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아비 (리마스터판)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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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작가에 대해 전혀 모른 채로 이 책을 접했으면 조금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아기자기한 표지에 귀여운 제목을 담은 이 책이 진중하고 어쩌면 냉소적이기까지 한 

이야기들을 그득 담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성적인 요소도 적지 않게 다루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김애란 작가의 몇 몇 작품을 접한 후 다시 만나는 그녀의 작품은 무척 신선하다.

그녀의 초기작은 이렇게 발칙한 면도 있었고 덜 정제된, 거침 없는 부분도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녀 특유의 구체적인 비유도 마음껏 만날 수 있어 즐거운 독서를 할 수 있었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표제작인 '달려라, 아비'와 '나는 편의점에 간다'였다.

리마스터판으로 새로 출간되며 작품 순서가 조금 바뀌었는데

구판에는 두 작품이 거의 붙어있었다.

그래서 쉴 새 없이 마음에 드는 문장들을 옮겨적느라 

내가 독서를 하는지, 필사를 하는지 혼동이 왔던 기억이 난다.


말하자면, 아버지가 돌아온 것이다. 십수년 만에 우편을 타고 가뿐하게.

p.22


그런데 자고 있는 줄 알았던 어머니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어머니는 작게 움츠러든 몸을 더욱 안으로 말며, 죽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무엇도 없는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잘 썩고 있을까?"

p.28


아마 내가 문학을 전공한다고 하면 그는 자신의 문학관에 대해 열변할 것이고, 미술을 전공한다고 하면 개중 유명한 미술 작가를 들먹일 것이며, 이벤트학이나 국제관꼐학을 전공하고 있다고 말하면, 또 '그게 뭐하는 과냐' 언제 생겼냐' '그거 졸업하면 뭐 하게 되냐' 등의 질문을 퍼부을 것이다. 그러고는 나중에 그는 나를 '안다'라고 말하겠지.

p.36


그것은 나의 생일이었다. 청년은 "공칠이사......"하고 조그맣게 중얼거리며 '비밀'인지 '번호'인지 모를 것을 기계에 눌러박았다. 청년이 나의 생일을 만지는 것을 나는 잠시 바라보았다.

p.45


이외에도 무수히 많지만 그녀의 문장 하나하나 자체가 스포일러나 마찬가지므로

아직 책을 읽을지 말지 고민하는 독자를 위해 여기까지만.


김애란 작가의 작품은 여전하다는 생각이 든다.

보여주기 싫은 부끄러운 내 모습을 대신 드러내준다고 해야할까?

내심 시원한 그 쾌감에 자꾸 그녀의 이야기를 찾는다.

다음에는 또 어떤 치부를 드러내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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