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비전트립 2 - 영국 믿음의 발자취 유럽비전트립 2
박양규 지음 / 두란노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박양규<유럽 비전 트립>2

청년시절 내 가슴을 뛰게 하는 단어를 말하라면 '인도'. 내가 품고 싶어서가 아니라 품어진 나라이기에 인도에 푹빠져 있었다. 오죽하면 6개월을 살다왔을까. 6개월 생활에 지처 패잔병처럼 돌아오는 내게 중국여인이 묻는다. 인도엘 다시 오겠냐고? 그래서 나는 다시 올거라고 했더니 나더러 하는 말이, "Are you crazy woman? " 한다. 큰 애 낳고 다시 인도 땅을 밟긴 했으나 내 계획과는 달리 다시 인도땅으로 가지는못했고 여전히 대한 민국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아니 더 엄밀히 말하자면 하늘나라 시민이지만. 그런 내가 영국책을?

책을 좋아하게 됐으니 뭐 그리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더구나 대학시절 '선교학'을 전공했으니 더더구나 그렇다. 더군다나 글로벌 시대가 아닌가. 하지만 내가 아는 영국에 대한 정보는 어학연수나 유학을 떠났던 동료들이 우울증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돌아온 우울한 나라, 무슬림의 숫자가 늘고, 교회들이 문을 닫고 축구가 우상이 된 나라, 그리고 얼마전 아이들과 동화 책을 읽으며 아이들이 기억하는 영국의 빨간 버스정도.

그러니까 이 책은 벌써 2년 전에 읽었던 분쟁지역 전문 PD 인 김영미님의 <세계는 왜 싸우는가?> 를 읽을 때와 같은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간 살아오면서 배우고 들었던 진주 목걸이의 알들을 영국이라는 하나의 줄에 끼워넣는 시간이었다. 거기에다 '비전'이라는 큰 틀까지 제시 받았고 영국 교회의 현실을 통해 한국 교회가 희망의 빛으로 다시 되살아나가 자신의 역할을 다하라는 당부까지 받았으니 이 책은 어린시절 처음으로 받았던 종합선물셋트에 어찌 비하지 않을수 있을까.

<유럽 비전 트립> 1권 보다 먼저 제작되었다는 이 책을 저자는 눈물 젖은 원고라고 칭한다. 많은 의미가 담겨있으리라. 그래서인지 여행 정보로도 손색이 없는 이 책이 나의 근본 어디에서 잘못되었고, 어디에 서있어야하는지 종체적으로 나를 비춰주는 엑스레이처럼 내게 다가와 내 가슴을 뜨겁게 해주었다.

장장 600쪽에 달하는 이 책을 대하다보면 구석구석 그 구성과 내용에 또 오늘 내가 전수 받은 복음이 걸어온 역사의 뒤안길을 함께 걸으며 놀라게 하는 부분들이 풍성한데 전체 구성도라 할 수 있는 여기를 참고하면 120% 그 코너를 활용할 수 있다는 안내를 받는다. 읽으면서 다시 돌아와 이곳을 다시 서성이기도 했다. 18쪽~ 37쪽까지의 -영국 오리엔테이션- 을 읽어보면 사실 저자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의 핵심이 여기 다 들어있다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친절한 안내 그러면서도 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잘 정리되어 있다.

"놀라우신 주님의 은혜! 나 같은 비천한 인생을 구원해 주신 그 은혜가 얼마나 감미로운가! 한때는 길을 잃고 헤매었지만 이제 구원을 받았다네. 한때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이제는 찬란한 빛을 본다네." p.224

교회에서 은혜롭게 부르곤 하던 <Amazing Grace>의 가삿말이다. 영국에는 청치인으로서 자신의 자리에서 받은 비전으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했던 윌버포스. 그는 후대에 학생들의 비전을 세우게 하는 훌륭한 모델로 큰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다. 그런가 하면 위 찬양의 작시자인 존 뉴턴은 노예 무역을 했던 사람으로 후에 그의 삶에 찾아오신 주님을 만나 자신이 했던 무시무시한 일들을 회개하고 자신이 얼마나 비천한 인생인지 돌이키는 찬양곡으로 후대에 영향을 끼치고 있어 참 아이러니하다.

그런 아이러니가 복음의 진수가 아닐까? 교회에서 종종 현재 믿음 없는 사람들을 보면서 낙망한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 누가 계속해서 하나님의 대열에 서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 자신이 그러하다. 이미 소천하신 아빠는 지병이 있으셨고 큰 믿음이 없으셨던 터라 남성 구역 예배 참석하기를 참 힘들어 하셨다. 그런 아빠를 도와 집으로 찾아오신 구역장님께 아빠는 안계신다는 거짓말을 해드렸던 나였지만 지금 하나님의 복음을 맡은 자로 부르심을 받을 줄 나역시도 그 시절에는 알지 못했다.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캐리는 바로 그런 안목을 가진 참 목자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캐리 당시 영국인들이 했던 '위대한 시도'는 인도를 점령하고 동인도회사를 세워서 국부를 증대시키는 것이었다. 철저히 인도 사람들을 짓밟으면서도 '인도를 셰익스피어와도 바꾸지 않겠다'던 그들이었다. 거대한 재물을 얻고, 고지를 쟁취하는 욕심에 '하나님의 영광' 이라는 말로 적절히 타협하는 '꿈'이 우리를 설레게 하곤 한다. 반면, 캐리가 시도했던 일은 가족들을 부양하고,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인도 사람들을 사랑했던, 즉 당시 영국 사람들에 비하면 '하찮은' 것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시도를 인도 대륙이 변화되는 '위대한 일'로 바꾸셨다. -p.218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고 했고, 정직한 자를 기뻐하신다고 성경은 밟히 기록하고 있지만 복음을 맡았던 우리들은 역사속에서 하나님을 기만했고, 자신과 이웃을 기만했다. 어쩌면 하찮은 이들에게 복음은 가당치도 않다고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죄 사함이 구원의 근거가 아니라 다른 방법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하고 술과 담배에 대해서는 엄격하지만 탐식, 탐욕, 뇌물, 음란, 추행에 대해서는 은혜로 덮자는 것은 복음을 맡은 자들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생각하게 하였다.

그들은 어떤 댓가를 치뤘는가? 무엇때문에?

그들은 오직 성경으로 살아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박해를 받았고, 화형을 당했고, 탄압을 당했다. 어깨에 망치를 맞았고, 촛불에 뼛속까지 녹임을 당했으며, 성경은 금서로 지정되었다. 투옥되었다. 런던탑에 감금되었다가 처형되기도 하였다. 이단자로 낙인찍혔다. 그렇게 전달 받은 복음은 온전한 신념을 가지고 살다간 신앙의 선배님들의 순교에 의해서였다. 한 사람의 희생이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받아들이게 했고, 때로는 반대자들이 회심하여 오히려 애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소수의 한 사람이 되려하기 보다, 문제 있는 교회를 질책하고, 세상을 질책하면서 대부분의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다.

<타임즈>는 그의 부고를 알리며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실었다.

"위대한 웨일스 설교가들의 계보를 이은 마지막 인물. 이 세대의 가장 위대한 설교가요, 가장 탁월한 영국 청교도 지도자" 세계적 신학자 F.F. 브루스는 "그는 명성과 달리 온전히 겸손한 사람이다. 준엄한 메시지를 전달하지만 그의 인품은 더할 나위 없이 겸손하다. 아직까지 영국에서 그런 영적인 사람을 본적이 없다." p.414

우리는 저마다 흔적을 남기기를 원한다.

그 흔적에 있어 가장 기초적인 것은 존 뉴턴과 같은 신앙의 고백이 아닐까. 그런 고백이 토대위에서 남겨지는 흔적들은 주께 드릴 열매로 충분하리라. 그 열매를 가득 안고 주님을 뵈올날을 사모해야지. 아이들과 동화책 인연으로 만났던 '영국'의 빨간 버스 덕에 이 책을 손에 넣게 된 계기가 되어 늘 꿈꾸던 세계 여행이 단순한 꿈이 아니라 꼭 가야할 곳으로 자리매김하게 해주는 책과의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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