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먼트
테디 웨인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10월
평점 :
절판


[아파트먼트 리뷰 대회]  


  선명하게 대비되는 색으로 나뉜 표지, 그 중앙에 어긋난 타자기의 이미지. 아파트먼트는 책을 펼치기도 전에 대립을 강렬하게 암시한다. 붉은색과 푸른색, 그러나 쨍한 원색이 아닌 살짝 빛바랜 색. 이야기를 끝까지 읽고 난 후 책을 덮어 표지를 보니 탁월한 색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주인공의 관계를 이보다 잘 표현할 수 있었을까? 글쓰기에 대한 열정으로 끈끈한 관계를 맺은 것처럼 보였던 두 사람이 명백히, 그러나 날카롭거나 과격하지는 않은 방식으로 틀어지는 뭉근한 대립의 이야기.

 

  ‘라는 화자와 빌리가 처음 만나는 19968월 후덥지근한 컬럼비아 대학의 도지 홀 강의실에서 교수 실비아는 의 장편소설 교열팀장에 대해 이렇게 코멘트한다. “교양소설에서 작가-주인공의 선택이라는 건 너무 쉽고 예측 가능하지 않은가? 주인공 앞에 놓인 장애물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처음부터, 이 장르가 본질적으로 시키는 대로, 그가 결국 예술가로 인정받을 거라고 가정하지 않나요?” 실비아의 질문은 아파트먼트를 펼쳐 막 읽기 시작했을 때 내가 했던 생각과 거의 같았다고 고백한다. 두 작가 지망생을 주인공으로 한 성장소설. 한 명이 다른 한 명보다 명백하게 재능이 뛰어난.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소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안일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따라가고 있던 독자의 머릿속에 어느 순간 의구심의 씨앗을 심는다. 비록 불법 전대한 아파트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으로 비교적 안온한 생활을 누리며 뉴욕대를 졸업하고 컬럼비아 대학의 순수예술 석사과정에 진학한 보스턴 출신의 '', 일리노이주의 커뮤니티 칼리지를 졸업한 뒤 장학금의 도움으로 간신히 컬럼비아 대학원에 입학했으나 뉴욕의 살인적인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하는 빌리 사이의 대비는 너무나 자명해 보인다. 이건 소수자가 역경을 딛고 승리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아주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보다는 복잡한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정상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계급이라는 표면적인 정상성의 이면에 남성성이라는 정상성이 숨어있다. ‘와 빌리는 어떤 정상성의 축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완전히 상반된 지위를 가진다. 그리고 자신이 더 유리한 위치를 점했을 때 상대를 대하는 태도에서 우리는 반전을 목격한다. 두 사람 사이에 처음으로 균열이 갔을 때 우리는 두 사람을 멀어지게 하는 것이 계급적 차이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페이지를 넘길수록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두 사람의 관계는, 현실의 모든 인간관계가 그러하듯, 복잡한 층위 위에 존재한다. 그것을 읽어내는 순간 다소 납작하게 보였던 와 빌리라는 인물이 입체적으로 살아난다. 아파트먼트는 그렇게 흔한 교양 소설의 틀에서 벗어난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이야기 끝에 도착하는 곳은 성공으로 빛나는 낙원이 아니라 쓸쓸한 황무지에 가깝다. 그러나 이 결말은 비극적인가? 마지막 페이지의 마지막 문장에서 테디 웨인은 우리를 멈춰 세워 질문한다. 두 사람의 관계에서, 그 관계의 균열에서, 이후 이어지는 두 사람의 삶에서 당신은 무엇을 읽어낼 것인가?


"아직 여기 있어." 내가 말했다. -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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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딸들 - 뒤라스, 보부아르, 콜레트와 그들의 어머니
소피 카르캥 지음, 임미경 옮김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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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은 모두 '어머니'가 되기를 요구받는다. 그것이 사회가 여성에게 부과하는 제1의 역할이다. 자애롭고 도덕적인 어머니, 집에서 살림을 하는 어머니, 아이를 낳아 양육하는 어머니. 그래서 여성들은 어머니가 되기를, 어머니라는 이미지에 갇히기를 거부해왔다. 그러나 저항하는 여성들의 가장 선두에 선 여성들, 누군가의 아내나 누군가의 어머니로서가 아닌 학자이자 작가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그들에게도 어머니는 있었다. 이 책은 작가이기 이전에, 여성이기 이전에, 소녀이기 이전에 딸이었던 뒤라스와 보부아르, 콜레트에 대한 이야기다.

"세 사람은 저마다 딸이고, 유명 작가이고, 각자의 방식으로 살았다. (...) 딸을 사랑하면서 그 사랑에 서툴렀던 이 어머니들은 딸에게 말하자면 신 같은 존재여서, 뒤라스와 콜레트, 보부아르는 각자 자신의 어머니에게 홀리고 지배당했다. (...) 이들 세 딸은 어린 시절에는 전능한 어머니에게 매혹되어 사랑에 빠진 눈을 하고 있다가 성난 사춘기를 보내고, 성년이 되어서는 한사코 어머니와 거리를 두었다. 그러면서 그 사랑에 대해, 대개는 견딜 수 없는 사랑인 터라, 각자 글을 썼다." (9-11).

"나는 세 사람을 그들의 무대, 그들의 시대에, 덜컹거리는 이륜마차, 시끌시끌한 카페, 베트남의 구운 고기와 국물 냄새 속에 자리 잡게 했다. 그러고는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그들을 따라가보았다. (...) 마르그리트느 시몬을 만나고, 시몬은 콜레트의 작품을 읽는다. 콜레트는 침대에서 라디오방송을 통해 뒤라스의 목소리를 듣고, 보부아르에게 헌정받은 『제2의 성』을 훑어본다. 이런 연결을 통해 나는 여성의 연대를 환기하고 싶다. 이 세사람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치 자매처럼 이어져 있었음을 보이고 싶다. 이런 이유로 나는 그들을 같은 무대 위에 올려보았다." (16-17)

저자 소피 카르캥은 이 책이 주관적 전기임을 밝힌다. 뒤라스와 보부아르, 콜레트의 글과 그들에 대한 기록, 즉 사실에 기반을 둔 전기이지만 마치 소설가가 자신이 창조해낸 인물에 이입하듯 20세기 프랑스를 살았던 이 세 여성의 삶 속으로 들어가 소설처럼 써 내려간 이야기다. 카르캥은 가장 어린 뒤라스의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보부아르와 콜레트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글' 쓰는 '딸'로 성장해나가는 뒤라스의 삶 속에는 이미 보부아르와 콜레트의 발자취가 있다. 뒤라스의 이야기를 읽을 때부터 그와 비슷한 길을 걸어간 동지가 있음을, 어머니의 강력한 그늘 아래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글로 도피했던 여성들이 있음을 우리는 깨닫는다. 그들은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연대로 이어져있다.

프로이트 이후 한동안 모든 이야기는 '아버지'로 채워졌다. 그러나 딸들에게 더 거대한 존재는 언제나 어머니이다. 어머니가 평생토록 사랑을 돌려받지 못한 짝사랑 상대이든, 모든 것을 감시하고 조종해야 하는 지배자이든, 지나친 사랑으로 독립적인 정체성을 융합하는 존재이든.

때로는 작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기 위해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글을 쓴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정신분석학을 토대로 뒤라스와 보부아르, 콜레트의 삶을 분석할 때 충분한 부연 설명이나 근거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작가 뒤라스, 보부아르, 콜레트가 아닌 '딸' 마르그리트와 시몬, 가브리엘을 만나볼 수 있는 매력적인 책이었다. 뒤라스의 『태평양을 막는 제방』과 보부아르의 『아주 편안한 죽음』, 콜레트의 『여명』을 읽고 싶어졌다. 그들이 직접 쓴 글 속의 어머니는 어떤 모습일까?

세 사람은 저마다 딸이고, 유명 작가이고, 각자의 방식으로 살았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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