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여름 2019 소설 보다
우다영.이민진.정영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평점 :
절판




1. 어쩌다 <소설 보다> 시리즈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쟁쟁한 라인업이 즐비한 문예지도 종종 찾아읽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로는 <소설 보다>의 만족도가 더 컸다.

문예지에서 만났으면 몇 자 읽다가 '내 스타일이 아니네'하며 넘겨버릴 작품도

이 책에서 만나면 '크기도 작고 두께도 얇으니 참고 읽어보자'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TV와 달리 영화관에서 추가적인 인내력을 부여받는 것처럼 말이다.

덕분에 뒷심을 발휘하는 작품들을 만나기라도 하면 그 만족감은 상당하다.



2. 작품 뒤에 실리는 인터뷰도 보물 같다.

영화를 좋아하는 내게는 마치 영화 GV에 참여하는 기분이다.

누군가는 아무리 작가라 할지라도 자신의 감상에 방해받기는 싫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작가의 의도 또한 정답이 아닌 어느 독자의 감상 정도로 생각하면

내 감상에 방해를 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

책이란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부터 온전히 독자의 몫이 되는 것이니까.



3. 이번 여름호는 참 의외성이 많았다.

라인업을 보고 기대했던 작가의 작품은 실망스러웠지만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던 작가의 작품은 너무도 재미있게 읽었다.

또, 정작 마음에 드는 작품에서는 간직하고 싶은 문장이 없었지만

꾸역꾸역 힘겹게 읽은 작품에서는 가장 많은 문장을 간직했다.

게다가 작품은 마음에 들었는데 인터뷰가 마음에 들지않은 경우,

작품은 좋지않았는데 인터뷰는 상당히 괜찮은 경우까지 있었다.

어쨌든 반타작은 한 셈이니 중간에 극장을 빠져나오지 않은 보람은 충분했다.

(야구에서도 5할 타자는 꿈의 기록이 아니던가)



4. 가장 마음에 든 작품은 정영수 작가의 <내일의 연인들>이다.

언덕 위의 빌라로 직접 데려간 듯한 공간감과

주인공들의 감정으로 동화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작품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작품 곳곳에 심어놓은 유머러스한 장치들까지 딱 내 취향에 맞았다.

이 작품이 실릴 정영수 작가의 신간 소설집은 무조건 구입하리라.



5. <소설 보다> 시리즈를 통해 매번 내 취향에 맞는 작가를 발견한다.

고마움에 다음 호를 구입하고 또다시 고마워하는 과정의 반복인데

책을 좋아하는 애독자에게 이만큼 즐거운 일이 또 있겠나.

앞으로도 오랜 계절을 함께 했으면 좋겠다.




실제로 아버지는 그 후 오랜 세월을 더 사는 동안 어머니의 죽음이 여전히 끝나지 않은 장난이며, 언제고 아내가 다시 문을 열고 집 안으로 걸어 들어오리라 믿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아버지가 죽는 순간까지 슬픔에 지지 않고 끝내 나를 키우고 내 가족으로 남아준 것은 그런 속임수 덕분이라고, 나는 늘 생각했다. - P11

섬은 안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스스로 팽창하며 복잡해지는 금색 미로 같았다. 하지만 아는 길이 하나도 없으니 길을 잃을 걱정도 없지. - P19

"그다음에는요?"

마부가 물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다음 이야기가 남았다는 걸 어떻게 알았죠?"

"어떤 이야기에도 끝은 없어요. 분명히 다른 곳으로 이어진 길이 있죠." - P24

대기층의 온도에 의해 형태가 달라졌을 뿐 눈과 비는 사실상 같지만, 냄새는 달랐다. 비냄새가 살내처럼 조금 비릿하고 쿰쿰하다면 금속의 비릿함이 섞인 눈냄새는 그보다 산뜻했다. - P81

누군가의 울음을 듣는 건 천장에서 새는 빗물을 받는 느낌이더라고요. 바깥은 화창한데도 서늘하고 축축한 기분이었어요. - P86

비유는 곧 비유하는 사람의 세계를 반영하기에 우리가 타인의 비유를 이해하는 행위에는 타인의 방식으로 세계를 지각하고 공감하는 과정이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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