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베는 완고한 사람이다. 직접 차를 수리하고 커피를 내리며 손으로 집을 고치는 옛날 사람이다. 컴퓨터로 일을 하고 트레일러 후진조차 못 하는 요즘 사람들이 오베는 맘에 들지 않지만, 그런 요즘 사람들 역시 옛날 사람인 오베와 함께 일하지 못한다.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떠나 보낸 오베는 직장에서도 일을 그만 두게 되었다. 아내가 죽은지 6개월이 지났지만 인정하지 못하는 오베. 아직도 아내가 혹시 라디에이터 온도를 자기 모르게 조정했을까봐 하루 두 번씩 만져본다는 문장에서 사무치는 그리움이 느껴졌다. 점차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오베가 이야기하는 아내 소피에 관한 내용은 현재형에서 과거형으로 옮겨간다. 부재를 인정하기 시작한다.

오베의 아버지는 과묵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기술자여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했지만 말수는 적었던 사람, 말로 남을 해코지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오베도 그런 아버지의 성품을 물려받았다. 이웃집에 불이 나면 투덜거리고 짜증을 내면서도 사람을 구하기 위해 불길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

46% 그는 정의와, 페어플레이와, 근면한 노동과, 옳은 것이 옳은 것이 되어야 하는 세계를 확고하게 믿는 남자였다. 훈장이나 학위나 칭찬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래야 마땅하기 때문이었다.

확고한 자신만의 세계가 있고 말이 없는 오베와 대비되는 소냐는 밝고 화창한 날씨 같은 사람이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행복한 여행을 하던 중 닥친 불의의 사고. 그 사고로 소냐는 뱃속의 아이를 잃고 휠체어를 타야만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 다시는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 그 사고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기 때문에 오베는 끝없이 싸웠다. 관련부서에 투서를 보내고 또 보내고, 소냐가 학교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오르막길을 설치해달라고 요구하고. 그러나 하얀 셔츠로 대변되는 관료주의는 그들에게 답해주지 않았고 오베는 싸움을 그만두지 않았다.

61% 하지만 어둠이 이기게 놔둔다면 소냐는 소냐가 아니었을 것이다.

“우린 사느라 바쁠 수도 있고 죽느라 바쁠 수도 있어요, 오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답하지 않는 관료주의를 기다리는 대신 오베는 직접 학교에 오르막길을 설치했다. 그의 두 손으로. 장애를 가지게 된 소냐에게는 채용의 문도 좁았는데, 그녀가 일 할 수 있게 된 학교는 선생님들이 꺼려하는 곳이었다. 다들 포기한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 거기에서 소냐는 아이들에게 셰익스피어를 읽혔다.

한편 오베와 소냐의 이웃에는 루네와 아니타가 살고 있었다. 둘다 완고한 옛날 사람으로 타고다니는 차가 그 사람을 대변해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베는 늘 사브를, 루네는 늘 볼보를 타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루네와 아니타의 아이가 먼 곳으로 떠나버리고 루네는 볼보를 포기하고 BMW를 산다. 그리고 사브를 고집하는 오베와 볼보를 포기한 루네는 멀어져버린다.

한편 소냐를 잃고, 직장도 잃은 오베는 더 이상 삶을 지속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마지막을 유서 한 장에 잘 정리해놓고 삶을 끝내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주변 이웃들과 의도치 않게 엮이면서 칠칠치 못한 사람들이 자꾸 오베의 죽음을 방해한다. 트레일러 후진도 못하는 이웃 때문에 대신 운전을 하기도 하고, 라디에이터를 수리하고, 열차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한다. 소냐의 무덤가에서 그녀에게 이야기하는 오베는 소냐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 죽고 싶었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외면하지 못한다.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말을 내뱉지만 결국 도와주고야 마는 사람. 결국 치매에 걸린 루네를 기관으로 억지로 데려가려는 하얀 셔츠를 저지한 오베는 스스로의 손으로 삶을 끝내는 대신 주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로 한다. 소냐 곁으로 가는 일정을 조금 미루기로 한다. 그리고 오베의 생이 마침내 끝을 만난 이후, 오베의 집은 새로운 새대에 넘겨지고 그 집을 이어가게 될 사람은 사브를 탄다.

사브를 탄다. 마지막에 등장한 이 문장이 이토록 감동을 주는 말이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사브로 대변되는 시대를 꿰뚫고 이어지는 그 무언가. 비록 커피를 내리는 법도, 컴퓨터를 사용하는 법도, 일하는 법도 모두 달라진 새로운 시대이지만, 시대와 상관없이 이전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변함없이 이어지는 그 무언가,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변치 않는 무언가가 사브로 표현되는 느낌이었다. 고전과 SF에서는 지금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완전히 다른 것을 보여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된 것들을 보여주기 때문에 변치 않는 근본이란 무엇인가를 볼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아주 오랜 고전이 아니더라도 한 세대 위의 어른들과 지금 세대 간에도 확연히 보이는 차이가 있다. 다만 그 차이가 아주 크지 않아서 오히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차라리 아예 외계인이었다면 이런 점은 다를 수 있구나 이해할 수 있을 일들을, 아주 약간 다르니 같을 수도 있을텐데 왜 이렇게 다를까 싶게 만드는 차이들.

결국 통하는 것은 진심. 우리가 가야 할 길은 곧고 바른 길

오베라는 남자를 통해 그런 차이들을 서로 이해하면서 시대를 관통하며 변하지 않는 가치들은 서로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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