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 쉽게 찾기 - 야생화를 쉽게 찾고 공부하는 도감, 최신 개정판 자연 쉽게 찾기 시리즈
윤주복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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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쉽게 찾기』는 윤주복 식물생태연구가 쓴 야생화 도감으로 풀꽃과 나무꽃을 합쳐서 2,100여 종의 식물을 소개한다. 1,500여 종의 풀꽃과 670여 종의 나무꽃이 담겨 있는 이 책 한 권만 있으면 출퇴근길에, 학교가는 길에, 산책가는 길에 피어있는 꽃들의 이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식물 분류는 먼저 '풀'과 '나무'로 크게 나누고 → 각각 계절별로 '봄에 피는 꽃'과 '여름에 피는 꽃'(가을에 피는 꽃은 여름에 피는 꽃에 포함되었다)으로 구분한 뒤 → 계절 내에서는 '꽃의 색깔'과 '꽃잎 수'로 구분하였다 → 꽃잎 색깔 구분은 크게 붉은 색, 노란색, 흰색, 녹색 4 가지로 나누었다.



금목서


책을 받아들자 마자 내가 가장사랑하는 야생화 중의 하나인 '금목서'를 찾았다.

먼저 책의 색인인 '꽃 이름 찾아보기'에서 금목서를 찾아 본다. '꽃 이름 찾아보기'(색인)는 '풀꽃 이름'과 '나무꽃 이름' 으로 크게 나뉘어 있고, 각각은 가나다 순이다. 금목서는 '나무꽃 이름'에서 찾을 수 있다(546페이지에 금목서가 소개 되어 있다). 이제 546페이지를 펼친다. 금목서 사진을 보자마자 너무나 반갑다.


금목서는 물푸레나무과로 중국 원산으로 국내에서는 남부 지방에서 관상수로 심는다. 잎은 마주나고 좁은 타원형이며 가죽질이고 끝이 뾰족하여 사안부에 잔톱니가 있거나 밋밋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암수딴그루로 10월에 주황색 꽃이 모여 핀다. 금목서는 내가 어렸을 적 다녔던 학교에 심어져 있었는데 그 향기는 아마도 어린 시절 내게 가장 강렬한 후각적 체험이었다. 나는 놀라울 정도로 유년시절이나 학창시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따라서 나의 감각체럼 역시 놀라울 정도로 삭막하다. 그래서 나는 문학작품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길게 설명하면 읽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그러나 금목서라는 존재가 거의 유일하게 내게 프루스트적 순간를 체험하도록 한다.





강아지풀

'강아지풀'은 풀의 이름이 너무나도 귀여워서 좋아했었다. 그리고 풀의 생김새도 이름만큼이나 귀엽다. 강아지풀은 여름에 피는 풀꽃으로 벼과에 속한다. 밭이나 길가에서 만날 수 있으며, 잎집과 잎혀에 털이 나있다. 8월에서 10월 줄기 끝에 달리는 원통형 꽃이삭은 5~10센티 길이이며 끝이 비스듬히 처진다.





어렸을 때 엄마나 다른 성인들과 함께 길을 걷거나 산에 갔을 때 그들이 특별히 어른처럼 보였던 때가 있는데 바로 그들이 길에서 마주치는 꽃과 풀, 나무의 이름을 알려줄 때였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풀과 나무를 구분하고 아름답게 피어있던 정체 모를 꽃의 이름을 밝혀서 알려주던 그들의 모습은 어린 내게 이 세상에 대해 아는 것 많아 보이는 '어른들의 모습' 그 자체였다. 한편 세월이 흘러 외양은 어린 내게 각인되어 있던 어른들의 모습만큼 나이를 먹었지만 풀과 꽃에 대해서 아는 바는 여전히 어린 시절에 멈추어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존재가 참으로 든든하다.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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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개가 왔다
정이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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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개가 왔다』는 《낭만적 사랑과 사회》, 《오늘의 거짓말》, 《달콤한 나의 도시》 등으로 널리 알려진 정이현 소설가의 산문집이다. 2022년 12월까지 개를 만지지 못했던 소설가는 얼떨결에 어린 개를 키우게 된다. 작가에 따르면 이 책은 "어느 날 비자발적으로 어린 개와 살게 된 초보 반려인의 좌충우돌 모험가이자 어설픈 분투기"이다. 부제를 붙인다면 '어린 개가 아니었으면 모르고 살았을 것들' 혹은 '어린 개가 아니었으면 모르고 살았겠지만 모르는지도 몰랐을 것들'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작가는 이 어린 개를 키우기 전 '뭉클거리고 꿈틀거리는, 살아 있는 생명의 촉감'이 낯설었던 사람이다. 게다가 '습관성 식물 킬러'였기에 본인의 두 딸 외에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를 길러본 경험이 없다. 작가는 당시 수년 동안 출간을 하지 못했기에 제대로 성과를 내고 있지 못하다는 자괴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게다가 집안에 개가 들어오면 거의 십중팔구 개를 돌보는 것은 엄마의 역할이 된다.

그런데 두 딸과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어느 보호소에서 입양되기만을 기다리는 어린 개를 키우게 된다. 작가가 어린 개를 키우게 된 것은 어리고 연약해 보이는 생명체를 향한 보편적 인류애 때문이었다. 보호소 SNS에 올라와 있는 어린 개의 사진은 작가의 마음을 움직인다.

한편 어린 개를 키우게 된 작가는 근심과 걱정에 휩싸인다. 작가는 그의 친구들이 농담처럼 던진 조언을 듣곤 이 조언을 따르기로 한다. 그래 기왕 개를 키우게 되었으니 써야겠다고. 작가는 제일 잘하는 것이 우선 책으로 지식(반려견을 키우는 방법 관련)을 최대한 흡수하는 한편 집에서 어린 개를 돌본다. 그리고 이것에 관하여 쓴다.





개가 왔다.

강아지인 줄 알았는데. 분명히 그런 줄 알았는데.

모든 강아지가 개라는 걸 처음 알게 된 사람처럼 나는 상자 속의 어린 개를 어리둥절하게 바라보았다. 어린 개도 멀뚱히 바라보았다.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손보미 소설가가 이 책의 추천사에 책을 읽는 동안 "다섯 번 울고 열 번 소리 내어 웃었다"라고 썼는데 정말 공감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가족 구성원으로 거의 대부분 개가 있었던 가정에 살았다. 그래서 정이현 작가 어린 개를 앞에 두고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나 걱정하는 모습, 궁금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이 웃었다. 이 웃음은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데 '엄마 미소' 비슷한 것이었다. 이토록 마음이 순수할 수 있을까. 분명 작가는 두 인간 아이를 길러낸 엄마이기도 한데 말이다. 출산과 양육이라는 고강도 돌봄 노동을 한 경험자인데 작가가 어린 개를 대하는 모습을 너무나도 조심스럽다.



어느 날 밤 서재에 들어가기 전 거실의 불을 껐다가 너무 깜깜하면 얘가 혹시 화장실을 찾아가지 못할까 싶어 화장실 전등을 밝혔다. (...) 화장실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거실에 희미하게 퍼져 있었다. 멀리 바둑이의 실루엣이 보였다. (...) 내 기척을 느꼈는지 그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나도 움직이지 못하고 우뚝 섰다. 바둑이와 나는 몇 미터의 거리를 두고 선 채 각자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었다.


작가는 인간 중심적이지 않다. 어린 개 앞에서 그토록 조심스럽고 종종 당황해하는 모습은 작가 본인의 익숙한 인간 세계의 기준을 어린 개에게 적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어린 개가 어떻게 세상을 경험하는지 몰라서 배우려 한다. 훈련사에게 조언을 받고 책을 읽는다. 그리고 계속하여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버리고 어린 개의 시선으로 개의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한다.



우리는 틀림없이 '인류의 일원:개의 일원'이지만 '개별개체 1 : 개별개체 1'로 치환되는 순간 무언가 조금쯤 달라졌다. 우주 아래 동등하게, 너 하나 나 하나.

그렇게 우리는 균등하게 일대일.




한편 이 어린 개는 '루돌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루돌이와 작가는 점점 가까워진다. 루돌이의 삶을 거의 책임지고 있는 작가는 자연스레 루돌이의 법적 보호자가 된다(동물 등록증상의 견주가 작가의 이름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작가 역시 개가 주는 절대적인 사랑과 경의를 체험하게 된다. 작가는 루돌이의 사랑에 '종종 면구함을 느낀다'라고 말한다. 왜냐면 개라는 존재는 인간에게 완전무결한 믿음과 사랑을 주기 때문이다. 살면서 인간에게는 결코 받을 수 없는 절대적인 애정과 신뢰를 주는 존재가 바로 '개'라는 신기한 종이다. 작가는 개라는 종과 가까웠더라면 속이 더 따뜻하고 말캉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 말한다.





***

위에서는 '엄마 미소'로 작가를 바라보았다고 썼지만, 문득 내가 감히 엄마 미소로 작가를 바라볼 자격이나 있는 사람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미 개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익숙했으므로 개를 처음 접하는 '정이현 작가'라는 사람이 인상 깊었다. 작가라는 사람들 전체를 일반화할 수 없지만 분명 작가 중엔 나이와 상관없이 언제나 순수하고 여린 결이 고운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소설가가 쓴 산문들을 최근 몇 권 읽었는데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무덤덤한 일상 속에서도 무언가를 꼭 발견해 내고 그것을 써 내는 사람들. 이 책을 읽고 나니 정이현 작가의 소설을 챙겨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무쪼록 정이현 작가의 어린 개가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게 행복하게 지내길 바란다.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어린개가왔다 #정이현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0기

#반려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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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에 있다는 것
클레르 마랭 지음, 황은주 옮김 / 에디투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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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에 있다는 것』은 프랑스 철학자 클레르 마랭이 쓴 철학 에세이로, '자리'라는 물리적·지리적·계층적·사회적·정치적 공간이자 내면의 공간을 탐구한다. 이 책은 조르주 페렉, 아니 에르노, 버지니아 울프, 마르그리트 뒤라스, 프란츠 카프가 등의 문학 작품들과, 하이데거, 질 들뢰즈, 피에르 부르디외, 미셸 푸코, 프란츠 파뇽, 샹탈 자케, 캐럴 길리건, 카미유 리키에르 등의 철학적 사회학적 텍스트들을 풍부하게 인용하며 '제자리'라는 실존적인 문제를 파고든다.



저자는 세상에는 정착민과 유목민, 대지의 인간과 바람의 인간이라는 두 종류의 사람이 산다고들 한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여기에는 사람은 자신이 정주하여 사는 곳에서만 행복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어떤 장소나 관계에도 닻을 내리지 못한 채 살아가기도 한다. 한편 이러한 구분은 '향수 어린 (가짜) 양자택일'일뿐이다. 저자는 '제자리라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조르주 페렉의 『공간의 종류들』 속 텍스트를 가져온다.



향수 어린 (가짜) 양자택일

뿌리내리기, 뿌리를 되찾거나 만들어 내기, 공간에서 당신의 것이 될 장소를 취하기, 1밀리미터씩 "자기만의 집"으로 (...) 만들어나나기. (...) 혹은 옷들만 짊어지기, 아무것도 간직하지 않기, 호텔에 살기, 호텔을 자주 옮기기, 도시를 바꾸기, 나라를 바꾸기, (...) 어디에도 내 집에 있다고 느끼지 않기, 그러나 거의 모든 곳에서 잘 지내기.


우리는 늘 움직이는 존재다. 우리는 결코 한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리고 때로는 물리적 이동 없이 내면의 먼 곳으로도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우리가 산다는 것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가 언제나 하나의 여정이며, 머묾이란 늘 일시적이고 우연적이다. 우리의 머묾은 여정을 구성하는 정서·사회·지리·정치적 기착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제자리'를 고민하고 불안해하는 존재다. 우리의 불안은 '제자리'가 어딘가에는 있다는 모호한 기대와 '제자리'가 우리의 안녕을 보장해 줄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에서 비롯한다.

이 책은 '제자리'에 대한 오해와 기대를 걷어내고 '자리옮김'의 해방적 즐거움을 일깨운다. 저자의 사유는 앞서 말한 풍부한 문학적 철학적 텍스트 들과 함께 이 책을 읽는 사람에게로 서서히 젖어든다.


문득 삶을 이어주는 끈이 얼마나 취약한지 깨닫고, 소위 실존의 연속성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 무언가 깨지고, 변질되고, 해체되었다. 화설의 궤적과도 같이 자신감 넘치는 삶의 표상이, 자신의 존재감과 중요성에 대한 내적인 믿음이 주는 온기가 희미해져 간다. 그러나 "세계에 속해 있다는, 그곳에 몸을 담고 있다는 느낌이 네게서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주체는 세상과 한 몸이길 중단하고, 그로부터 분리되고 유리된다. 거리가 생기고, 의심이 스며들며, 소속감이 자취를 감춘다. 현실에 발을 담그고, 기입되고, 참여하고 있다는 확신이 흐려진다. 실존의 의미에 대한 믿음, 확신과 인정을 제공하는 자리에 대한 믿음은 더 이상 주제를 지지하고 지탱해 주지 않는다. 세상이 흔들린다. 혹은 세상이 주체로부터 멀어진다. 주체는 궤도를 따라 돌기 시작한다.


산다는 것은 체념의 연속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성숙이라는 단어가 체념이라는 단어와 상당 부분 교차한다는 것을 배웠다. 과거에 어떤 책을 읽으면서 '환대'라는 개념을 배웠고, '환대 받지 못했다'는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이해했다. 이 과정 속에 내 안의 소란스러운 감정은 결코 이해받을 수도 어느 특정한 누군가나 집단에 수용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감정을 담아 목소리로 표현하면 이는 곧 누군가와 집단에 불편을 야기하게 될 테니 침묵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배웠다. 동시에 감정 자체를 해부하기 시작했다. 감정 자체를 해부하자 이 감정은 오로지 내 스스로에게서 기인하여 비롯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지만 동시에 매 순간 자기 검열을 시작하게 되었다. 저자는 캐리 길리건의 『다른 목소리』의 텍스트를 가져온다.



어린 소녀들의 자기 검열 과정이 분석된다. 소녀들은 실제로 느끼는 것을 표현하지 않는다. 자신의 통찰력은 체계적으로 평가절하당하기에 "통찰력 있는 목소리"를 내는 것도 스스로 금한다. 소녀들의 의견은 너무 "시끄럽기" 때문에, 그들은 소리를 낮추고 개성을 조금도 표현하지 않는 평이하고 억양 없는 목소리를 낸다. 그들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싣지 않아 거짓되기 들리는 중립적인 목소리뿐이다. (...) 목소리의 울림은 사회적 "입문"이라는 시련의 과정에서 변화를 겪으며, 특정 방식으로 울리는 특정 테시투라에 맞춰져 특정한 반응을 만들어 낸다.


이 책은 인종, 계급, 젠더에 따른 '자리찾기'의 문제에 대하여 당연히 이야기한다. 나는 안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누군가의 자리 찾기는 감히 내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고통이 더 뒤따른다는 것을 말이다. 한국에서만 사는 나는 인종의 문제로 정체성에 위협을 당하지 않았다. 나의 실존이 인종으로 평가받은 경험은 없다. 나의 성별에 따른 제약은 과거에 비해 약해졌다. 그러나 누군가는 지금도 오로지 그들의 피부색과 젠더로 인해 자리에서 거부당하고 무시당한다.


자신을 지우라는 명령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이러한 명령은 흑인, 마그레브 출신,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그리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위협을 느끼는 모든 사람에게 끊임없이 내면화된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어머니들이 아들에게 했던 조언들("갑자기 뛰지 마라. 후드를 쓰지 마라. 주머니에 손을 넣지도 마라. 무기가 있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과 성적 학대나 폭력을 막기 위한 여성들의 습관("특정 지역에 혼자 들어가지 마라. 비어 있는 열차를 타지 마라. 길에서는 커플들을 따라가라.")들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여러 사회 집단을 짓누르는 폭력은 각자들 당하는 그들 의식 한켠에는 항상 위협에 대한 예측, 삶이 연약하고 불확실한 것이라는 느낌이 있다.


이 책은 최근에 구입해서 읽은 다이앤 앤슨의 『외로움의 책』과 함께 가장 많은 위로가 되었다. 두 책은 나의 정신적 물질적 삶을 가득 채웠던 이슈들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귀 기울여 듣고자 한 나의 마음을 헤아린다. 다양한 문학적 철학적 텍스트로 읽기의 즐거움도 준다. 섣부른 위로를 하지 않는다. 우리 삶 속에 내재한 긴장과 불안과 외로움과 덧없음 등이 공존의 대상임을 일깨운다. 그리고 이러한 정동의 세계 속에서 나는 무언가를 읽는다. 나는 이 속에서 나 자신을 망각하고 나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온다.



우리는 모든 것이 우리와 잘 맞는 세계라는 환상에 분별 있게 머물 때보다 냉담하고 척박한 자리에 있을 때 실존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운다. 보다 메마르고 거칠고 가혹한 현실에 대한 또다른 실험은 우리에게 경험의 다양성을 열어준다.


자크 라캉의 말처럼 우리는 어쩌다 보니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 자리가 일시적이고 우연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를 단순히 아는 것을 넘어 진정으로 받아들인다면 '자리없음'의 불안은 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떨림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역사학자 로맹 베르트랑의 주장처럼 "안에"에 존재하기보다는 안주하지 않고 항상 자리를 바꾸기 때문에 보다 나은 인간이 된다. 보다 나은 인간이란 누군가를 조금 더 이해하려는 인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공존하겠다는 마음을 먹는 인간이 아닐까 한다.



실제로 우리는 어떤 곳에도 뿌리내리지 않는 것을 강점으로 생각할 수 있다. 고정된 자리가 없다는 것, 하나의 사회적 공간에서 다른 사회적 공간으로, 하나의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 다른 사람들의 자리에 처함으로써 그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이 역시 하나의 특권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온전히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간격을 느끼는 것은 우리가 맹목적으로 승인하지 않도록 보호하고, 모든 형식의 인간 연구에 필요한 비판적 거리를 만들어 준다.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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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택시에서 우주가 말을 걸었다
찰스 S. 코켈 지음, 이충호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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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표지 디자인에 하드커버 장정의 근사한 만듦새를 가진 이 책은 제목만 보아서는 마치 소설책처럼 보인다. 그런데 책의 부제 ‘지적인 잡담으로 떠나는 우주여행’과 책의 띠지에 적힌 문구를 보면 책의 정체를 금방 눈치챌 수 있다. 이 책은 우주 생물학자라는 조금은 낯선 직업을 가진 에든버러 대학교 물리천문학부 우주 생물학 교수이자 영국 우주 생물학 센터 공동이사인 찰스 S. 코켈이 쓴 과학 에세이다.

우주생물학이란 위키백과의 정의에 따르면 생물의 탄생과 진화의 과정을 규명하여, 지구 외의 천체에서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을 밝혀내고, 이를 토대로 외계 생물의 존재 여부와 이런 생물들의 생명 유지 활동이 일어나는 기작을 다루는 학문이다.

평생 동안 생명을 전문적으로 연구해 온 저자는 온갖 장소에서 생명이란 무엇인지, 다른 행성에도 생명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저자는 이러한 대화를 나누기에 특별히 재미있는 집단을 발견했는데, 바로 택시 기사들이었다고 한다. 택시 기사들은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접촉한다. 저자는 "택시 기사는 우리 문명의 집단 사고와 연결돼 있는데, 그런 식의 연결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그들을 인간 사고의 맥박을 느낀다."라고 표현한다. 이 책은 이러한 택시 기사들과 나눈 흥미진진하고 진지한 대화들 속에서 탄생했다.

저자는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생명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라는 과학적 질문과 <우주를 탐사해야 하는가>라는 정치적 질문, 그리고 <인생의 이미>라는 심오한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길 기대한다고 말한다.


책의 제1장의 제목이기도 한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과학자인 저자는 먼저 우주가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한 질문부터 다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택시 기사의 존재는 물론이거니와 존재 자체를 설명하기 매우 어렵다고 한다. 그럼에도 저자는 우주 생물학 분야를 평생 연구한 과학자로서 우리에게 가능한 답을 해주기 위해 정성껏 설명한다. 먼저 지구라는 행성에 택시 기사가 존재하게 된 과정을 압축하여 설명한다.

우주가 처음 생겨난 뒤 → 스스로 복제할 수 있는 분자가 탄생하여 → 단세포 생물이 만들어지고 → 이 단세포 생물이 택시 기사라는 복잡한 형태로 진화하기 위해 에너지 혁명을 거쳤고 → 인간 공동체가 생겨나서 농경 공동체가 되어 수백만 명을 수요하는 거대 도시가 만들어지고 → 인간 공동체가 성장함에 따라 더 나은 자원 이동 방법이 필요하게 되는데 '바퀴'라는 발명하게 되고 → 이 바퀴로 말미암아 전차와 수레가 확산되고 → 남는 화물 공간을 이용해 원하는 목적지까지 사람을 실어 나르고 그 대가로 약간의 보수를 챙기자는 아이디어가 누군가의 머릿속에 떠올랐고 → 이 아이디어 덕분에 이윽고 택시 기사가 탄생했다.



이 책은 훨씬 매끄럽고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나는 독자로서 대충 적어본 것이다. 이 과정을 나열하면 한 가지 깨닫게 된다. 35억 년 전 지구 표면을 떠돌던 화학 물질들이 진화하여 택시 기사가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말이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우연들이 작용했는지 말이다. '웅장한 역사'라고 불러도 손색없다(책에서도 이렇게 표현한다).

한편 이 역사에 다른 우연적 요소가 작용했었더라면 과연 택시 기사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저자는 "이러한 변화가 반드시 일어나야 했는지, 따라서 우주 전체에 걸쳐 보편적으로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다"라고 말한다. 택시 기사라는 존재는 억겁의 시간 동안 어마어마한 우연들이 겹쳐서 탄생한 것이다.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다른 행성에도 택시 기사가 있을까요? 없다고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아마도 어마어마어마한 시간과 어마어마어마한 우연이 겹쳐야 가능할 것이며 이 우연 중 어느 하나라도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하다면, 어쩌면 택시 기사는 우리 행성에만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우주의 탄생을 비롯하여 생명을 다룬 교양 과학서를 읽다 보면 보잘것없는 나의 존재가(너의 존재와 우리 모두의 존재가) 얼마나 기적적인 확률로 탄생했는지 깨닫게 된다. 이 책의 1장에서도 이러한 감동을 재확인하게 된다. 이 책은 계속하여 재미있는 질문을 던진다. 외계인의 접촉은 우리 모두를 변화시킬까? 화성인 침공을 염려해야 할까? 나는 화성 여행에 나설 것인가? 유령은 존재할까? 우리는 외계인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러한 흥미진진한 질문에 과학자인 저자는 진지하고 친절하게 대답한다. 이 진지함이 오히려 웃음을 자아낸다. 과학자의 이성적인 사고 과정은 우리 안에 내재된 어리석음과 모순을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내가 책을 읽다가 피식 웃게 되는 순간은 내 안의 어리석음을 깨달을 때였다.

이 책은 훨씬 매끄럽고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나는 독자로서 대충 적어본 것이다. 이 과정을 나열하면 한 가지 깨닫게 된다. 35억 년 전 지구 표면을 떠돌던 화학 물질들이 진화하여 택시 기사가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말이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우연들이 작용했는지 말이다. '웅장한 역사'라고 불러도 손색없다(책에서도 이렇게 표현한다).

한편 이 역사에 다른 우연적 요소가 작용했었더라면 과연 택시 기사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저자는 "이러한 변화가 반드시 일어나야 했는지, 따라서 우주 전체에 걸쳐 보편적으로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다"라고 말한다. 택시 기사라는 존재는 억겁의 시간 동안 어마어마한 우연들이 겹쳐서 탄생한 것이다.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다른 행성에도 택시 기사가 있을까요? 없다고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아마도 어마어마어마한 시간과 어마어마어마한 우연이 겹쳐야 가능할 것이며 이 우연 중 어느 하나라도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하다면, 어쩌면 택시 기사는 우리 행성에만 있을 수 있을 것이다.



" 만약 외계인이 지구에 도착해 그 존재가 알려진다 하더라도, 그들은 과연 우리의 일자리를 탐낼까? 그럴 일은 전혀 없을 것 같다. 광대한 성간 공간을 여행할 능력을 가진 존재가 우리에게 손을 벌릴 일이 있을까? "


" 의도치 않게 우리가 악의적인 외계인 종족을 자극할 가능성을 너무 염려하기 전에, 우리가 염려해야 할 외계인이 존재하는지부터 알아야 할 것이다. "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의 특별함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사회에 무엇을 기여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그것은 자신의 통제하에 있다. 개인의 목적을 찾는 것은 이러한 노력에 있으며, 대다수 사람들에게 이것은 우주에 우리뿐인가라는 문제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생명이 특별한 것인지 여부는 때가 되면 과학적 방법을 통해 밝혀질 것이다. 여러분이 개인으로서 동료 인간들을 기쁘게 하는 방식으로 성취감을 느끼느냐 마느냐는 자신의 결정에 달린 문제이다. "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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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진공 & 상상된 위대함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정보라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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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진공 & 상상된 위대함』은 아서 C. 클라크, 아이작 아시모프, 필립 K. 딕과 함께 20세기 SF를 대표하는 스타니스와프 렘이 쓴 메타픽션 기법의 단편 소설집이다. 이 책은 『절대 진공』(1971)과 『상상된 위대함』(1973) 두 권을 묶은 책으로 정보라 소설가의 번역으로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절대 진공』은 존재하지 않는 책들에 대한 서평이고 『상상된 위대함』은 존재하지 않는 책의 서문을 모은 것이다.

이번 책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먼저 렘이 SF 문학의 철학자라는 것과 그가 ‘어마어마한 천재였다는 사실’(정보라 소설가의 평)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메타픽션 소설집은 읽어내기가 결코 쉽지 않은데 상당히 난해하다. 그는 의학적+과학적+공학적 지식을 활용해서 문학과 예술, 문화, 종교, 정치, 기술 등의 주제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절대 진공』 편에 담긴 글 「솔랑주 마리오트, 『아무것도 아닌, 혹은 원인에 따른 결과』 」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 (…) 그는 문학이 언제나 독자의 심리상태에 기생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 책은 독자의 머릿속 가구들을 당연히 재배치할 수 있지만, 그것은 책을 읽기 전부터 그 머릿속에 가구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내 머릿속에는 렘의 작품을 읽어내기 위한 가구들을 다채롭게 갖추어 놓았는가?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하는 독자로서 이 책을 완전히 소화하겠다는 욕심은 애초에 버렸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다 보면 많은 곳에 줄을 긋게 된다. SF 문학은 언제나 당대의 가장 첨예한 비평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번 책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것은 『절대 진공』편의 두 작품 「사이먼 메릴, 『섹스플로전』 」과 「알프레트 첼러만, 『루이 16세 중장』 」 이었다. 『섹스플로전』은 온갖 성적인 행위와 취향들이 사회 내에 용인되고 인간은 더욱 강한 자극과 쾌락을 좇는다. 나는 이 글을 읽을 때 성적인 행위의 자리에 다른 행위들, 이를테면 소비중독, 음식중독, 콘텐츠 남용 등의 행위를 대치하여 읽었다. 『루이 16세 중장』 은 히틀러를 피해 달아난 사람들이 그들만의 새로운 왕국을 만들어 살아가는 가상의 소설에 대한 서평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돈과 권력, 폭력을 얼마나 탐하는지를 다루는 글들은 항상 흥미롭다.
『상상된 위대함』은 『절대 진공』편에 비해 분량이 적다. 이 편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것은 첫 번째 글 「상상된 위대함」이다. 평소 책의 서문을 매우 중시하는 독자로서 글 쓰는 사람들에게 ‘서문’이 어떤 것인지 그 영업 비밀을 살짝 염탐하는 기분으로 읽었다.

나는 렘의 글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했다. 그의 어마어마한 박식함을 몸소 체험했으니 다음 읽기는 자연스레 그의 진짜 소설이 되겠다. 책 읽기의 묘미는 많이 읽을수록 더 재미있어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 더디지만 꾸준히 읽어온 나의 읽기는 SF 거장들이 구축한 세계를 여행하는데 밑천이 되어준다고 믿는다. 렘의 작품 중 무엇을 먼저 읽을까. 행복한 고민을 시작해야겠다.

@woojoos_story 모집
#현대문학 #hdmhbook 도서 지원으로
#우주클럽_SF 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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