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
한나 렌 지음, 이영미 옮김 / 엘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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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애틋하고 간절해진다.
과거의 혹은 미래의 이야기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소녀들은 예상치 못한 힘을 지니고 그 힘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거나 누군가를 위해 무언갈 포기한다. 나의 세계와 다르다면 그 세계는 경계해야 할 적과 같은 것이랄까. sf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인공지능의 놀라운 능력이나 달라지는 시공간에 마주할 때마다 왠지 ‘소실’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면서 그래도 그 세상에도 감정이란 것이 남아있겠지 라는 생각을 한다.

정세랑, 천선란 작가님의 멋진 추천멘트를 받은 감성SF라는 띠지도 눈에 띄지만, 보는내내 김초엽 작가님의 단편들을 모아놓은 #우리가빛의속도로갈수없다면 도 자꾸 생각난다. 한나 렌 작가님이 확장한 6편의 소설에 나오는 아직 도달하지 않은 세계들과 불완전한 인물들은 처연하게 아름답다. 특히 첫번 째로 실린 표제작과 마지막 ‘빛보다 빠르게, 느리게’는 유난히 강렬하다. SF소설에 관심 있다면 추천. 그냥 궁금해도 추천.

덧, 이 책의 일본 출간 당시 5쇄까지 찍었는데 인세를 모두 일본 전역을 큰 충격에 빠뜨렸던 - 작년 방화사건으로 큰 피해를 겪은 교토 애니메이션에 기부했다고 한다. 자신의 상상력의 토대가 되어준 곳이라는 이유로. 역시 2019년 일본 베스트 SF 1위에 빛나는 작가님 인정.



“ 이 매끄러운 세계의 인간은 모두 절대적인 이상향에서 살고 있어요. 고통이나 슬픔을 느껴도 그것들이 없을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고, 실제로는 언제든 그 가능성을 실현시킬 수 있죠. 사랑받지 못하면 사랑받는 현실로 가면 됩니다. 영원한 생명을 원하면 그것을 이룬 현실로 옮겨가면 되고요. 그들에게 있어, 하나의 가능성만으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저차원 생물이고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자 공포의 대상이에요. 무엇보다 이 세계의 적들이에요.”
(43p,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

2600만 분의 1의 세계.
나는 1초간 숨을 들이마시는 것만으로 300일이 사라지는 세계에 있었다.
희망적인 관측은 산산이 부서졌다. 한번 감속 세계에 걸려들면, 오토바이 속도를 낮춰도 탈출할 수 없었다. 멈춰 서도 분명 마찬가지겠지.
(412p, 빛보다 빠르게, 느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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