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을 배우다 - 리처드 포스터의 마지막 수업
리처드 포스터 지음, 윤종석 옮김 / IVP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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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 돌아가는 길: 겸손이라는 잊혀진 미덕에 대하여


새해 전야, 리처드 J. 포스터는 한 가지 감화된 속삭임을 들었다. "겸손을 배워라." 그것은 명령이 아니라 초대였고, 위협이 아니라 약속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1년간의 여정을 담은 『겸손을 배우다』는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이 책은 한 영혼이 자기 자신의 가장 깊은 곳으로 내려가 흙을 만지고, 그 흙에서 다시 일어서는 이야기다.
흙에서 온 우리
겸손(Humility)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humus, 즉 흙에서 왔다. 우리는 흙에서 왔고, 흙으로 돌아간다. 이 단순하고도 근본적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겸손의 시작이다. 포스터는 겸손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것은 자신의 재능을 부인하는 것도, 성취를 폄하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정직하게 바라보는 용기다.
하지만 자기 인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포스터가 말하는 "불완전한 겸손"은 여기서 멈춘다. 진정한 겸손, 그가 "완전한 겸손"이라 부르는 것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완전히 돌아서서 하나님께로 향하는 움직임이다. 그것은 자기 비움의 여정이며, 동시에 신성한 은혜로 채워지는 과정이다.
십자가 위의 역설
겸손의 가장 완벽한 모범은 예수 그리스도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묘사한 그리스도의 자기 비움(kenosis)은 역설로 가득하다.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 종의 형체를 취하셨다. 가장 높은 분이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다. 이 겸손은 나약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극도의 힘과 용기, 그리고 능력을 요구하는 행동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겸손에 대한 가장 큰 오해와 마주한다.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진정한 자리를 아는 것이다. 그것은 패배가 아니라 해방이며, 포기가 아니라 자유다.
간접적으로 가는 길
포스터는 중요한 통찰을 제시한다. 겸손은 직접 추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겸손해질 거야"라고 결심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교만의 덫에 걸린다. 겸손은 정면으로 붙잡을 수 없는 나비와 같다. 그것은 다른 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찾아온다.
그 핵심적인 통로가 바로 봉사다. 타인을 섬기는 행위, 사랑과 상냥함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우리 내면 깊은 곳에 무언가가 쌓이기 시작한다. 그것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를 변화시키는 조용한 작업이다. 봉사는 겸손을 향한 옆문이고, 뒷길이며, 은밀한 통로다.
교만이라는 중력
C.S. 루이스는 교만을 "가장 본질적인 악덕"이자 "완전한 반(反)하나님 상태의 마음"이라고 불렀다. 교만은 모든 욕망을 자기중심으로 왜곡시키는 블랙홀 같은 힘이다. 그것은 우리를 점점 더 우리 자신 안으로 끌어당겨 결국 고립과 분열로 이끈다.
반면 겸손은 구심력이다. 그것은 우리를 우리가 창조된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려놓는다. 이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포스터는 이것을 "느리고 고통스러운 자기 비움"이라고 표현한다. 그것은 자아의 껍질을 하나씩 벗겨내는 작업이며, 거짓 자아가 무너지면서 진정한 자아가 드러나는 과정이다. 그 끝에 기다리는 것은 "영혼의 정결함"이다.
자유로운 영혼
1년의 여정을 마친 포스터가 발견한 것은 놀라웠다. 겸손은 우리에게 자유를 준다. 자기 몰두로부터의 자유, 타인과의 끊임없는 비교로부터의 자유,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의 자유.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은 타인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고, 타인을 통제하려는 충동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겸손은 또한 우리에게 깊은 평화를 선물한다. 포스터는 이것을 "영혼의 깊은 정착"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세상의 소음과 분주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중심이다. 그리고 이 평화는 결코 이기적으로 머물지 않는다.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은 자연스럽게 "멍들고 상처 입은 이들"을 향해 마음이 열린다.
용기의 다른 이름
포스터의 마지막 메시지는 호소다. "겸손을 배울 만큼 용감하라. 겸손을 배울 만큼 강인하라. 겸손을 배울 만큼 대담하라. 겸손을 배울 만큼 자비심을 가지라." 이 문장들은 우리의 통념을 뒤집는다. 겸손은 약함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가장 큰 용기를 요구한다.
자기애와 탐욕이 미덕처럼 포장되는 시대에, 겸손은 가장 급진적인 저항이다. 모두가 위로 올라가려 할 때 아래로 내려가는 것, 모두가 자신을 드러내려 할 때 자신을 감추는 것, 모두가 말하려 할 때 침묵하는 것—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가 아닐까.
겸손은 조용한 나침반이다. 그것은 시끄럽게 방향을 알려주지 않지만, 언제나 진북을 가리킨다. 우리가 본래의 모습대로, 흙에서 왔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그 흙 위에 겸손하게 서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롭다. 포스터의 여정은 끝났지만, 우리의 여정은 이제 시작이다. 그 신성한 속삭임이 지금, 우리에게도 들려온다. "겸손을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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