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신화여행 - 신화, 끝없는 이야기를 창조하다
강정식 외 지음 / 실천문학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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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Who am I?"라는 질문이 유행했다. 이 질문에 끌렸던 이유야 다들 다르겠지만, 뾰족한 답이 없었던 건 모두 같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에 대해 질문을 거듭할수록 내가 아닌 다른 존재로부터, 이왕이면 권위 있고 힘 센 누군가로부터 나에 대한 설명을 받고 싶은 욕구가 깊어졌다

 

신화란 바로 그런 욕구를 채워준다. 신화는 나와 나를 둘러싼 공동체 그리고 인간과 관계된 거의 모든 것들의 처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신화를 인류 지혜의 보고라고 한다. 신화는 꽉 막힌 골칫거리 미로에서 당황하고 있는 우리에게 탈출의 희망을 줄지도 모른다. 아드리아네의 실처럼 말이다. 

 

그 동안 그리스-로마신화에 편중되어 마치 인류 지혜란 지혜는 모두 서양이 싹쓸이하고 있다는 착각까지 들 정도 아니었는가. 아시아신화여행은 이런 관점에서 유독 끌렸다. 남방계신화를 주제로 삼아, 제주도 본풀이부터 오키나와, 대만, 인도네시아, 필리핀까지 연결한 이 책에서 내 정체성을 구성하고 있는 밑단 이야기도 들을 수 있으리라 짐작되었기 때문이다. 

 

짐작은 적중했다. 출발점이 우리 땅이라 달랐다. 제주도 본풀이와 경기도 시루말이 눈에 들어와 반가웠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북방계 창조신화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친절하게 설명함으로써 우리 이야기가 갖는 의의와 가치를 충분히 인식시켰다.

  

그러한 인식에서 신화가 가진 은유와 상징이 가진 중요성도 함께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경계영역을 차지하는 기술이다. 인간에게 중요한 의미는 모순과 대립을 넘어서는 모호하지만 분명한 경계선에서 생산되고 전달됨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윤리감각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소녀생매장, 사체절단 및 식인 풍습 등이 유목사회에서 농경사회로 전환되는데 요구되었던 사회적 필요성을 어떻게 확보했는지도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삽입된 그림과 사진들은 몰입도를 더욱 높였다. 이 책이 경기문화재단에서 진행한 신화와 예술 맥놀이-신화, 끝없는 이야기를 창조하다의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이라 그런지, 각 주제마다 최고의 전문가들이 이해하기 쉬운 입말로 현장감 있게 설명한다. 읽는 동안 밥이나 잠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시아신화여행은 신화가 가지고 있는 서사가치가 오늘날의 웹툰, 애니매이션 그리고 소설 등에서 어떻게 되살아나고 있는 지까지 다룬다. 신화가 썩은 화석이 아니라 생명처럼 적응하고 진화하여 오늘날까지 살아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레비스트로스와 나카자와 신이치의 책들, 이야기 중국 신화 등을 읽었던 필자로서는 우리나라에서 시작해서 태평양 한 가운데 있는 작은 섬들까지 한 가지로 묶어내는 신화 이야기에 행복하고 고마웠다. 아쉬운 점도 있다. 그림의 일련번호가 책 중간쯤부터 본문과 어긋난다. 아마도 한 두 장의 그림을 나중에 삽입하고는 본문 수정을 하지 않은 것 같다. 개정판에선 바로잡기를 바란다

원시인이란 원래 시인으로 태어난 사람인지도 모른다. 내 안에도 봉인이 풀릴 날만 기다리고 있는 원시 상상력과 표현력이 잠들어 있는 건 아닐까. 신화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글은 왜 쓰고 싶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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