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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체 불만족
오토다케 히로타다 지음, 전경빈 옮김 / 창해 / 199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나눔이라 생각하면 훈훈하고, 활자 공해라 생각하면 참담하여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진술한 이 책을 보면서 나역시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장애인에게 값싼 동정을 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하는 자책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草綠(초록)은 同色(동색)이요, 가제는 게 편이라 했다. 나역시 그동안 내 의식의 잣대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별해 왔던 사실에 새삼 내자신이 부끄러워진다. 몇 푼 되지도 않을, 형편없는 동정심으로 마치 어항 속에 갇힌 금붕어를 쳐다보듯 '넌 왜 이 어항 속에 갇혀 있니?' 라는 식으로 장애인을 대해왔고, 또 그만큼 그들의 아픔을 잘 이해하지 못한 나였으니까.
값싼 동정을 콸콸 쏟아 붓는 것보다 장애인의 팔을 한 번 거들어 주는 것이 더 값지지 않을까 싶을 만큼 '가치'에 자를 대면 스스로 주눅이 든다.
햄릿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햄릿의 운명에 얽히고 설킨 그의 처절한 절규를 모두 이해할 수 없듯이, 오토의 상황에 부딪치지 않고서는 우리 역시 진정으로 그의 인간적 설움과 고통을 모두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독자성을 전제로한 절대 절명의 근원적 고독이 아닐까. 다만 그러한 고독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어떻게 비추어지고, 또 그들에게 어떻게 대접받느냐에 따라 제 각자가 인간의 집단에 속하면서 평생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가 결정되는 것이라고 본다.
오토의 글을 읽고 있노라니 문득, 초등학교 시절의 장애인 친구 00가 생각났다. 선생님의 세심한 배려와 아이들의 맑은 웃음으로 우리는 장애인 친구에 대한 나쁜 편견은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부모님들의 반응은 상당히 예민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함께 학교 옥상에 올라가 잔뜩 부풀어있는 풍선을 하늘로 띄어 보내면서 얼마나 자지러지게 서로 웃어댔던가. 그때 우리는 모두 어깨동무를 하며 서로의 따뜻한 동료애를 마음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풍선은 적당하게 부풀어져야 하고 알맞게 떠야 제 격이다. 사람마다 자신이 불어 넣어야 할 풍선을 가지고 있고, 그 풍선의 모양과 크기 역시 각자가 적당한 양의 바람을 불어 넣어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본다. 장애인 역시 그들에게 맞는 양의 바람으로 얼마든지 제격의 모습을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오토가 비장애인보다 더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러한 이유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나 풍선은 홀로 뜰 수 없다. 나의 입김을 불어 넣어야 비로소 하늘로 그 가벼운 몸을 날릴 수 있듯이 장애인 역시 우리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을 함께 불어 넣어 줄 때에 비로소 자신들의 꿈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급한 바람 넣기는 초라한 완성을 부르고 무거운 바람도 풍선에게는 애정이 아니다. 누구보다도 열등의식에 사로잡히기 쉽고, 욕구불만에 적나라하게 노출될 수 밖에 없는 장애인에게 우리가 우리의 체온이 담긴 따뜻한 바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한 인간의 정을 그들에게 불어줄 때, 비로소 장애인과 우리들은 자연스럽고도 바람직한 공생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삶의 1회성, 그것이 늘 풀포기와는 다른 고뇌를 몰고 오지만, 꿈꾸는 사람에게는 만남이 이루어지고 이는 서로의 아름다운 부름이요, 영혼의 따뜻한 교감이라 해야 할 것이다.
진실을 불러야 진실이 답하고, 풍선의 메시지를 보내야 비로소 바람은 방향을 잡는다. 이 세상에 대리 진실은 없다고 했다. 건강한 정신이 바탕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장애인 사랑'을 부르짖는 것은 헛된 구호일 뿐이며 지나친 착각이다. 힘에 의한 모욕적인 술수만이 고도화되어가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좋은 삶이 될지 난제 중의 난제이지만, 차서 넘치도록 받아온 사랑을 우리도 이제는 장애인들에게 다시 나누어 줄 때가 되지 않았을까.
오색 찬란한 꿈을 불어 넣으며 서로가 함께 기뻐할 수 있었던 내 어릴적 기억들을 떠올리며,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내 값진 양심의 소리를 듣게된다. 끝으로 인류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손수 보여준 오토에게 진심으로 가슴벅찬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