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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에서 인간으로 산다는 것 - 에쿠멘(인간적 거처)의 윤리적 원리
오귀스탱 베르크 지음, 김주경 옮김 / 미다스북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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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귀스탱 베르크의 외쿠메네 이론은 근대성에 대한 성찰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근대성은 19세기에 니체를 통해 비판되었다가 20세기 후반 철학에서 집중적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환경파괴와 지구적 대재앙의 어두운 그림자, 인간의 기계화와 소외 등 근대성의 문제들은 두 기둥인 기계론과 주체철학으로부터 비롯된다. 그 뿌리는 플라톤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서구 문명은 이러한 근대성의 종말과 새로운 시작의 분절점에서 새로운 대안을 찾기 위한 철학적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니체와 하이데거에 이어 데리다의 해체철학은 플라톤 이후의 서구의 형이상학이 은폐해온 이면을 드러내 이 형이상학 자체를 새롭게 해체시킴으로써, 서구 역사를 기반 자체를 흔들고 있지만 새로운 미래를 위한 출발점에 서 있다.
이 책의 중심축은 플라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근대성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비판, 베르크 그 자신의 존재론과 세계관을 펼쳐보이는 두 축으로 엮여져 있다. 그의 주장은 '존재론에는 지리학이 결여되어 있고, 지리학에는 존재론이 결여되어 있다.'에 응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구체적 장소를 떠난 인간이란 빈 껍데기뿐이다. 슈펭글러는 문명을 '식물 형태적'이라 규정했다. 모든 문명은 일정한 장소(지역)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한 공간적 지리를 떠나서 어떤 문명도 논할 수 없다. 그만큼 장소는 인간 존재와 세계를 규정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다.
베르크가 논하는 이야기의 기반은 하이데거의 '거기-있음(존재)'과 일본 철학자 와쓰지의 '풍토성'(한고장의 물리적 사회적 특징 전체)이다. 이 기반을 원천으로 외쿠메네의 차원으로까지 확대되는 장소-존재론을 이야기한다. 여기에 이해의 틈이 있다. 철학적 사고를 바탕한 그의 이야기는 언뜻 쉽지 않게 다가오지만 우리가 예전부터 간직한 '우리네의 자연철학'을 떠올린다면 그리 어렵지도 않다. 그것은 자연을 모든 것의 근원으로 여기면서 인간을 자연의 한 부분으로 보는 일원론적 사고이다.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고 자연과의 조화라는 상호 연관적 자연관을 말한다. 환경문제는 자연을 공경의 태도로 보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이 문제가 인간의 편익과 욕구충족을 위한 인위적 작위에서 발생했음을 인지하여 삶 속에서 존재론적 행동양식인 인간의 순수한 행위를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땅에서 살면서 알게 모르게 스며든 선험적 이해를 끄집어 내면 그의 이야기는 순간 쉽게 다가온다.
환경문제를 철학적 개념의 차원에서 논한 글로서 그 가장 밑바닥을 들여다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