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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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사실 이 책은 2018년 7월 29일부터 내 알라딘 보관함에 들어 있었다... 읽자 읽자 하고 영원히 미뤄두고 있었는데(죄송) 이번에 현대문학에서 에이모 토울스 신간 『테이블 포 투』 발매 기념으로 기간도 서평단 모집을 하길래! 신청했고 이렇게 좋은 기회로 읽어 보았다.

무려 724페이지라는 엄청난 분량을 자랑하는 소설...
처음 받아보고는 '아아••• 이것을 내가 과연 완독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부담감도 들었지만 딱 책을 펼치고 읽어 내려가면서부터는 분량에 대한 걱정은 커녕 오히려 이 이야기가 끝나지 않기를 바라게 되는 반전의 상황이 발생한다...

혁명 시기의 1920년대 러시아. 주인공 알렉산드르 로스토프 백작은 자신이 지내고 있던 모스크바의 메트로폴 호텔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종신 연금형을 선고받는다. 이 형의 집행 기간 동안 호텔에서 로스토프 백작에게 일어나는 사건들이 이 소설을 이룬다.

남은 평생 동안 호텔에 연금되는 삶이라. 21세기 현대인인 나에게는 '어? 오히려 좋아.'라는 다소 비뚤어진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소설 속 배경은 격동의 시대인 혁명 시기의 러시아. 게다가 죄목 또한 정치와 관련. 만약 호텔 밖으로 나가면 총살이란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그러나 나의 세상이 겨우 호텔 하나라는 영역으로 좁아진다면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하릴없이 줄어들고야 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아래 문장으로 충분하다.

'인간은 자신의 환경을 지배해야 하며 그러지 않으면 그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

이 문장은 백작의 후견인인 대공이 죽기 전 남긴 말이다. 백작은 대공이 남긴 이 문장대로, 종신 연금형이라는 환경 아래서 신사로서의 자신의 삶을 살아나간다. 호텔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삶의 시간들을 교환하며 종신 연금형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호텔 내의 많은 부분들을 알게 된다.

물론 호텔에서 살아가는 백작의 모습이 늘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백작은 종신 연금형에 절망했고 극단적인 생의 마감을 빌기도 했다. 그러나 백작은 이를 계기로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기로 마음먹었다.
누구나 살면서 한번 씩은 삶의 위기를 맞는다. 그 위기가 내 삶을 손바닥 뒤집 듯 바꾸어버려 도저히 감당키 어려울 땐 삶의 통제권을 잃고 헤매기도 한다. 환경에 지배당하고 마는 것이다.그러나 뒤집어진 손바닥 아래의 어둠이 영영 날 잡아 먹게 놔두어서는 안된다. 날 지배하려 드는 환경을 내가 지배해야만 비로소 내 삶을 살 수 있다.

백작은 고작 호텔 정도로 좁아진 세상에서 그동안 들여다보지 못했던 숨겨진 삶의 이면을 만났고, 오히려 역설적으로 백작의 세상은 넓어졌다. 그리고 여기서, 왜 제목이 <모스크바의 신사>인지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 혁명 후 다시 수도 위치를 차지한 모스크바. 왕이 끌어내려지고 볼셰비키 정치가 등장한 새로운 세상. 이 세상에서 백작은 척결되어야 하는 전통적 계급, 봉건 시대의 산물이다. 그러나 호텔 연금형을 받은 후, 자신의 삶에 책임을 다하며 주변인들의 삶에도 귀 기울이는 로스토프 백작의 모습은 '신사' 그 자체다. 연금형 이전 로스토프의 삶이 백작이었다면, 연금형 이후의 삶은 신사에 가깝다고 보여진다. 삶의 추락이 곧 바닥에 떨어진 것들을 살펴 볼 기회라는 말처럼, 세상이 좁아진다는 건 그만큼 못 보고 지나쳤던 것들을 다시 돌아보는 기회가 된다는 걸 일깨워준 소설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시기에 읽은 게 나에게 정서적으로 좋은 가르침이 됐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교훈이나 메세지와는 별개로,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봤을 때처럼 시대물에 대한 흥미가 크게 솟아오르는, 훌륭한 연출의 시대물이었다. 푸시킨, 『안나 카레니나』,『예브게니 오네긴』등 간간히 등장하는 고전문학 언급도 흥미롭다. 읽는 시간들이 참 즐거웠다.같이 서평단을 모집했던 『링컨 하이웨이』는 1950년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는 얘길 듣고 또 궁금해졌다. 이 감상이 다 식기 전에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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