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마음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빛’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이름의 ‘뤼시’. 그녀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다. 서커스단에서 자란 뤼시는 철창 속 (진짜)늑대와 사랑에 빠지고, 늑대의 눈동자에 감춰진 순수함을 자기 안에 간직한 채 서커스단과 함께 이곳저곳을 유랑하며 지낸다. 그러나 방랑하는 서커스단에서의 생활도 그녀의 영혼을 충족시키지는 못했나보다. 뤼시는 여러 번의 가출을 하며 그 때마다 자신에게 새로운 이름과 이야기를 붙여준다. 이 가출은 매 번 아버지의 말없는 분노(혹은 체념) 그리고 어머니의 호탕한 웃음과 함께 막을 내리지만, 그녀 안에는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자유로움이 늘 내재되어 있었다.

이런 가출생활을 마무리짓게 된 계기는 기숙학교 입성. 뤼시는 기숙 생활을 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로망을 만나 파리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뤼시와 로망의 결혼 생활은 다소 무료했고, 뤼시는 ‘단풍나무’를 계기로 만나게 된 알방(괴물)과 사랑에 빠진다. 결혼 생활 중 다른 이와 사랑에 빠진 것만도 어떤 면에서는 놀랍도록 자유로운데, 뤼시는 로망과 알방 중 누구도 선택하지 않은 채 모두를 떠나 다시 아버지와 어머니의 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우연히 시작하게 된 영화 배우 생활. 몇 년 만에 따낸 비중 있는 배역을 뒤로하고 그녀는 ‘나의 수호천사’의 요청대로 호텔에 머물며 글을 쓰기 시작한다. 

레몬빛 표지가 상큼하고 사랑스러웠던 크리스티앙 보뱅의 <가벼운 마음>. 이토록 산뜻하고 경쾌한 문장들이라니. 보뱅의 다른 책들을 아직 읽어보지 못한 터라 그의 다른 책들과 어떻게 결이 다른지는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매우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책장 사이사이 자리잡은 수많은 인덱스들은 내가 보뱅에게 반했다는 증명. 인친님께 나눔받은 <환희의 인간>과 <그리움의 정원에서>도 어서 읽어보아야겠다.

<가벼운 마음>을 읽다보면 ‘랭보’ ‘모차르트’ ‘슈베르트’ ‘거인’ ‘괴물’ ‘뚱보’ ‘나의 수호천사’ 등 특별한 이름들이 많이 나오는데, 뤼시는 자신에게 무언가를 주는 것들에 언제나 이름을 다시 붙이고, 새로운 이름을 주는 것은 ‘사랑의 행동이며, 연인들의 특권’이라고 말한다(p.192). 그런 면에서 그녀의 인생은 참으로 사랑이 넘치는 삶이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가출을 일삼던 자신에게도 수많은 새 이름들을 붙여주곤 했으니 말이다. 

뤼시의 ‘가벼운 마음’은 그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고 홀로, 가벼이 존재하는 데서 한 층 더 빛을 발한다. 그녀는 ‘가장 위대한 기술은 거리두기의 기술’이며,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정확한 지점을 찾는 방법은 어떠한 비용을 치르고서라도 배워야만 한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부모, 남편, 친구들’과 같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성장할 수 없으며, 그 곳에서 벗어나 그들에게 말하지 않을 것을 할 때야 비로소 성장할 수 있다고 말이다.

이 책은 작품 속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독자들의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나에게는 뤼시의 가벼운 마음이, 일상 속에서 소중한 것들을 발견해내는 그 기술이, 타인과 분리되어 스스로 성장해가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나에게는 부족한 그 가볍고 자유로운 마음이, 책의 레몬빛 표지 만큼이나 경쾌하게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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