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그림도 참 멋지고 예술 적이지만 옛날 우리 선조가 그린 붓으로 그린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와~
소리와 함께 감탄이 절로 나온다.
옛 그림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마법과 같다.
그래서 난 그림전을 참 좋아한다. 이번 책도 아이와 함께 읽어보면 좋을것 같아서 신청해 보았다.




정선의 그림은 두 점이나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금강전도>와 <인왕제색>이다.
조선시대 화가 중 김홍도,신윤복,김정희와 같은 이들의 작품도 국보로 지정된 것이 있지만 한 사람당
한 점이다. 정선처럼 두 점이나 국보로 지정된 경우는 없다.
이 정도로 겸재 정선이 얼마나 대단한 화가인지 알 수 있다.
정선을 두고 사람들은 흔히 조선 시대 화성 이라고 부른다. 화성은 그림의 성인 이라는 뜻이다. 정선은 이렇게 조선 시대의 최고 화가로 꼽히는 인물이다.
정선은 한양의 북안산 자락 그러니까 지금의 서울 종로구 청운동 경복고등학교 자리에서 태어났다.
52세에 인왕곡 으로 이사했고 이곳에서 살다 84세에 세상을 떠났다.
정선이 태어난 곳은 한양 도성 바로 안쪽 지역으로 북악산과 인왕산이 마주하고 있는 곳이다.
인왕산이 거대한 바위와 북악산의 우뚝 솟은 봉우리는 지금도 서울 도심 곳곳에서 한눈에 들어온다.
정선은 인왕산과 북악산을 오르내리면서 직접 산천을 그려 보면서 많은 고민을 했던것 같다.
겸재 정선이 새로운 화풍의 진경 산수화를 개척해 선보이자 많은 사람들이 이를 반겼다.
특히 미술을 좋아하는 문인 양반이나 교양 있는 중인들이 정선의 그림을 좋아했다고 한다. 조선 시대 정선의 집 앞에는
정선의 그림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정선의 작품은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당시 정선의 그림 가격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커다란 그림 하나가 18세기 청나라 1급 월급의 10배가 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그림을 잘 그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겸재 정선은 양반 사대부 집안 출신이다. 하지만 말이 사대부이지 3대째 벼슬에 나아가지 못해 위세는 변변하지 못했다.
정선이 어릴 때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 집안은 가난했고 끼니를 때우기조차 어려웠다고 한다. 가정 형편이 어렵다 보니
과거 공부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환경은 그랬지만 정선은 매우 성실했고 열심히 공부를 했다.
유학에 능했고 주역에 대한 지식도 매우 뛰어났다. 풍수지리에도 해박했고 동시에 자신의 그림 재능을 살려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정선은 산수화뿐 아니라 화조화,초충도 등의 작품도 그렸다 그것도 아주 잘 그렸다. 우리의 산천을 웅장하고 그린 화가여서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꽃이나 풀벌레를 표현하는 데 서툴지 않을까 생각한다면 그건 아니다.
정선의 그림은 전체적으로 생동감이 넘치고 화면의 구도가 시원시원하다.
정선은 나이 여든이 넘어서까지도 붓을 놓지 않고 왕성하게 그림을 그렸다. 그만큼 작품도 참 많이 남겼다.
정선은 우리 국토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그림을 열정적으로 그렸다고 한다.
정선의 그림을 감상하다 보니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을 절로 느낄 수 있었다.^^
오늘 이 글을 쓰다 정선의 그림을 보니 마음이 뭉클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