버린 우리가 진정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밝고, 투명하고, 계산에 맞아떨어지는 것만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서구의 합리주의 사고가 우리에게 밝음과 투명함을 주는 대신에 깊이는 잃어버리게 하고 천박한 문화를 갖게 했다는 비판을 합니다. 사랑, 죽음, 신앙. . . 그 어둡고(玄) 묘하고(妙) 혼돈스러운(chaos) 것들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느냐고 되묻고있지요.

“ 어둡지 않으면 깊을 수 없다. ' 사실, 읽자 마자 '그렇군!', 하고 공감이 가는 이야기 였습니다. 그것을 사람에 비추어 보면, 삶의 “어둠” 의 시간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은 “깊이”를 가질 수 없다는 의미로도 읽히거든요. 그런데, 삶의 어둠이라는 것이 참 고통스러운 시간이잖아요? 결국 “ 깊이 ” 로 가는 과정에 그런 고통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속이 깊다는 것은 그만큼의 어둠을 갖고 있다는 것인데. . 좀, 그렇네요. . . 티없이, 고생 없이 밝게 큰 친구들. . 그늘이 없어서 좋긴 한데, 보통은 2% 부족하기는 합니다. 둘러보면, 속도 깊고, 세상물정도 알만큼 알면서도 긍정적이고, 밝은 그리고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는 사람을 우리는 높이 평가합니다. 그런 사람이 옆에 있으면 힘이 나지요. 하지만, 드문 사람들이지요. 깊으면서도 밝다? 그런데, 이건 어떻게 가능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