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는 강렬하지만 무언가 맺힌 것들을 말끔히 해소시키고 함께 증발하는 종류가 있는가 하면, 밍밍하고 미지근하고 색이 연하지만 아무것도 해소하지 않고 들어온 형태 그대로 남아 쌓여가는 종류가 있다. 이 책의 감각은 후자 쪽의 슬픔이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홍성수 교수나 김승섭 교수의 책에서 좋았던 점과 비슷하다. 몰랐던 사실이나 새로운 관점을 전해주는 것도 좋았지만 그보다 더 좋았던 건 그들이 자신의 연구대상과 자신과의 관계를 끊임없이 성찰하고 고민하고 있다는 점, 그래서 결국 자신의 혹은 자신과 같은 다수자, 상대적 강자의 이상적인 위치와 태도에 대한 최종적인 해답을 내지 못하고 판단을 유보했다는 점이다. 그점 때문에 난 그들이 진심이라고 느꼈다. 진심이기에 성실하고 성실하기에 고민을 손쉽게 마감하고 판단을 자신하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