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레슨 인 케미스트리 1~2 - 전2권
보니 가머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50년대 여성으로서 화학자로 살아가는 이야기여서 당시의 성차별 문제가 적나라하게 보여진다. 뛰어난 화학자지만 취직할 자리도 얻기 힘든 엘리자베스. 연구소 내에서도 여자라면 당연히 행정직원일 것이라 여기는 고정관념과 싸워야 했다.

10% 엘리자베스 조트도 속에 원한을 품고 살았다. 다만 그녀의 원한은 주로 여자들이 뒤떨어진다는 통념에 근거하고 있는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원한이었다. 능력이 떨어진다, 지능이 낮다, 창의성이 부족하다, 남자들이 일터에 나가 우주에서 행성을 발견하고 제품을 개발하고 법을 제정하는 등 중요한 일을 하는 동안 여자들은 집에서 아이를 봐야 한다는 통념들 있잖은가.

박사 과정 중에서 성폭행을 당했으나 오히려 피해자인 엘리자베스가 학위도 얻지 못하고 쫓겨나고 가해자인 교수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 연구소에서도 팀 프로젝트의 주축이지만 여자이기 때문에 팀에서 쫓겨나 기초 연구에 배정 당한다. 남자들만 여자를 차별하는 건 아니었다. 여성 스스로가 여성을 차별했다. 대학에서 만난 여자들도 대부분 남편감을 만나려고 진학했다고 이야기 하는 게 흔하던 시대. 엘리자베스는 가사노동을 도맡아 하는 여성이 합법적인 노예나 다름 없다며 분개한다. 그런 시스템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아니 그런 뛰어넘어야 할 시스템 자체가 없어지고 바른 시스템이 새로 정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중 연구소에서 촉망 받는 화학자인 캘빈과 사랑에 빠진다. 타인들은 그녀가 캘빈의 뒷배를 얻기 위해 만난다고 생각했으나 그들은 단순히 서로 사랑했을 뿐이었다.

17% 그리하여 둘의 첫 키스는 그 어떤 화학 법칙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영구적인 결합을 형성했다

서로 사랑하게 된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간다. 엘리자베스는 오롯이 엘리자베스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다른 사람의 행동에 따라 규정되는 삶이 싫었다.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가고 싶었다. 그리고 캘빈은 그걸 존중해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노력만으로 헤쳐나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헤이스팅스 연구소에서 연구자들 면접을 보는 장면에서 학문적인 성취는 거의 없는 바보들은 어디에나 있고 심지어 면접도 잘 본다는 문구가 씁쓸했다. 어린 시절을 보육원에서 보낸 캘빈의 이야기도 마음 아팠다. 자신의 아버지가 보내온 과학책, 그리고 그를 데려가는 대신 보내 준 그 책을 사랑인 것처럼 마구 욱여 넣는, 가족을 갈구하는 외로운 아이. 상처를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은 서로에게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지지해주던 캘빈이 떠난 후 그녀는 홀로 미혼모로 아이를 키우면서 갈팡질팡 흔들리고 힘들어한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도움을 주는 주변 사람들이 있다. 육아는 처음 겪는 일이니 넘어지기도 하지만 결국은 다시 일어난다.

80%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삶이란 바로 그런 게 아니겠는가? 끝없이 일어나는 실수에 끊임없이 적응하는 게 삶이다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엘리자베스는 돈을 벌어야했다. 우연히 맡게 된 요리 프로그램에서 여성적인 활동의 대명사인 요리를 남성적 활동으로 보이는 화학으로 설명하게 된 엘리자베스. 그녀의 방송은 단순히 화학적 관점에서 요리를 설명하는 게 아니었다. 여성들에게 합법적 노예로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도록 용기를 불어넣는 방송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엘리자베스의 마지막 방송.

82% “화학은 변화다라는 문장을 쓰고서 방청객을 돌아보았다.

  자신에 대한 의심이 들 때마다,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이것만 기억하십시오. 용기는 변화의 뿌리라는 말을요. 화학적으로 우리는 변화할 수 있게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그러니 내일 아침 일어나면 다짐하십시오. 무엇도 나 자신을 막을 수 없다고. 내가 뭘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더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라 규정하지 말자고. 누구도 더는 성별이나 인종, 경제적 수준이나 종교 같은 쓸모없는 범주로 나를 분류하게 두지 말자고. 여러분의 재능을 잠재우지 마십시오, 숙녀분들. 여러분의 미래를 직접 그려보십시오. 오늘 집에 가시면 본인이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시작하십시오.”

화학은 변화다. 바로 그것이 레슨 인 케미스트리, 우리가 화학에서 배워야 하는 레슨이었던 것 같다. 남자든 여자든, 우리를 묶고 있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스스로 자기 자신이 되는 변화를 시작한다면 화학으로부터 배운 소중한 가르침을 잘 활용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소설 전반에 걸쳐 여성을 차별하는 내용과 그것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엘리자베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어쩐지 이 불협화음은 지금 집필한 책이라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엘리자베스는 그 시대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닌 현재의 교육을 받은 사람 같다. 그 시대의 교육을 받았다면 차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남들이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어쨌든 지금의 관점에서 옛날 그 시절에 한 방 먹이는 기분이 드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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