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뉴노멀 - 이택광 묻고 지젝 답하다
슬라보예 지젝.이택광 지음 / 비전C&F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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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SBSCNBC에서 제작한 프로그램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을 말하다>에서 이루어진 슬라보예 지젝과 경희대 이택광 교수의 대담을 활자로 옮긴 것이다. 대담이 이루어진 때는 2020년 5월이었고 12월에 책이 발매되었다. 2021년 1월인 현재 시점, 벌써 백신 보급이 시작된 나라들도 있으나, 여전히 팬데믹은 위세를 떨치고 있으며, 변이가 생겨나는 등 더욱 변화무쌍해졌다. ​


책을 폈을 때 맨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코로나19(COVID-19) 일지였다. 2019년 12월 중국에서 원인 불명의 집단폐렴이 발생한 것을 시작으로 2020년 11월 한국 정부가 5단계로 세분화한 새로운 거리 두기 제도를 시행하기까지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한 일지이다. 물론 종식에 대해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코로나 팬데믹은 여전히 현재 진행중이니 말이다.


이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항상 누구보다 기민하게 사회 이슈에 반응하는 철학자 지젝의 사유가 어떠한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지젝은 이미 코로나에 관한 단행본을 출판한 바 있는데, 이 또한 철학자 중에서 가장 빠른 행보였다.)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의 무게는 만만치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가볍게 읽히는 편이다. 지젝 자체가 위트 있는 통찰에 통달해 있기도 하고, 책의 부제가 <이택광 묻고 지젝 답하다>인 만큼 두 사람의 케미 넘치는 주거니받거니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진 것 같다. 친한 친구 사이이기도 하다는 지젝과 이택광 교수의 대담을 읽고 있노라면,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중, 그리고 다정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마치 그들의 자리에 동석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부담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우리가 ‘노멀(normal)’이라고 믿었던 질서는 COVID-19의 유행을 기점으로 상당 부분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즉, ‘뉴노멀(new normal)’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노멀이니, 뉴노멀이니 하는 용어는 낯설지 몰라도, 어찌 되었든 우리가 코로나 이전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지젝을 비롯한 많은 석학들이 말하기를 코로나 팬데믹은 분명 인류가 맞이한 큰 위기이지만,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는데, 우리는 대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걸까?


이러한 급변기에 지젝이 무엇보다 경계하는 것은 국제사회가 민족국가로의 회귀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자국의 안전 및 이익을 챙기는 것에 대한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국가 간 이기주의가 팽배하게 되고 실제로 적지 않은 부작용이 초래되고 있는 것을 우리 또한 이미 목격하고 있다.


이에 대해 지젝은 전지구적인 협력 시스템을 구축하여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는 방법만이 해결책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또한 지젝은 코로나 팬데믹이 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 또한 지적하고 있다. 그는 미국의 사례를 들며, 경기 회복에만 집중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팬데믹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고 말한다. 경제 정상화를 위해서라면 수많은 사람을 죽음에 빠트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비인간적인 시스템은 머지 않아 수명을 다하게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감염의 위험을 알지만, 당장의 생존을 위해 바이러스에 노출되어야만 하는 사람들. 우리 중 상당수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 부류에 해당할 것이다. 바이러스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의 양극화는 팬데믹이 길어질 수록 점점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이럴 때일수록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지젝은 강조하고 있다. 국가 간 이기주의는 지양해야 하겠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염병 위기를 제대로 통제하고 국민의 삶을 지탱할 수 있는 강한 국가임을 역설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젝은 상당히 호의적인 시선으로 한국의 방역을 바라보고 있는데, 공공의 안전이라는 '선한 이유'로 통제하는 경우 방역을 위한 정보 공개를 감시·감찰에 견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사례를 통해 방역이라는 선한 목적의 감시가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고도 잘 작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기라도 한 것일까.


참고로 이 책은 비단 코로나 위기에 대한 지젝의 사유가 궁금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냥 철학자 지젝에 대한 간단한 입문서가 필요한 사람에게도 적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전반부에서 일종의 서문 같은 역할을 하는 <이택광이 말하는 슬라보예 지젝> 파트가 그의 전반적인 사상을 이해하기 위한 자그마한 길잡이가 될 수 있겠다.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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