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세계에서 집단 따돌림이 존재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첫번째는 한정된 자원과 공간 때문이다. 먹이는 무제한으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두가 만족할 만큼 배불리 먹을 수 없다. 결국은힘이 센 동물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남은 것들을 다른 개체들이 나눠 갖는다. 그런데 무리 안의 개체 수가 너무 많아서 나눠 가질 수없다면 어쩔 수 없이 도태되는 쪽이 생길 수밖에 없다. 주로 영역으로 나눠지는 공간 역시 마찬가지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먹이 경쟁과 같은 상황이 생긴다. 두 번째는 서열 확립을 위해서다. 우두머리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대항하는 동물이나 약한 동물을괴롭힌다. 무리의 구성원들은 그런 우두머리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우두머리를 따라 같이 괴롭힌다. 세 번째는 전염병 예방을 위해서이다. 약한 개체는 기생충이나 세균, 바이러스성 질병 등 전염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높다. 동물은 본능적으로 옮을 위험이 있음을 알고 이를 피하며 도태시키도록 진화되었다는 것이다.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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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억력을 가진 새끼 코끼리는 이모들에게 먹을 수 있는 풀과 나뭇잎, 멀리해야 하는 위험한 동물 등 삶에 필요한 것들을 배운다. 사실 코끼리에게 위험한 동물은 많지 않다. 거대한 덩치와 압도적인 힘 때문에 사자나 악어와 같은 맹수들도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그러나 어린 코끼리는 맹수들의 먹잇감이 될 수도 있다. 맹수보다 코끼리에게 더 위험한 동물은 바로 인간이다. 코끼리의 거대한이빨인 상아를 노리고 총을 겨누기도 한다. 아름다운 빛깔의 상아는 고가의 장식품을 만드는 재료로 쓰여 매우 비싼 값에 팔리기 때문이다. 야생 코끼리는 인간을 극도로 경계하며 새끼 코끼리들에게인간의 위험성에 대해 가르친다. 또한 근처에 사람이 나타난 것을발견하면 다른 무리에게 알려 주기도 한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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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26일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은내외신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최후의 1인까지 투쟁할 것입니다.
탱크를 동원해 진압하겠다면 어차피 질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나 강경 진압이오늘의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패배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일의 역사는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입니다" - P408


"한국의 민주주의는 광주의 피를 먹고 자랐다."
- P411

서울역회군을 가장 반대했던 유시민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는데, 이는불행히도 현실이 되었다.
"지금 상황에서 해산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여기서 물러나면 모든것이 끝나고 신군부는 어떤 보복행위를 할지 모른다." - P413

힌츠페터는 5.18에 대해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 독일인이 제2차 세계대전 때 했던 만행을 기억하는 만큼, 5·18도반드시 기억되어야 한다." - P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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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이 1950년 6월에 남침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극동군사령부 정보참모부장 윌러비 소장은 잡지 <코즈모폴리턴>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극동군사령부가 은밀한 방식으로 한반도에 관한 정보를 워싱턴으로전달했으며, 북한군의 남침이 있기 3개월 전인 1950년 3월에 북한군의전쟁 준비 상황을 정확히 파악했다." - P308

미국 트루먼의 목표는 한반도에서 가능한 한 장시간 동안 공산세력과치열하게 전쟁을 함으로써 미국인과 자유 진영 국가의 국민들이 공산세력의 위험을 절감하게 만드는 것과 이 같은 방식으로 미국의 국방비롤 400% 증액시키고 지구상 도처에 동맹을 결성함으로써 냉전 승리의초석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강대국 국제정치와 한반도》 서문 중 - P309

미국의 지도자들은 전쟁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았다. 대만과 한반도에서전쟁 위협이 고조될 당시 미국은 중국의 대만 침공을 사전 차단하고자적극 노력한 반면 한반도전쟁을 방지하기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않았다.
《강대국 국제정치와 한반도》 248쪽 - P310

소련의 기밀문서를 통해, 김일성의 남침 야욕을 처음에는 스탈린이막았다는 사실이 확실히 드러났다(1949년 3월 7일 스탈린과 북한 대표단의 대화록), 스탈린에게 남침에 대한 허락을 구하고자 하는 김일성의 가보와 편지가 무려 48차례나 모스크바로 건너간 것 역시 확인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애치슨선언(1950. 1.) 이후 스탈린의 생각이 바뀌어 북한의남침을 동의한 것도 확인되었다(1950년 4월 김일성의 소련 방문겐.) - P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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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부라쿠민에 대한 차별은 21세기인 지금까지도 사회적 문제로남아 있다. 2017년 일본 내각의 조사에 의하면 일본 인구의 75%가 부라쿠민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고 답했다. 부라쿠민에 대한 결혼 차별(40.1%), 편견을 담은 차별적인 언행 (27.9%), 신원조사(27.6%), 취업이나 직장에서의 불이익(23.5%) 등이 대표적이다. - P49

근대적 변화를 국가가 나서서 주도한 것도 대한제국(1897~1910) 시기인① 시기였다. 대한제국은 양전사업을 통해 근대적 토지 소유권을 증명하는 지계를 발급하고, 근대적 회사, 공장, 은행 등의 설립을 장려했다. 대한제국 이전인 1894년 한성에서 4개에 불과했던 기업의 수는 10년후인 1904년 222개로 증가했다. 대한제국의 조세 수입은 1897년 기준17만냥에서 7년 후인 1904년에는 3천만냥으로 200배 이상 증대되었다.
대한제국은 미국인 콜브란과 합작하여 한성전기회사를 만들고, 본격적으로 전기를 보급함과 더불어 전차를 개통(1899)했다. 한양의 전차 개통이 일본 도쿄의 전차 개통보다 3년이나 앞섰다는 것을 아무도 말하지않는다.
성리학이 쇠퇴하고 새로운 종교가 창시된 것 역시 ①시기였다.
조선왕조 500년을 지탱했던 유교적 관습은 쇠퇴하고 있었고, 서학은천주교와 개신교로 구분되어 보급되고 있었다.
동학의 제3대 교주 손병희는 천도교를 개창(1905)하여 보급시켰고,
단군을 숭상하는 대종교(1909) 역시 나철과 오기호에 의해 창설되었다. 불교는 여전히 민간 종교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역시 ①시기에 조선은 스스로 성리학 국가에서 탈피하여 다종교 국가로 변하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들이 정착되고 안착된 시기가 일제강점기였을 뿐이다. 사실상 일제강점기에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모든 변화는 국권이 피탈되기 이전의 조선 후기와 대한제국에서 있었던 변화였다 - P67


"당시 조선인의 국적이 일본이었다면, 일본인이 일본으로 보낸 쌀을수출이라 할 수 있는가?" - P89

한사람을 죽여서만 사람을 살리는 방법이 독립의 수단의 근본이다.‘ - P134

윤봉길 의사가 의거를 며칠 앞두고 두 아들에게 남긴 유언이다.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 P136

"나에게 마지막 한 발의 총알이 남았다면, 일본인이 아니라 조선인 밀정을 향해 쏘겠다." - P170

일제의 갑작스런 항복으로 국내진공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못한 분함을 김구는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가 국내진공작전을 실천에 옮기지 못함에 하늘이 무너진다. 우리가 연합국의 일원으로 일제의 패망에 나름의 역할을 했어야, 프랑스가 승전국의 위치에서 독일을 단죄한 것처럼 우리가 일본을 단죄할 수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하고 독립되었으니, 강대국에 한반도가 휘둘릴까 걱정이다." - P184

당연히 한반도가 아니라 일본이 분단되었어야 했다. 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일본을 관서와 관동으로 나눈 다음, 미국이 관서를 점령하고 소련이 관동을 점령했어야 했다. 소련이 동독을 장악하려고 했던 것처럼패망한 일본의 절반 땅을 요구했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루스벨트의 뒤를 이어 미국의 대통령이 된 트루먼은 소련에게 일본의 절반을주느니 차라리 한반도의 절반을 주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다.
더구나 일본은 천황제를 유지하고 자국의 분할 점령을 막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일본은 미국에 자국의 분단 대신 한반도의 분단을 제시했다. 이런 제안을 한 일본과 그것을 받아들인 미국이 원망스럽지 않다면,
그 또한 이상한 일이다. - P196

문제는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차지하고 있었던 고위직의 빈자리를그들의 하수인인 매국노들이 차지했다는 것이다. 미군정은 조선인 매국노를 다시 고용한 것도 모자라, 오히려 그들을 승진시키기까지 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를 고문했던 말단 고문기술자가 고위 경찰로 승진했으며, 검찰 직원들은 시험을 거치지도 않고 일본인 검사가 떠난 자리를 차지하여 검사가 되었다. 또한 일본군 하급 장교들은 미군정 아래국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의 장군이 되었다. 즉, 매국노들은 일제강점기보다 미군정기에서 더 큰 권력을 쥐게 된 것이다.
친일파들은 친미파가 되었다 - P203

적절한 시기에 한반도를 독립시키겠다는 카이로회담(1943)의 약속을 실천하고자 미국, 영국, 소련의 외무장관이 모스크바에서 만났다. 이를 모스크바 3국외상회의(1945. 12.)라고 한다.
모스크바 3국외상회의에서 논의된 한반도에 대한 주요 의제는 남북한이 각각 미군정과 소련군정하에 놓여 있어, 자칫하면 한반도가 분단될 위기에 처했으니, 한반도에 통일정부를 수립하자는 것이었다. 이에따라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남북한 총선을 주관할 임시정부의 수립과그 임시정부의 구성을 논의하기 위한 미소공동위원회가 약속되었다.
그리고 통일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최대 5년의 미국, 영국, 중국, 소련4대 강국의 신탁통치가 약속되었다.
그러나 모스크바 3국외상회의 전문이 공개되기 전인 12월 27일, 동아일보를 비롯한 우익 계열 신문들은 1면의 톱기사로 "소련은 신탁통치주장, 미국은 즉시독립 주장"을 실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신탁통치가 웬 말인가 싶었던 많은 사람들은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반탁운동을 전개했고, 신탁통치를 주장했다는 소련은 대중의 미움을 받게 되었다. 이 기회를 틈타 우익은 반탁운동을 반소 및 반공운동과 병행했다. 그런데 미국 통신사의 기사를 받아쓴 동아일보를 비롯한 우익 계열 신문둔의 기사는 있어서는 안 될 오보였다. 사실 한반도의 즉각 독립을 주장한 나라는 소련이었고, 신탁통치를 주장한 나라는 미국이었다. - P205

4.3사건으로 미군정과 이승만정권에 의해 무참히 학살당한 제주도민의 가족들은 여전히 제주에 거주하고 있었다. 이승만 입장에서는 자신에 대한 반감 정서가 큰 제주로 수도를 이전하는 것이 껄끄러웠을 것이다. 이승만은 군대 일부를 먼저 제주도에 파견했다. 군대는 4·3사건으로 고문을 당했지만 살아 있거나, 혹은 사망한 사람들의 가족들을 다시끌고가 죽였다. 이를 예비검속이라 한다. - P237

"이승만은 이완용보다 더 큰 역적이다.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없는 나라를 팔아먹었다." - P246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점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승만은 우리 역사상 최초의 탄핵 대통령이다. - P250

최능진의 큰형 최찬과 둘째 형 최능현은 3·1운동에 참여한 뒤 사형을 구형받았다. 최능현은 탈옥한 뒤 중국으로 건너가 임시정부와 한인애국단 활동에 참여했다. 최능현은 윤봉길의거에 필요한 폭탄을 실험하는 과정에서 사망했는데, 그만큼 최능진 일가는 우리 독립운동에 깊이 이바지했다. - P260

최능진은 남한 경찰 조직의 구성이 부조리하다고 생각했다. 친일파출신의 인물들이 숙청되지 않고 버젓이 경찰로 활동하고 있음은 물론,
오히려 고위직에 올랐기 때문이었다. 특히 최능진은 북한의 공산주의를 거부하며 월남했는데, 남한에서는 공산주의자보다 더 싫은 친일파가설치고 있으니 이는 그의 가장 불만이었다.
"일제주구가 일조일석에 애국자가 되어 민중의 지휘자가 될 수 없다."
- P261

 반민특위가 경찰들에게 공격당했던 6월 6일은 우리의 친일청산이 실패하며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지 못한 비극의 날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날을 현충일로 기억한다. - P276

일생이 나쁜 짓거리투성이었다. 왜 나쁜 사람을 따르고 추종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이는 정의롭지 못한 자들이 또 다른 정의롭지못한자를 영웅으로 만들어, 자신의 정의로움에 대한 열등감을 해소하려는 수작이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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