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하는 저녁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에쿠니 가오리가 좋다.

특히 삶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때면, 에쿠니 가오리 소설을 즐겨 읽게 된다.

 

"비에는 소염작용이 있다고 생각한다."

에쿠니 가오리 소설 중 한 구절인데,나는 에쿠니 가오리의 책을 읽을 때면, 늘상 이 구절을 떠올리곤 한다.

에쿠니 가오리는 비를 닮았다.

주륵주륵 마구 쏟아지는 소나기가 아니라 촉촉히 몸을 적시는 보슬비를 닮았다.

이 소설은 이별을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여주인공은 울지도 않으며 화내지 않도 않고, 시종일관 차분함을 유지한다.

그리고, 자신을 버린 옛 애인과 그 애인이 사랑하는 하나코라는 여자와 이어지는 기묘한 동거생활을 유지해 나간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주인공은 아직 옛 애인을 사랑하면서도 자신을 이별로 몰고 가게 한 원흉인 하나코와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해 간다.

나는 기묘할 정도의 차분함이 마음에 들었다.

오히려 그 차분함에서 치열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별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

남자친구의 짝사랑 상대를 옆에 두면서 인연을 이어 가고 싶은 마음...

그런 곱지 많은 않은 과정을 억지로 미화시키려고 하지도 너무 추하지 않게 담담하게 그려낸 소설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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