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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평전 - 개정판
조영래 지음 / 돌베개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던 사건이 세인에게서 잊혀질 때쯤이면, 시간의 뒷길에서 자그마한 양심의 소리가 강렬하게 피어오르는 듯하다. 지금으로부터 약 13년 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보며 '60~70년대의 왜곡된 사회상을 처음 접했던 기억이 문득 떠오르니 말이다. 그러나 어린 나이로 그 당시의 사회부조리와 모순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그 때 나의 일기장에는 그 당시의 충격을 다음과 같이 고스란히 옮겨놓았을 뿐이었다.
'세상에는 불쌍한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해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자그마한 가슴속에 깊은 여운을 남긴지 어언 13년이 되어 간다. 그러나 시간의 장단을 무색케 할 만큼 '전태일 평전'은 13년 동안 묻혀있던 나의 양심을 자극했다. 소위 말하는, '밑바닥 인생' 속에서 전태일은 지고지순한 인류애를 키워왔으며, 모든 것을 빼앗기고 모든 것으로부터 거부당하고 밀려난 소외된 인간의 아픔들이 그의 외마디 절규를 통해 내 가슴 속으로 파고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한 청년의 심지에서 그칠줄 모르게 타오르는 '역사인식'과 '인간사랑'에 그동안 사회의 껍데기만 보며 욕심만 키워온 나에게 값진 교훈을 준 셈이다. '무언가 잘못된 것 같다.' 라는 조그마한 자각 속에서 전태일은 사회의 부조리를 깨치기 시작했다. '60~70 년대에 한국 노동자들을 지배했던 괴물자본주의 논리 속에서, 노동자이기에 앞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권리와 존엄성을 찾으려 했던 그는 '진정한 승리자'이리라.
'투쟁을 위한 투쟁'이 아닌, '인간을 위한 그의 투쟁'이었기에, 전태일이 상아탑의 배움의 끈은 짧았어도 오늘날 수많은 지성인들이 그를 추모하고 사랑하는게 아닐까.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평화시장'에서 그의 육골은 참담하게 불타오르고, 또 한 편으로는 자기 소임을 다한 데 따른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했다.
이 책 속에는 자신의 몸도 불사를 정도로 커다란 전태일의 사회에 대한 사랑과 정의감이 눈부시게 빛을 발하고 있고, 조영래 작가의 냉철하면서도 섬세한 묘사가 마치 그의 숨결과 하나가 되어 살아 숨쉬는 듯 읽는 이로 하여금 깊은 감명을 준다. '사실'이면서 '사실보다 더 사실다운' 그런 책이라 하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13년 전 한 소년의 마음 속에서 난장이가 추구하던 세상과..13년 후 한 청년의 마음 속에서 전태일이 소망하는 세상의 모습은 아마도 같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26세 먹은 지금의 한 청년이 꿈꾸는 세상의 모습과도 일치할런지 모른다. 맥박이 뛰는 글을 쓰지 않으면 글쓰기는 귀(貴) 티로 전락해 버리고 말 것이다. 글자의 살이 깎여질까 조심하듯 인격의 칼로 마음을 다듬으며 오늘도 일기를 쓸 생각이다. 13 년전, 많다고는 할 수 없는 나이로 느낀 '시대의 아픔'이 이제는 좀더 구체적이고 깊이 있게 나의 일기 속으로, 나의 삶 속 으로 파고 드는 것을 느끼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