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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딸들 - 뒤라스, 보부아르, 콜레트와 그들의 어머니
소피 카르캥 지음, 임미경 옮김 / 창비 / 2021년 11월
평점 :
여성들은 모두 '어머니'가 되기를 요구받는다. 그것이 사회가 여성에게 부과하는 제1의 역할이다. 자애롭고 도덕적인 어머니, 집에서 살림을 하는 어머니, 아이를 낳아 양육하는 어머니. 그래서 여성들은 어머니가 되기를, 어머니라는 이미지에 갇히기를 거부해왔다. 그러나 저항하는 여성들의 가장 선두에 선 여성들, 누군가의 아내나 누군가의 어머니로서가 아닌 학자이자 작가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그들에게도 어머니는 있었다. 이 책은 작가이기 이전에, 여성이기 이전에, 소녀이기 이전에 딸이었던 뒤라스와 보부아르, 콜레트에 대한 이야기다.
"세 사람은 저마다 딸이고, 유명 작가이고, 각자의 방식으로 살았다. (...) 딸을 사랑하면서 그 사랑에 서툴렀던 이 어머니들은 딸에게 말하자면 신 같은 존재여서, 뒤라스와 콜레트, 보부아르는 각자 자신의 어머니에게 홀리고 지배당했다. (...) 이들 세 딸은 어린 시절에는 전능한 어머니에게 매혹되어 사랑에 빠진 눈을 하고 있다가 성난 사춘기를 보내고, 성년이 되어서는 한사코 어머니와 거리를 두었다. 그러면서 그 사랑에 대해, 대개는 견딜 수 없는 사랑인 터라, 각자 글을 썼다." (9-11).
"나는 세 사람을 그들의 무대, 그들의 시대에, 덜컹거리는 이륜마차, 시끌시끌한 카페, 베트남의 구운 고기와 국물 냄새 속에 자리 잡게 했다. 그러고는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그들을 따라가보았다. (...) 마르그리트느 시몬을 만나고, 시몬은 콜레트의 작품을 읽는다. 콜레트는 침대에서 라디오방송을 통해 뒤라스의 목소리를 듣고, 보부아르에게 헌정받은 『제2의 성』을 훑어본다. 이런 연결을 통해 나는 여성의 연대를 환기하고 싶다. 이 세사람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치 자매처럼 이어져 있었음을 보이고 싶다. 이런 이유로 나는 그들을 같은 무대 위에 올려보았다." (16-17)
저자 소피 카르캥은 이 책이 주관적 전기임을 밝힌다. 뒤라스와 보부아르, 콜레트의 글과 그들에 대한 기록, 즉 사실에 기반을 둔 전기이지만 마치 소설가가 자신이 창조해낸 인물에 이입하듯 20세기 프랑스를 살았던 이 세 여성의 삶 속으로 들어가 소설처럼 써 내려간 이야기다. 카르캥은 가장 어린 뒤라스의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보부아르와 콜레트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글' 쓰는 '딸'로 성장해나가는 뒤라스의 삶 속에는 이미 보부아르와 콜레트의 발자취가 있다. 뒤라스의 이야기를 읽을 때부터 그와 비슷한 길을 걸어간 동지가 있음을, 어머니의 강력한 그늘 아래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글로 도피했던 여성들이 있음을 우리는 깨닫는다. 그들은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연대로 이어져있다.
프로이트 이후 한동안 모든 이야기는 '아버지'로 채워졌다. 그러나 딸들에게 더 거대한 존재는 언제나 어머니이다. 어머니가 평생토록 사랑을 돌려받지 못한 짝사랑 상대이든, 모든 것을 감시하고 조종해야 하는 지배자이든, 지나친 사랑으로 독립적인 정체성을 융합하는 존재이든.
때로는 작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기 위해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글을 쓴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정신분석학을 토대로 뒤라스와 보부아르, 콜레트의 삶을 분석할 때 충분한 부연 설명이나 근거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작가 뒤라스, 보부아르, 콜레트가 아닌 '딸' 마르그리트와 시몬, 가브리엘을 만나볼 수 있는 매력적인 책이었다. 뒤라스의 『태평양을 막는 제방』과 보부아르의 『아주 편안한 죽음』, 콜레트의 『여명』을 읽고 싶어졌다. 그들이 직접 쓴 글 속의 어머니는 어떤 모습일까?
세 사람은 저마다 딸이고, 유명 작가이고, 각자의 방식으로 살았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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