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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은 더디 온다 - 말씀에서 말씀으로 살아 낸 사막 교부와 교모의 인생 가르침
사막 교부와 교모 지음, 이덕주 엮음 / 사자와어린양 / 2022년 2월
평점 :
‘터벅터벅’ 일주일에 4~5번은 점심시간에 1시간 정도 걷는다. 빌딩과 자동차를 배경 삼고 걷는 것도 나쁘지 않다. 똑같은 거리, 장소를 지나가지만, 전혀 지겹지 않다. 오히려 매일 새로운 곳을 지나듯 한다. 익숙한 장소이지만 그 시간은 매일 새롭기 때문이다. 도시는 나에게 광야나 사막과 같은 곳이다. 도시의 광야 또는 도시의 사막이라고 할까? 삶의 익숙함과 낯섦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광야 혹은 사막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위험한 곳이지만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유대인들에게 광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경험하는 장소이다. 그래서일까? 교부와 교모들은 익숙함을 버려두고 낯섦의 세계로 들어갔는지도. 기독교가 공인 되고 박해 시대를 지난 후에 교회는 외적으로 평화를 찾은 듯 보였지만 내적 갈등으로 교회의 분열을 일으키게 된다. 그러면서 자발적으로 사막을 들어가는 이들이 생겨난다.
『깨달음은 더디 온다』는 교부와 교모들이 사막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삶의 진한 향기를 풍긴다. 마치 스무 개의 다채로운 향기가 날려오는 듯하다. 이 향기는 오늘날에도 진하게 전해진다. 도시 공간에 머물러 있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성공을 추동하는 자기개발서류의 책이 아니라 사막 교부와 교모가 추구했던 사막 영성이 아닐까 싶다. 사막으로 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이 책을 통하여 우리는 사막 교부와 교모의 가르침을 가까이 할 수 있다. 도시 한 가운데서 사막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도시의 광야 혹은 사막이 필요한 것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몸 따로 마음 따로가 일상이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도시의 사막은 하나님과 은밀히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이 공간의 출입문이 이 책이 되어 줄 수 있겠다 싶다.
급변하는 도시에 매몰되어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더디 온다.”라는 메시지가 불편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사실 믿음도 더디오는 것이 아닌가. 벤딩머신처럼 뚝딱하는 신앙 없고, 깨달음도 없다. 도시의 익숙함은 좀 내버려 두고, 이 책을 통해 사막의 낯섦 속으로 걸어가 보자. 영적 순례의 길은 더디 걸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