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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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작가의 유명세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소설이 유명해지는거야 좋은 작품의 당연한 보상이지만

요즘은 라디오, 팟캐스트를 넘어 TV에서도 그를 자주 만난다.

나야 뭐든 환영인데 방송에서의 모습을 보고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한다면 꽤 충격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TV 속 유한 순둥이와는 달리 발칙하고 신랄한 이야기를 만날테니까.


<한국이 싫어서>도 그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었다.


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무턱대고 욕하진 말아 줘. 내가 태어난 나라라도 싫어할 수는 있는 거잖아. 

p.10 (ebook, 총 523페이지 기준-이후 생략)


태어나자마자 주어지는 것으로는 뭐가 있을까?

몸, 성별, 가족, 혈액형, 국적 기타 등등

대부분 바꾸기 힘든 것들이지만 그 사실이 불합리하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아니 성별에 대해서는 입대 직전에 조금 했었던 것 같기도...)


특히 국가에 대해서만큼은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이만하면 중간쯤은 하는 나라에 태어났으니 다행이라 생각한 적도 있었고...

그런데 막상 살펴보면 이민과 귀화 등의 제도가 상당히 체계적으로 정립되어 있다.

또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떠나거나 한국인이 되기 위해 한국을 찾는다.

얼마든지 더 높은 순위의(어떤 기준이든) 국가를 택할 수 있는 셈이다.

(십 수 년 전만 해도 TV 홈쇼핑에서 캐나다 이민 상품을 팔았다)

내가 지금 바꿀 수 있는 선택지가 지금 보다 나아질 가능성을 품고 있으면

그 선택이 흠이 될 이유는 없지 않을까?


계나가 꿈꾸는 이상적인 삶은 전혀 대단치 않다.

오히려 꿈이라기엔 소박하고 소소한 일들 투성이다.

제주도에 살면서 가벼운 반찬과 함께하는 식사, 잠깐의 독서를 즐길 여유, 

조그만 텃밭 가꾸기, 수영 배우기, 1년에 한 번 서울 나들이 정도?

그런데 이걸 보고 '와~ 좋다'라는 생각이 든 것을 보면 나도 마음이 지쳐있긴 한가보다.

한편으로는 수 백년 전 과거의 사람들이 계나가 꿈꾸는 삶과 

꽤나 비슷하게 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들었고.



책의 마지막 부분엔 허희 평론가의 작품 해설도 실려있다.

독서 팟캐스트를 통해 너무 익숙한 분이라 읽어볼까 했지만 미뤄두기로 했다.

당장은 자꾸 요동치는 이 요상한 감정을 즐겨보기로.




굳이 리뷰를 쓰게 된 것은 이 책의 100자평 때문이다.

다른 서점사의 짧은 리뷰에 비해 알라딘의 100자평을 신뢰하는 편이다.

별다른 보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괜찮은 평을 자주 만난다.

'공감순'이라는 시스템 덕분이겠지?

하지만 이 작품의 경우는 전혀 반대였다.


'호주 이민 게시판에 이민 후기로 올라와있을(사이즈) 정도의 글이다. 이 시대와 세태를 그렸다는게 포인트인 듯하나 통찰은 없고 현상만 나열했다.'


이 작품의 100자평 중 가장 공감을 많이 받은 평의 일부분이다.

글쎄... 일단 나는 이 정도 사이즈의 글을 이민 후기에서 본 적이 없다.

비슷한 시기에 호주에 머물며 참 많은 고민을 했었고

온갖 커뮤니티를 뒤졌기 때문에 확언할 수 있다.

그리고 소설에 '통찰'이 필수요소인지도 의문이다.

책이 끝날 즈음 해답인 양 어느 방향을 제시했다면

오히려 소설의 끝맛을 즐기지 못했을 것 같다.


누군가의 평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공감이 가장 높은 평이 위의 평이라는 사실이 아쉬웠다.

혹시라도 저 평을 보고 책을 펼치기를 포기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적어도 나는 전혀 그와 같은 느낌을 받지 못했고,

이 소설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음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 평을 남긴다.




여자들더러 아이 많이 낳으라는 사람들은 출근 시간에 지하철 2호선 한번 타 봐야 해. 신도림에서 사당까지 몇 번 다녀 보면 그놈의 저출산 이야기가 아주 쏙 들어갈 텐데. 그런데 그런 소리 하는 인간들은 지하철을 타고 다니지 않겠지.

p.27 (ebook)


높은데서 떨어지는 사람은 바닥에 닿기 전에 몸을 추스르고 자세를 잡을 시간이 있거든. 그런데 낮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은 그럴 여유가 없어. 아차, 하는 사이에 이미 몸이 땅에 부딪쳐 박살나 있는 거야. (중략) 그러니까 낮은 데서 사는 사람은 더 바닥으로 떨어지는 걸 조심해야 해. 낮은 데서 추락하는 게 더 위험해.

p.311-312 (ebook)


우리는 뭐랄까, 전래 동화의 의좋은 형제 같은 처지에 빠져 있었지. 지명이는 나를 아껴. 나도 걔를 위하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우리 사이에 개선되는 건 아무것도 없고, 밤에 서로 상대 몰래 볏짚을 나르느라 몸만 피곤한 상황이었지.

언젠가는 우리가 달빛 아래 볏짚을 든 채 마주치게 돼 있었어.

p.392 (ebook)


몇 년 전에 처음 호주로 갈 때에는 그 이유가 '한국이 싫어서'였는데, 이제는 아니야. 한국이야 어떻게 되든 괜찮아. 망하든 말든, 별 감정 없어······. 이제 내가 호주로 가는 건 한국이 싫어서가 아니라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야.

p.410-411 (ebook)


내 고국은 자기 자신을 사랑했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그 자체를. 그래서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 줄 구성원을 아꼈지. 김연아라든가, 삼성전자라든가. 그리고 못난 사람들한테는 주로 '나라 망신'이라는 딱지를 붙여 줬어. 내가 형편이 어려워서 사람 도리를 못하게 되면 나라가 나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내가 국가의 명예를 걱정 해야 한다는 식이지.

p.429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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