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의사가 자신의 환자 전부를 가족처럼 여기면 그 의사도 버티지 못한다. 가족 한 명만 아프거나 생을 마감해도 남은 가족들은 무척 힘든 시간을 보내는데 만약 누군가가 가족이 600명이고,
그 모두가 아프거나 그 모두를 떠나보내야 한다면 어떻겠는가? 그사람은 필시 미쳐버리지 않을까? 모든 환자에게 부모에게 하듯이,
자식에게 하듯이 정신과 마음을 다 쏟아버리면 의사는 온전히 버틸수 없다. 그래서 의사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의식적으로환자와 적절한 거리를 찾는다. 그것이 사람들이 바라는 가족 같은의사가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다.
결국 사람들 사이에는 각자 그 나름의 말 못 할 사정이 있고, 그사정들로 인해 사람들 사이의 거리는 적정한 수준으로 형성된다.
만족스럽든 만족스럽지 않는 내가 생각하는 적절한 거리와 상대방이 생각하는 그것은 늘 같지 않다. 어쨌든 "선생님에게는 제가 600명중 한 명일지 몰라도 저에게는 선생님 한 명이거든요"라는 그의 말에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인간관계에서의 거리, 환자와 의사 사이의 거리에 대해서 새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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