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랙 - Crack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 조던 스콧(Jordan Scott) 감독의 영화 cracks(2009). 사람 이름을 잘 못 외우는 내가 이 감독이 글레디에이터(2000)를 만든 감독 리들리 스콧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그저 여성 감독이라는 사실이 나를 알 수 없는 기대감에 들뜨게 했던 것 같다. 게다가 포스터의 절반을 차지한 에바그린의 화려한 이미지는 스릴러물에나 어울릴 법한 분위기를 풍겼다. 물론 스릴러영화 만큼이나 긴장감 넘치고 섬세한 감정씬들로 가득 차있긴 했지만. 욕망이 금지된 수녀원 학교라는 공간에서 인간이 가진 욕망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일어나는 일들은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냉랭하고 극적인 분위기에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영국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까. 한 번도 벗어나보지 못한 바깥 세상에 대한 열망을 가진 교사(미스G)는 실상은 학교를 벗어나서는 길거리를 걷는 것 조차 두려워하는 대인기피증세를 보이지만 아이들에게는 마치 많은 세상을 경험하고 오지를 탐험한 마냥 꾸며내고, 수녀원 학교에 '버려진' 아이들은 반장(디)를 중심으로 교사를 따른다. 부정한 권력과 복종 그로인한 모순이 팽배한 학교에 스페인 귀족출신의 아름다운 피아마가 전학을 오게 되고, 이것이 '균열(cracks)'의 시작이 된다.





#2.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욕망이야"
 미스G의 수업 첫 장면에서 그녀는 아이들에게 '욕망'을 가르친다. 욕망이 금지된 곳에서의 욕망. 그녀는 인간이므로 떨칠 수 없는 필연적인 욕망들을 부인하지 않도록 가르친다. 영화는 미스G와 반장 디, 그리고 전학생 피아마의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그들이 각자 욕망에의 허기를 채우려는 과정 속에서 커다란 균열, 결국은 파국을 초래하기에 이른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나 진실과 허위를 보는 눈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적어도 진실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다만 안위와 욕망이 정의를 잠재울 뿐이다. 
 이 영화가 정말 퀴어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영화를 보는 동안 그런 느낌을 받기도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반장 디는 자신을 특별히 아껴주는 미스G에 집착하고, 미스G는 자신이 그토록 열망해 꾸며왔던 매력을 가진 피아마에 집착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미스G가 술에 취해 쓰러진 피아마의 옷을 벗기고 살갗의 냄새를 맡는 것도 피아마에게서 풍기는 이국적인 매력을 갖고싶었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3. 이 영화에는 갈등이 극에 치닫는 독보적인 사건이나 순간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4분의 런타임이 지루하지 않은 것은 여자 주인공들의 섬세한 감정선과 이렇다할 인과관계나 포인트가 불분명한 현실의 갈등을 닮은 미세한 균열을 잘 잡아내어 긴장감을 고조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영화를 보는 관객은 어느 한 인물에만 감정을 이입하지 않고 세 사람 모두의 떨림을 읽게 된다. 덕분에 모두를, 결과적으로는 영화의 '줄거리'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소름이 끼칠만큼 인상적이었던 미스G의 외출 장면. 그녀의 허위가 모두 탄로나는 순간이자 그녀의 내면의 감정들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향한 안타까움의 탄식을 내뱉았다. 빠른 걸음으로 필요도 없는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그녀와 그런 그녀를 지나치는 사람들. 객관적으로 보여지는 배경에 미스G의 시선이 더해지면서 그녀의 두려움이 적나라하게 까발려지는 장면이었다. 자신을 쳐다보며 수근대는 것 같은 사람들, 마치 해칠 것처럼 자신을 향하는 양떼와 강아지. 편집증에 가까운 대인 기피를 앓고 있는(?) 그녀의 섬세한 감정들이 장면에 묻어나고, 바로 다음 씬에서 미스G는 오히려 더 당당한 모습으로 학교 안에서 아이들을 대하고 있다.
 꼭 그렇다고만은 할 수 없지만 여성감독과 여배우들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장면이란 이런 것일 것이다. 아일랜드의 정취와 과거가 서린 가을의 전경들이 그곳에서 일어나는 균열;cracks와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4. 미스G는 피아마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지금까지 일어났던 균열들과는 달리 모든 것이 조용하고 빠르게 처리된다. 디는 성인이 되어 떠나고, 미스G는 그녀가 그토록 갈망하던 바깥세상으로의 탐험을 시작한다. 균열의 해결보다 죽음과 떠남으로 마무리하는 결말의 급격함을 보고 '뭐가 이렇게 촌스럽고 서사적이야.'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꼭 균열과 갈등의 '해결'이라는 것이 있을까 싶기도하다. 우리의 현실이 꼭 그렇다. 여기저기 금이 가지만 그렇다고 꼭 부숴지는 것은 아닐테니...
 나는 이 영화가 썩 마음에 든다. 

 

 


영화가 주는 오랜 여운이 너무 오랜만이라 리뷰를 쓰려고 하다가, 하다가 한 달이 지나 자판을 두드리려니 에고.. 힘이든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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