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 클레오파트라의 남자들
조지 버나드 쇼 지음, 김연수 옮김 / 히스토리퀸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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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원제는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이다)는 잉글랜드계 아일랜드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가 1898년에 집필한 희곡이다. 이 작품은 로마 공화정 말기 제1차 삼두정치를 이끌었던 세 명 중 한 명이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 7세의 사랑과 전쟁을 다루고 있다.

서구 남성 중심의 역사관을 부지불식간에 수용한 일반 대중들이 클레오파트라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매우 빈약하다. 클레오파트라가 남동생과 치열한 왕위 다툼을 통해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가 되었는데, 그 수단으로 로마의 카이사르와 전략적 동맹을 맺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왕이 된 후에도 시시각각 변화하는 국제 정서에 기민한 뛰어난 외교 전략을 펼쳤으며, 이집트 백성의 삶을 살피고 나라를 번영으로 이끌었다.

조지 버나드 쇼의 작품은 열여섯 살 소녀 클레오파트라가 카이사르를 만나 이집트의 파라오로 성장해는 과정을 다룬다. 카이사르를 만나기 전 어린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라는 존재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과 무지로 가득 차 있다(이 책의 부연 설명에서 쇼는 클레오파트라가 전형적인 그리스 문화를 습득하지 않았고 당대 교육받은 이집트 귀부인도 아니었다는 명심하라고 한다). 클레오파트라는 왕위 다툼 속에서 정치적 경험을 쌓고, 카이사르와의 전략적 동맹 관계가 점차 굳건해지면서 남동생과의 공동 통치자가 아닌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로 성장해간다.

조지 버나드 쇼가 그의 허구적 상상력으로 묘사한 클레오파트라는 어떤 인물인가. 히스토리퀸 출판사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원제는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이다)와 쇼의 작품을 묶어 2권 세트로 출간했다. 따라서 독자는 이 두 작품을 동시에 읽고 비교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극중 두 인물인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의 사랑에 초점을 두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클레오파트라는 자기감정에 솔직한 '여인'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쇼의 작품에 클레오파트라는 왕족으로 태어난 미숙하고 어린 열여섯 소녀가 어엿한 파라오로 성장해 나가는 '통치자'로의 모습을 강조한다. 물론 '여성'인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라는 이성이 가진 매력에도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클레오파트라에게 카이사르의 매력은 그가 믿을 수 있고 이용할 수 있는 든든한 정치적 파트너라는 점에서 나온다. 작품의 마지막에 이르러 카이사르가 떠나는 장면에서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라는 타인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통치자로서의 의지를 가진 인물로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조지 버나드 쇼가 아무리 클레오파트라를 진취적인 여성으로 묘사했다고 해도 그 역시 서구의 백인 남성이다(참고로 나는 조지 버나드 쇼가 그의 처제를 위해 쓴 책 「자본주의 + 사회주의 세상을 탐험하는 지적인 여성을 위한 안내서」를 구입해서 읽었다. 나는 쇼가 당시 백인 남성들에 비해 상당히 진보적인 여성관을 가졌다고 믿는다). 로마 초기의 역사는 신화와 뒤섞여 있어 어디까지가 역사이고 어디까지가 신화이며 문학인지 알기 어렵다. 이 작품을 읽을 때 폴 벤느의 「그리스인들은 신화를 믿었는가」를 겹쳐 읽었다. 그래서인지 쇼라는 극작가가 잊힌 시대의 여성 통치자를 과연 어떻게 그렸는지에 주목하면서 읽었다. 얼마만큼의 '역사'라 믿어져온 것들 위에서 이 작품이 쓰였을까? 쇼는 부연 설명에서 본인들이 극중 인물들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상세히 설명하는데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설명은 카이사르만큼은 자세하지 않다. 이번에 히스토리퀸에서 출간된 두 작품을 읽으면서 통치자 클레오파트라에 대해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 앞으로 통치자 클레오파트라(요부 클레오파트라가 아닌)에 대한 새로운 글이 나오면 계속 읽어볼 예정이다.

@woojoos_story 모집, #히스토리퀸 출판사 도서지원으로
#우주클럽_역사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클레오파트라와카이사르
#조지버나드쇼
#히스토리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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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유령 - 폭력의 시대, 불가능의 글쓰기는 어떻게 가능한가
W. G. 제발트 지음, 린 섀런 슈워츠 엮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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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유령』은 W.G. 제발트와의 인터뷰, 평론가들의 에세이를 엄선한 책이다. 이 책을 엮은 린 섀런 슈워츠는 다수의 문학상을 받은 미국의 작가이자 번역가로 그녀에 따르면 제발트는 '독창적인 데다 완성된 소설가로 갑자기 난데없이 나타났'다. 1994년 독일에서 태어난 제발트는 1988년도 『자연을 따라. 기초시』를 출간했고 1990년에는 첫 산문픽션 『현기증. 감정들』을 출간했지만, 그의 문학이 영역본 출간된 것은 1996년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인 린 섀런 슈워츠에게 제발트는 갑자기 나타난 천재처럼 인식되었을 것이다. 2001년 자동차 사고로 인한 제발트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은 문학계에 큰 상실감을 주었다. 그는 산문픽션(제발트 자신은 '산문설화(prose narratives)'라는 용어를 썼다)이라는 장르를 개척했다.

국내에서 『기억의 유령』은 같은 출판사인 아티초크에서 2023년 출간되었고 2025년도에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개정판에서는 제발트의 소설 『현기증. 감정들』에서 중요한 모티프가 되는 작품인 버지니아 울프의 「나방의 죽음」, 카프카의 「사냥꾼 그라쿠스」와 제발트의 글쓰기 어록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옮긴 공진호 번역가의 옮긴이 후기가 존댓말에서 반말로 바뀌었다.


내가 제발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19년이었다. 『토성의 고리』는 꼭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렀고 『토성의 고리』는 2023년도가 되어서 구입했다. 그리고 같은 해에 아티초크에서 나온 『기억의 유령』도 구입했다.

그즈음 나는 나치와 홀로코스트, 인간악에 대한 주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프리모 레비, 장 아메리, 헤르타 뮐러, 에디트 에바 에거 등의 글을 구입해서 읽었고, 수용소 문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바스티안 하프너와 같은 독일인이 자신들의 역사를 기술한 것들을 찾아서 구입해 읽었다. 그리고 내가 늘 들여다보는 온라인 서재에서 하나같이 극찬하는 제발트의 『토성의 고리』를 구입해서 읽었다.

『기억의 유령』 서문에서 슈워츠는 제발트의 『아우수터리츠』를 읽고 나서 느낀 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 서서히 자신을 잘게 부수는 땅이 마지막으로 남겨놓은 것이 바로 그런 가루들이다. 우리는 그런 상상에 마음이 동요되기는커녕 이상하게 기운을 얻는 기분이 든다. 우울하긴 하지만 진리가 주는 자양분이기 때문이다. "
p44 <서문> 중, 린 섀런 슈워츠


진리가 주는 자양분. 나는 『토성의 고리』를 통해서 이러한 자양분을 얻었다. 인간은 인간을 수백만 명씩 학살하는 존재이다. 끔찍한 과오를 집단적으로 범하면 오히려 더 효과적으로 망각하는 존재이다. 제발트는 그러한 인간들의 기억을 필사적으로 붙들고선 기록으로 남긴다.



제발트의 소설 한 권과 인터뷰 및 평론집을 한 권을(구판과 개정판으로 두 번 읽었다) 읽은 나는 스스로를 '제발디언'이라 일컫는 문학 애호가들 집단에 끼워놓긴 조금 멋쩍다. 그러나 나는 제발트의 글을 감히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있다. 떠올리는 것조차 힘든 역사를 기억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기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젊은 청년 시절 독일에 살 때 제3제국 나치였던 교수들이 가까운 과거를 언급하지 않은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조국을 떠나 영국에서 글을 쓰고 학생들을 가르쳤던 그를 좋아한다. 불면에 시달리면서 제발 그가 다른 민족이기를 아니 아예 이 세상 어느 민족에도 속하지 않기를 간절하게 소망했던 그에게 계속하여 마음이 간다.


" 망명을 경험해 보지 못하고 대체로 자신의 사회 계급과 환경으로 일대기를 형성해 가는 사람들과 달리, 난민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운명을 순전한 우연에 내맡김을 의미한다. 이 운명이 이끄는 삶은 대부분의 경우 종국에는 너무 어처구니가 없는 것으로 일반인의 이해력을 벗어난다. 제발트는 그런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는 구전 역사가 또는 관습을 따르지 않는 전기 작가 같은 역할을 한다. 그의 책에서 멜랑콜리가 느껴진다면 이는 저자 스스로 짊어진 과업이 거의 희망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p264 <모의된 침묵> 중, 찰스 시믹(유고슬라비아 태생의 미국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번역가, 퓰리처상 수상자)



나는 제발트와 같은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 내가 알고 있던 과거의 나와 과거의 세상에서 한 걸음 두 걸음 조금씩 멀어지는 기분을 받는다. 그리고 어떤 절벽에 떨어졌는데 거기서 받은 충격이 평생토록 지속되는 느낌이다. 절벽에서 기어 나와 집에 돌아왔는데 내가 살던 집이 낯설게 보인다.

나의 안락하고 평범한 일상에는 얼마나 많은 죽은 자들과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에 빠져 살아가는 자들과 연결되어 있을까. 나는 살아가는 내내 이 기억들을 읽어야 할 처지임을 깨달았다. 제발트의 글은 그것을 들려준다.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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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 클레오파트라의 남자들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연수 옮김, 안지희 감수 / 히스토리퀸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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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는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 7세와 그녀의 마지막 연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기원전 69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를 300년 넘게 지배했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였고,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로마의 제2차 삼두정치의 세 권력자 중 한 명이었다.

이 책의 한국어 제목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에서는 클레오파트라의 이름이 안토니우스보다 먼저 나오기에 클레오파트라가 조금 더 비중 있게 그려질 것이라는 착각을 줄 수 있는데, 셰익스피어의 희곡 원제는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이다. 참고로 이 책에서는 두 사람이 거의 동일한 비중으로 다루어진다. 그래도 나는 한국어 번역본을 읽었으니 나의 독후감은 클레오파트라에 집중한다.

서구 백인 남성 중심의 세계사에서 클레오파트라는 ‘외모’와 ‘남성편력’을 중심으로 기억된다. 여기에 덧붙이면 미모와 함께 언어능력, 다방면에 걸친 지식, 정치적 능력 등도 언급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대중 매체 속 클레오파트라의 이미지는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라는 로마의 두 권력자를 연인으로 두었던 절세 미녀이자 요부의 이미지가 강하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는데, 어린 시절 내게 클레오파트라는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백인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연기한 바로 그 클레오파트라로 기억된다.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가 백인이 아니었다…)

이 책의 <옮긴의 말>에서 역자 김연수 번역가는 ‘셰익스피어의 시적인 표현을 통해,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되는 과정부터 비극적인 최후의 모습까지 낭만적이면서 아름답게 묘사된다.’라고 말한다. 독자인 내가 이 책에서 읽은 두 사람의 사랑은 낭만적이고 아름답게 묘사되었다기보다는 각자의 감정과 욕망에 매우 충실한 두 권력자의 모습이 생생하고 훌륭하게 묘사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셰익스피어’라는 이름 자체가 이미 최고의 수식어이다. 인류의 고전을 남겼다는 칭송을 받는 셰익스피어의 명문장들을 이 책에서도 마음껏 읽을 수 있다. 한편 나는 ‘번역’에 대해 무언가 정리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식견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역자의 현대적 의역으로 추정되는(그래서 더 재미있는) 대목이 몇 군데 보였다. 어떤 장면에서는 셰익스피어의 명문장에 감탄해서 밑줄을 긋고 플래그를 붙이고 또 어떤 장면에서는 “ㅋㅋㅋ”, “ㅎㅎㅎ”, “흠…” 등을 빈 여백에 끄적였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두 사람의 사랑에 초점을 두었지만 조지 버나드 쇼의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는 이집트와 로마 간의 변화되는 정치적 관계와 어린 클레오파트라의 성장 이야기에 주력한다고 한다. 몰락해가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되살리고자 했던 클레오파트라는 유능한 정치가이자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로 로마의 실권자들과 전략적 파트너십(사랑 동맹)을 맺어 이집트를 되살리고자 했다. 쇼의 작품에서는 한 나라의 왕이자 변화무쌍한 정치 무대의 외교관으로써의 클레오파트라를 읽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woojoos_story 모집, #히스토리출퀸출판사 도서지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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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와안토니우스
#윌리엄셰익스피어
#히스토리퀸출판사
#희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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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내각제가 온다 - 연대하고 협력하는 대한민국을 위한 헌법개정 제안서
강수택 지음 / 이학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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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내각제가 온다』는 경상국립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가 제시하는 의원내각제 개헌론이다. 헌법학자나 정치학자가 아닌 사회학자가 왜 의원내각제 개헌론에 대한 책을 저술했을까? 우리 사회의 분열과 대립은 이미 오래된 문제이다. 사회 갈등에 대한 원인과 답을 모색하는 것은 사회학자의 일이기도 하다. 저자 역시 이 문제와 오랫동안 씨름해오면서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게 되었는데 이것은 권력 구조와 매우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내의 갈등과 대립의 주요 원인으로 사회경제적 불평등, 성차별, 세대 차이, 남북 분단 등이 꾸준히 지적되어 왔고 이런저런 개선의 노력도 이뤄졌지만 권력 구조라는 정치적 환경에 내재된 문제는 다른 원인들에 비해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저자는 한국 사회의 극심한 사회 갈등은 권력 구조와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되었으며,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의원내각제의 전환을 주장한다.


사회학자로서 저자는 그간 한국 사회의 갈등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해왔으며 이전 저술 『연대주의』(2012)에서 대통령제보다는 의원내각제가 사회적 연대와 협력에 더욱 친화적인 정부형태임을 주장한 바 있다. 이 책은 앞으로 한국 정치와 정부형태가 가야 할 방향으로써의 의원내각제를 제안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의원내각제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한 우리 사회의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고 의원내각제로의 전환에 소요되는 시간을 최대한 앞당기고 싶다고 밝힌다.


저자는 본문을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했다. 첫 번째 부분인 2장과 3장에서는 사회학자로서 저자가 의원내각제를 주장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한국 사회가 갈등과 대립으로 가득 찬 사회에서 연대·협력형 선진사회로 나아가기 위해는 의원내각제로의 정부형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 부분인 4장에서 8장까지는 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의 올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에 대해 한국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다. 마지막 세 번째 부분인 9장과 10장에서는 의원내각제로의 전환을 위한 저자의 개헌 구상을 다룬다.





의원내각제란 무엇인가

의원내각제란 대통령제와 대조되는 정부형태로서 국가수반인 대통령과 정부수반인 총리가 분리되어 있다. 총리 혹은 내각은 의회에서 선출되고 신임을 받아야 유지된다. 반면 대통령제는 대통령이 국가수반과 정부수반을 겸임하며 국민에 의해 선출된다. 대통령제는 입법부, 즉 의회와 분리되어 있어서 대통령은 의회로부터 독립된 권한을 행사한다.


의원내각제는 대통령제의 요소도 섞여 있는 혼합형 체제도 있다. 이 체제에서 대통령은 보통 외교 및 국방에 관한 권한을 가지고 총리는 내정 권한을 가진다. 그래서 이 정부형태를 이원정부제 또는 이원 집정부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통령은 국민에 의해 선출되고, 총리는 의회의 신임이 필요하다.


의원내각제는 영국에서 가장 먼저 출현하여 발달했는데, 영국의 1215년 마그나카르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 귀족들은 의회를 통해 왕권을 제한하고 귀족들 자신의 권리를 보장하려 했다. 이후 중세 말 시민계급의 성장은 이를 더욱 촉진시켰고, 17세기 말 청교도혁명과 특히 명예혁명은 왕권의 제한과 의회의 권한 강화의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다. 18세기 초 내각이 의회에 책임을 지는 내각책임제가 등장하여 의원내각제가 자리를 잡아갔고, 서유럽과 영국의 식민지였던 오스트레일리아, 인도 등으로도 점차 확산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에는 독일과 이탈리아 등으로도 확산되었고 오늘날에는 의원내각제가 전 세계의 가장 대표적인 정부형태 혹은 정치체제이다.


한편 한국에도 의원내각제의 아주 짧은 경험이 있다. 우리 사회는 제2공화국에서 약 1년 정도 의원내각제를 경험했다. 대한민국 건국의 다수 주역들은 의원내각제나 혼합형 정부형태를 바랐지만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미국의 영향을 크게 받은 이승만이 대통령제를 밀어붙인 것이다. 저자는 우리리 사회는 제2공화국 시절의 혼란스러운 기억으로 인해 의원내각제는 정치적 불안정을 낳을 수 있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의원내각제는 서유럽 국가에서 의원내각제가 가질 수 있는 한계를 보완하는 제도적 장치로 건설적 불신임, 봉쇄조항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면서 성숙을 거쳤다. 그래서 현재 대부분의 연대협력형 선진 민주주의 사회가 증명하듯 협력과 협치를 통해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정치 체제로 증명되었다.





연대형 사회 대부분이 채택하고 있는

정치체제로서의 의원내각제

서울대학교 이재열 연구팀은 세계가치조사(WVS), 유럽가치조사(EVS), 지니계수 등 1999-2012년 시기의 자료를 활용하여 83개국 갈등 지수80개국 사회통합 역량 지수 산정한 후 이를 바탕으로 79개국의 사회통합 지수를 산정했다. 저자는 사회통합 지수 가운데 최상위 10개국을 '연대형 사회'라고 부른 바 있다.

연구팀에 제시한 10대 사회통합형 국가는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등인데, 이 국가들은 167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민주주의 지수 최상위 10개국에도 모두 들어있다. 종합하면 연대협력형 사회는 사회적 약자 집단과의 연대를 바탕으로 높은 수준의 사회통합에 성공한 최고 수준의 민주주의 사회라고 말할 수 있다.


참고로 한국은 사회통합 수준이 79개국 중 가운데 40위이며 사회갈등 수준은 갈등 지수 58위로 83개국 중 가운데로 26번째로 높다. 즉 한국 사회는 높은 갈등 수준과 낮은 통합 수준이며 다른 여러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저자는 왜 최고 수준의 연대협력형 사회에 특별히 주목하는 것일까? 바로 이들 국가의 정부형태와 혼합형인 스위스를 제외하고 모두 의원내각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각국의 경제적, 사회적 평등 및 복지의 수준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측정 방법들인 지니계수, GDP 대비 공공사회 지출 비율, 성불평등 지수, 사회 진보 지수, 민주주의 지수, 국가 행복도, 국내 총생산을 비교하여 <선진사회의 지수와 순위>를 표로 정리한다. 이 표에서 보여주는 것은 세계 최고의 선진사회의 압도적 다수가 의원내각제 정부형태를 취하고 대통령제를 취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점이다. 저는 이를 통해 대표적인 선진사회는 의원내각제가 일반적인 정부형태이며, 정치적, 사회경제적, 환경적인 선진사회에서는 대통령제가 매우 드문 정부형태임을 보여준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일반적인 대통령제 정부형태의

예외적인 현상일까?

저자는 정치체제로서의 의원내각제의 장점을 부각시키는 방법으로 대통령제와의 비교를 선택한다. 특히 정부형태로써 대통령제 보여주는 한계점들이 몇몇 나라에 예외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현상임을 설명한다. 불과 몇 주 전 대선을 치른 나라에 사는 국민답게 나 역시 대통령제의 한계와 특히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에 대해 온갖 매체를 통해 아주 충분히 들었다.


저자는 대통령제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으로 후앙 린츠의 분석을 소개한다. 린츠에 따르면 대통령제의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 특징으로는 이원적인 민주적 정당성과 경직성을 들 수 있으며, 이 외에도 인지 가능성과, 책임성, 중임 제한, 대통령직의 모호성, 국외자의 당선 가능성, 위임제 민주주의 등의 특징을 가진다.


미국의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 주니어는 자신의 저서 『제왕적 대통령제』(1973)에서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제왕적 대통령제란 대통령이 매우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되, 의회나 사법부로부터 효과적인 견제를 받지 않는 정치체제를 가리킨다. 닉슨 전 대통령,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등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대표적 사례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특징으로 흔히 거론되는 것이 대통령의 강력하고 광범위한 행정권력, 입법부와 사법부의 약한 견제 기능으로 인한 대통령 권력 집중,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 세력의 집권 남용, 부정부패, 정적 탄압 등의 만연 등을 들 수 있다. 이 외에도 대통령이 의회나 정당을 우회하여 국민과 직접 소통하고 언론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포퓰리즘과 결합하려는 경향이 있고, 정책 실패의 책임이 대통령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정치 불안정이 초래될 수 있다. 즉 제왕적 대통령제는 주로 권력 집중 및 권력 견제 실패와 관련된 여러 특징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제왕적 대통령제는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라 대통령제에 내재된 위험요소라는 논지를 지속적으로 펼친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서 의원내각제의 장점을 강조한다.



****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이 출간된 시기는 매우 시의적절하다. 2024년 말 12.3 비상계엄을 온몸으로 겪어낸 우리 국민에게 제왕적 대통령제의 극복을 바라는 공감대가 널리 확산되었다. 또 여느 때처럼 4년 중임제 대통령제로 개헌을 하자는 주장이 이런저런 매체에서 확인된다. 이 책은 4년 중임제 대통령제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의원내각제로 정치체제를 바꾸어야 한다는 명확한 비전과 함께 개헌안까지 제시한다. 때마침 나는 미디어에서 인물 중심으로 정치 해설을 하는데 다소 지쳐 있었다. 그래서 미디어에서는 수박겉핣기식으로 언급만하고 지나가는 정치체제 로써의 대통령제의 한계에 대해 정리된 글을 읽을 수 있어서 유익했다. 의원내각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필요없다를 이 책 한 권만 읽고 결정하거나 깊은 식견을 가질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대통령제의 한계에 내재된 불안요소를 좀 더 정돈된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때때로 온갖 매체가 정치 뉴스를 마치 연예 뉴스나 스포츠 뉴스처럼 전하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이 책은 이것조차 인물 중심 정치의 대통령제의 특징에서 비롯함을 알려준다. 대통령제에 내재한 근본적인 한계가 무엇인지 잘 정리하여 알려주는 이 책은 일독의 가치가 있다.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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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내각제 #제왕적대통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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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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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자유』현대 독일 철학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철학자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가 쓴 디지털 변화의 3부작 중 마지막에 해당하는 책으로 노동의 미래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샤낭꾼, 목동 비평가』, 『인공 지능의 시대, 인생의 의미』에 이어 그의 미래 3부작을 완성하는 책으로, 지금 우리는 단순히 기술 진보를 목격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의미와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전환기에 있다고 말한다.

산업혁명 이래 지난 200여 년 넘게 지속되었던 생업 노동 사회가 거의 끝나 가고 있으며, 진보나 번영에 대한 개념도 바뀌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알았던 노동 개념을 수정하도록 요구한다. 더 많은 경제적 번영을 이뤄 내야하고 무조건 더 많이 가져야 하는가? 왜 우리 사회는 사치스러운 물질적 욕구를 계속 자극하는 것일까? 이미 우리는 충분한 물질을 가지고 있고 우리의 행복은 최신형 핸드폰에 있지 않음을 알고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충분히 풍요롭게 살고 있는데 물질을 더 얻기 위해 지금처럼 오래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 이제 우리는 노동의 가치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목적을 찾고 싶어 한다. 우리는 노동과 삶의 균형을 고민하는 시대로 진입했다.


한편 많은 사람이 일을 적게 하고 스스로에게 더 많은 자유 시간을 허용하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상태에 대해 불안을 느낀다. 그간 신성시해왔던 노동의 가치를 재검토한다면 경제 성장이 둔화되지 않을까?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가 가진 낡고 세뇌된 노동에 관한 상식을 뒤집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방향성을 제시한다.



문제는 새출발이나 변혁 같은 거창한 말을 뒷받침할 만한 거대한 이념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 사회적, 경제적 창의성과 진정한 변화를 위한 용기 없이는 미래의 분배 투쟁, 민족주의의 득세, 학살과 전쟁 같은 두려운 시나리오를 막기 힘들다. (...)

모든 산업 혁명이 그랬듯이 가장 큰 도전은 완전히 다른 데 있다. 즉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함께 살아갈지를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 




제2차 기계 시대의 도래와 일의 미래


저자가 진단하는 오늘날의 상황은 '무너져 가는 세상과 승승장구하는 새로운 것의 행렬에 직면해" 있다.

19세기와 20세기를 지배했던 전통적인 노동 사회는 거의 끝나간다. 저자는 노동 사회를 제1차 기계 시대와 제2차 기계 시대로 구분한다. 산업혁명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시대가 제1차 기계 시대였다면 인공지능이 이끄는 디지털 혁명은 제2차 기계 시대를 열어젖혔다.

제2차 기계 시대의 본격적인 전개를 앞두고 각종 전문가들은 온갖 예측을 내놓는다. 이 예측은 주로 디스토피아적인데 비숙련 노동자들은 퇴출되고 강등될 것이라 한다. 빈부 격차는 더욱 증거할 것이다. 독일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산업국에서 노동자들이 사회적 추락을 겪게 되고 사회 시스템의 붕괴가 예상된다.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잃을 위기에 처해있고 이것은 선진국의 우익 포퓰리즘의 준동과 연관된다. 사회적 패자들은 자신들의 공공의 적으로 로봇이나 AI 시스템을 지목하는 대신 피부색과 출신 배경으로 적을 골라낸다. 혐오와 차별 분노가 사회에 넘실거린다.


저자는 묻는다. 우리는 이 갈림길에서 어떤 길을 택해야 할까? 일자리 손실을 만회하고 사회에 필요한 노동자들을 공급하기 위해 기존의 노동자들을 열심히 재교육시켜야 할까? 한편 디지털 혁명을 겪고 있는 우리의 사회적 상상력이 너무 빈곤한 것은 아닐까?


저자는 제2차 기계 시대에서의 일자리에 대한 고민보다 앞서 '노동 개념' 자체를 다시 돌아보라고 말한다. 사람으로 태어나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웬만하면 성실하고 근면하게 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저자는 우리가 가진 '노동'이 얼마나 이상한 개념인지 깨닫게 만든다.


생업을 위한

노동이 필요 없는 시대가 왔지만...


저자는 고대에서부터 오늘날까지의 노동 개념에 대해 살펴본다. 왜냐면 노동 개념은 인간 사회의 필요에 따라 변화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가진 노동의 개념은 근대 이후에 굳어진 것이다. 18세기에 서서히 자리를 잡은 부르주아 사회에서 체계가 잡힌 노동 개념이 오늘날까지 지속된다. 이 체계에서 신이나 자연이 아닌 노동이야말로 인간에게 각자 자리를 지정해 준다. 우리의 권리는 노동에서 성취한 것에서 비롯한다. 물론 물려받은 부모니 조상의 노동에서 얻어 낸 성취도 존재한다.

이 체계에서 열심히 노력한 사람은 무언가를 성취하고, 더불어 경제적인 보상을 받는다. 또 소비 종교가 전 지구를 휩쓸면서 노동자는 물질을 구입하기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할 동기가 더욱 뚜렷해졌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지위와 계급에 구애받지 않고 세상의 모든 것을 욕망하고 소유하길 꿈꾼다. 우리는 삶에서 노동이 늘 중심이며 여가 시간은 노동 시간의 보충물 정도로 취급한다. 따라서 정치의 영역에서도 미래에 대한 가장 큰 불안은 대량의 실업상태이며 미래에 대한 유토피아적 청사진은 '완전 고용'의 상태이다.


저자는 우리가 가진 '노동' 개념을 낯설게 바라보도록 하고 단순 반복적인 노동을 대체할 수 있는 제2차 기계 시대를 앞두고 우리의 상상력을 확장시키려 노력한다. 시대는 바뀌었고 우리의 욕구도 바뀌었다.

한편 우리의 사회는 생계유지를 위한 노동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지만, 우리는 이것을 모른다. 그냥 모르는 무지의 상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거부한다. 인간은 천성적으로 게으르다고 하는데 일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더욱 나태해지지 않을까?


21세기에는 사람들의 주요 욕구가 달라졌다. 많은 경우에 노동에서 자유로운 시간에 이런 욕구가 실현된다. 틀에 박힌 협소한 직업 세계나 노동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노동 세계 바깥에서 대부분의 욕구가 충족된다.



 

무조건적 기본 소득

저자는 노동 개념을 차근차근 설명하고 우리가 가진 '노동'의 개념이 얼마나 기독교적이고 근대적이며 일시적인 것을 깨닫게 만든다. 우리가 제2차 기계 시대에 걸맞은 노동 개념을 이해할 수 있도록 준비시킨 뒤 '기본 소득'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한다.


저자는 '의미 사회'라는 새로운 사회가 탄생했다고 말한다. 앞서 언급했듯 우리는 인류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노동에서 의미를 찾으려 한다. 1970년대 이후 정보 기계의 혁명으로 의미 사회가 탄생했는데, 예전의 노동 사회가 임금 노동을 중심으로 편성되었다면, 오늘날에는 의미를 중심으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나누어져 있다.


제2차 기계 시대가 단순히 노동 사회의 연장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사회로 만드는 것이 바로 이 경제적, 사회적 운영 체제의 변경이다. 의미 사회에서는 기존의 노동 사회와 달리 게으름을 반드시 배척하지 않는다. 우리는 물질적 성공만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서 어떠한 의미를 찾고 싶어 한다. 한편 사람들이 자기 노동력의 분배를 통해 자유롭게 의미를 생산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기반이 필수적이다. 21세기형 의미 사회로의 대전환을 위해서는 연금 제도와 같은 낡은 아이디어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무조건적인 기본 소득'이다.


무조건적인 기본 소득이라는 아이디어는 몇십 년에 불과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25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시민 수당>, <최저 생계비 보장>, <토지 배당>, <사회 배당>의 이름으로 불리다가 '무조건적 기본 소득', '기본 소득 보장', '보편적 기본 소득'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은 아이디어다.

저자는 생산력도 충분하며 경제적으로도 가능한 지금의 사회가 '의미 사회의 자유주의'로 나아가기 위해서 무조건적 기본 소득의 개념을 적극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무조건적 기본 소득이라는 오래된 아이디어의 전개를 정리하여 제시하고, 이 개념에 반대하는 기득권의 허술한 논리를 조목조목 비판한다. '기본 소득'이라는 말을 들으면 자동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질문들 '부자에게도 기본 소득을 제공하라고?', '아니 돈은 누구보고 내라고?' 등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답한다.


전 세계적으로 기본 소득에 대한 수많은 모델 실험이 훨씬 작은 목표를 설정한 것은 놀랍지 않다. 이들이 집중하는 문제는 대체로 단 하나의 질 문 세트이다. 앞서 이미 상세히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다시 반복하면 이렇다. 무조건적 기본 소득은 사람을 더 게으르게 만들까, 더 부지런하게 만들까? 사람들은 자기 주도적으로 변할까, 미성숙해질까?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설계해 나갈까, 아니면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몰라 허우적거릴까? 코브케가 명확히 지적했듯이, 이 질문들은 그 자체로 이미 우리의 자유주의적 자아상에 대한 공격이다. 왜냐하면 <자유 민주주의에서 기본 소득 실험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정치 공동체가 이미 전제하고 있는 사실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시민들은 각자 자기 주도적으로 삶의 결정을 내리고, 공동체 문제에 대해 서로 합리적으로 조율할 뜻과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중략)>


시대가 급격하게 변화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늘 불안에 떨었다. 그러나 증기 기관과 방적기, 전기화, 전자 제품의 발명으로 일자리는 줄어든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오히려 매번 늘었다. 저자는 비관론자는 늘 틀렸고 신중한 사람들이 항상 맞았다고 말한다. 디지털 혁명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에 팽배한 불안은 반자동적인 반응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시대를 해석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이다.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온갖 분야의 전문가들이 내놓는 예측은 허술하기 그지없지만 우리의 불안은 이를 알아채지 못하게 한다. 이럴 때 사상가들의 역할이 필요하다.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게 '사상가'란 낯설고 '리더'라는 사람들은 좀 더 친숙하게 들린다. 이들의 역할은 우리가 당연시하는 기존의 관념이 얼마나 낡은 것인지 깨부수고 새로운 사회에 대한 신중한 희망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 책은 그 아이디어를 일깨우기 위한 책이다. 생업 중심의 노동 사회가 거의 저물었으며 의미 사회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프레히트의 책이 두꺼운 이유는 무조건적 기본 소득의 개념이 허황된 개념이 아니라 25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의 노동 개념이 그만큼 세뇌되어 있기에 이것을 해체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설명이 필요해서가 아닐까 한다. 우리 시대의 사상가 프레히트 현학적이고 추상적인 난해한 언어가 아니라 현실에 단단히 기반을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언어로 우리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차근차근 설명한다.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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