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하지 않을 권리 - 교과서에는 없는 세상을 만나다 청소년 벗
한다솜.서수민.김해솔 외 지음 / 교육공동체벗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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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의 아침은 아주 조용합니다. 주택가엔 저만치 학교에서 여자애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까지 들립니다. 그런데 왜 여기저기서 울부짖는 어르신들의 외침은 들리지 않았던 것일까요? 밤마다 분노를 삼키는 울음도 듣지 못한 채 죄 많고 가벼운 아침을 보내왔습니다.’

 

글이 퍽 서정적이면서도 결기가 느껴진다. 누가 쓴 글일까? 그리고 글쓴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글을 좀 더 따라가 보자.

 

‘제가 송전탑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지난 1월 이치우 할아버지께서 분신하신 일을 신문 사이에 있는 전단지에서 보고 나서부터입니다. 하루 종일 용역과 몸싸움을 하신 이치우 할아버지께서는 “오늘 내가 죽어야 이 문제가 해결되겠다.”는 말씀을 남기고 몸에 불을 지르셨습니다.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바로 옆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깨닫고는 친구들에게 전단지를 돌렸습니다. (…) 한동안 무엇에 짓눌린 듯한 느낌에 답답했습니다. 곧 저는 그것이 죄책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워지지 않을 죄책감을 덜 느끼기 위해서라도 저는 무언가는 해야만 했습니다.’

 

‘하늘 아래 가장 높다는’ 고3 여학생인 한다솜(밀양 밀성고) 양이 쓴 글이다. 배우 전도연이 주연한 영화 밀양(密陽)으로 한 때 인구에 회자되었던 경남 밀양은 지금 그곳에 세워질 송전탑 문제로 한참 속앓이 중이다. 신고리 핵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도시로 공급하기 위한 총 162개의 송전탑 중에 69개가 밀양에 세워진다는 것은 이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물론 글쓴이도 밀양에 살고 있으니 그걸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고3인 여학생이 그 사실을 안다고 어쩌겠는가? 코앞에 닥친 대학입시를 핑계로 외면해버리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한다솜 양을 비롯한 이 책을 집필한 17명의 청소년 필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아직 학생이라는 이유로 세상에 대하여 무관심해도 되는 것은 아니라고, 우리에겐 우리의 삶과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사회에 대해 외면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삶의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온갖 고초를 다 겪어 내면서 교과서에는 없는, 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았던 세상을 만난다. 한다솜 양의 증언이다.

 

‘송전선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없었다는 데에도 공통된 의견을 보였습니다.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송전탑 문제를 다양한 시각에서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수업시간에는 기대할 수 없는 장면이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자율학습이고 계발활동이었지요. 나뚜레 활동을 하면서 저희는 학교가 가르쳐 주지 않은 사회의 이면을 스스로 찾고 개선하려 노력하면서 온전한 시민이 될 수 있었습니다.’(20쪽)

 

‘불량 학생’ 클럽 나뚜레(NATURE)는 학교 환경동아리 이름이다. 나뚜레 회원의 90% 이상은 고3학생이다. 무한 경쟁인 사회의 첫 관문인 입시 전쟁을 치르면서 몸과 마음이 지칠 법한데도 주말을 아껴 동아리 활동을 했다. 부족하면 점심시간도 반납했단다. 오직 공부, 성적 명문대 입시만을 바라는 학교 안에서 말이다. 그러니 그들 스스로 ‘불량 학생’ 클럽이라고 이름 붙일만하지도 않은가.

 

동두천 외고 중국어과 학생인 유호준 군도 역시 고3이다. 그는 ‘마음이 가는대로,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에서 ‘나름’ 연대하고 있으며, 항상 씩씩해보여도 나름대로 감상적이고 마음이 여린, 눈물이 많은 18세 소년‘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가 쓴 글을 읽다보면 빙그레 웃음이 지어지도 한다.

 

‘밤에 분향소에서 잠을 잘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쌍용차 분향소가 아니었으면 제가 언제 덕수궁 돌담 옆에 누워 서울광장을 마당으로 삼고 환상의 스카이라인과 함께 잠을 잘 수 있겠어요.” 그렇습니다. 아마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대학민국에서 많지 않을 것입니다.’(33쪽)

 

그렇다고 그의 사회참여가 청소년의 감상이나 치기의 산물인 건 결코 아니었다. 오랜 외국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던 2009년 7월, 그는 뉴스를 통해 쌍용차 평택 공장에서의 정리 해고에 맞선 노동자들의 옥쇄 파업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는 아이돌 그룹의 신곡발표나 프로야구에 관심을 쏟으며 외고에 진학하고자 책상머리에 앉아 공부하는 평범한 한국의 중학생일 뿐이었다. 그의 증언이다.

 

‘그리하여 외고 진학에는 성공했는데, 외고에서 상상을 초월한 비합리적이고 불공평한 처사들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학생인권운동에 함께하기 시작했습니다. 학생인권운동을 통해서 서울대학교 법인화 반대 투쟁을 우연히 알게 돼 연대활동도 하였고, 이 투쟁을 통해 만난 여러 동지들과 지난해 희망버스에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37쪽)

 

충분히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하지만 만약 그가 외국생활을 오래 하지 않았다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다행히도(?) 그는 남다른 외국 유학의 경험을 통해 산소의 맛이 다른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할 수 있었으리라. 마치 잠수함 속의 토끼처럼 말이다. 물론 그에게도 갈등과 혼란의 순간들이 없을 수는 없었다. 특히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을 제대로 알게 되면서 그의 고민은 깊어져 갔다. 그는 ‘순진하게도 1차, 2차, 3차 희망 텐트를 이어가다보면 문제가 해결되리라, 더 이상의 죽음도 없으리라’ 생각하며 1차 희망 텐트에 참여했고, 지난 3월, 스물두 번째 비보를 접하면서 결국은 고3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만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그의 증언을 더 들어보자.

 

‘그래도 가끔 들러 인사를 드리곤 했는데 어느 날 제가 외고 중국어과라는 것을 기억하고 계시던 분께서 분향소를 소개하는 글을 중국어로 번역해 줄 수 있느냐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어려운 일도 아니고 해서 그분의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였는데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에 부딪혔습니다. 번역하는 게 어려웠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글 속에서 마주한, 공권력에 의해, 자본에 의해, 이 사회에 의해 죽임을 당하신 스물두 분 노동자들의 이야기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살아남은 분들의 외롭다는 절규, 더 이상 죽이지 말라는 절규, 공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절규를 더 이상 거리를 두고 지켜보기만 할 수 없었습니다.’(38쪽)

 

다양한 사회 문제를 직접 보고 경험한 청소년들의 기록이자 증언인 이 책에는 우리 사회의 불의한 현실에 대한 분노와 성찰이 날 것 그대로 담겨 있다. 때론 거친 목소리로 여과 없이 드러나지만 우리 사회의 병폐에 대한 통찰력은 누구보다도 예민하고 예리하다. 필자들은 그들의 사회 참여를 못마땅해 하는 어른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대견하다”, “기특하다”고 하는 시선도 거부한다. 그들은 입시가 전부인 학교에서 인간 선언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리에 떠오른 단어가 있었다. 다름 아닌 ‘건강한’이라는 형용사였다. 또한, 오래 전 청소년 시절에 본 ‘그로잉 업’이라는 영화의 장면들도 함께 떠올랐다. 청소년들의 성적 호기심과 성장을 다룬 이 영화는 한마디로 ‘엄청’ 야한 영화였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이 영화를 갑자기 떠올리게 된 것도 바로 ‘건강한’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당시 한 영화평론가가 이 영화를 ‘건강한’ 영화라고 평한 것이었다. 나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청소년들의 성적 일탈을 그린 야한 영화가 건강하다니?

 

‘건강’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몸이나 정신에 아무 탈 없이 튼튼함’이라고 나와 있다. 이 말은 곧 ‘제대로 된 자람’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 영화평론가는 청소년들의 성적 호기심이나 일탈을 ‘제대로 된 자람’을 나타내는 한 증표로 여겼음직하다. 어려운 추론도 아닌데 그땐 왜 이해가 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무지했던 탓이리라. 다행히도 그 후 나는 지적으로 조금씩 성장하면서 그 영화평론가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위험한 사회적 일탈로 이해될 수도 있는 청소년 필자들의 불온한(?) 글들을 읽으면서 그들의 ‘제대로 된 자람’을 목도하는 기쁨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 1부 ‘불의한 현실에 맞서다’는 국가와 그 비호 아래에 있는 자본의 폭력성을 이야기한다. 2부 ‘공존을 생각한다’는 개발로 인한 환경문제를 다뤘다. 3부 ‘대안을 찾아 나서다’는 교육과 사회의 한계에 맞선 청소년들의 권리 찾기 움직임을 담았다. 물론 청소년 필자들이 직접 체험하고 발품을 팔아 쓴 생생한 증언의 기록들이다. 몇 개의 제목이나 몇 구절의 글만 뽑아보아도, 건강하고 싱싱한 냄새가 확 풍긴다.

 

-소비하는 삶에서 자립하는 삶으로-탈핵, 새로운 문명에의 길

-도요새는 떠나고 짱뚱어는 운다-파괴된 생명의 고향 새만금을 걷다

-미래에 대한 불안의 끈을 놓다-비판은 기본, 거부는 전략! 대학입시거부

-정치는 왜 19금인가요?-내놔라! 청소년 참정권

-자급자족의 가능성을 찾아나서다-나의 농사 유학기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자립’이다. 올해부터, 도시 속의 조그만 땅과 자투리 공간을 이용해 농사를 짓고 있다. 먹지 않고는 살 수 없기 때문에 먹거리 자급을 위한 농사는 자립에 매우 중요하다.(101쪽)’

 

‘사실 대학입시거부의 대안은 ‘아직’ 없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대학입시거부운동이 존재한다. 대학을 선택하지 않는 삶은 지금으로서는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것과 같다. 우리는 그곳에 길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 대안은 우리가 들고 나와서 내밀어야하는 숙제가 아니라 사회에서 당연히 보장해야하는 것이다.(186쪽)’

 

‘위대한 사랑은 자신이 사랑할 자까지 창조한다.’

 

니체가 한 말이다. 이 책의 필자들은 외면해도 좋을, 오히려 외면하는 것이 학생답고, 모범적이고, 심지어는 건강한 징후로까지 여겨지는 상황에서 외면하지 않겠다고, 외면하지 않을 권리가 우리에게 있다고, 그들은 외치고 있다. 사랑하지 않아도 탓할 사람이 없는데도 그들은 굳이 사랑할 자까지 창조하여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어른들이 먼저 읽기를 바란다. 물론 그 중에는 교사도 포함된다. 이 책을 펴낸 ‘교육공동체 벗’ 편집부의 말을 빌리자면, ‘지금 학교와 교사는 학생들에게 그들이 직면할 현실을 말해줄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교육에는 탈정치의 굴레가 견고하게 씌워져 있고, 교과서는 이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이런 상황을 뛰어 넘기 위해서는 교사들의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교사들 또한 현실을 배운 바 없고, 재대로 경험하지 못한 채 경쟁의 승자로서 교단위에 서 있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책을 덮으면서 문득 ‘진정성의 혁명’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이 책의 어린 필자들이 내게 전해준 일종의 선물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꼰대’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를 혁명을 하고 싶어졌다. 그들이 손수 모범을 보여주었듯이, 입시교육에 병들어 더 이상 손보고 말 것도 없이 돼버린 현실에 작은 균열이라도 내고 싶어졌다. 그런 갈망과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게 해준 이 책과 청소년 필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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