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책은 우리아이가 참 좋아하는 분야이다. 우리나라 국민으로 태어난 이상 역사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게 당연한듯 하다.
이번 주제별 우리 역사 탐구는 3권으로 법과 제도 이야기 이다.
오천 년 우리 역사에는 그 시대를 뒤흔들어 놓았던 여러 가지 사건 사고들이 있다. 어떤 사고들은 나라를 위험에 빠뜨리기도 하고 어떤 사건들은 왕의 권위에 도전하기도 한다. 또 주변국과의 마찰도 끊이지 않았다.
우리 역사에서 사건,사고를 경험한 선조들은 다시는 이런 잘못을 반복하기 싫었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이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고민했고 그 예방책으로 법과 제도를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최초의 법 범금 8조는 무엇일까?
초기의 국가라고 해도 한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 때문에 백성들을 체계적으로 다스릴 만한 규칙이 있어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범금팔조이다.
범금 이라는 말은 어기는 것을 금지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범금팔조의 내용은 전부 전해지지 않고 세 개의 내용만 전해지고 있다.
194년 고구려 고국천왕 11년 고구려의 국상인 을파소의 건의로 실시된 빈민 구제 정책이다.
흉년이나 곡식이 거의 떨어질 봄에 나라에서 농민에게 곡식을 빌려준 다음 수확기 때 갚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조선시대까지 빈민 구제 제도로 이어져 상평창,환곡,의창등 여러 가지 빈민 구제 정책을 낳기도 했다.
왜 여왕은 신라에만 있었을까?
신라에만 있었던 특별한 신분제도,신라는 원래부터 지배층이었던 사람들과 훗날 신라가 정복해서 흡수한 지역의 부족장과
차별을 두기 위해 등급을 매겼다. 이것이 골품제도이다.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골품제 때문이다. 골품제는 신라만의 독특한 신분제도였다.
신랑에서 왕이 되려면 반드시 성골 출신이어야 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성골 출신의 남자들이 점점 줄어 들었다.
26대 왕인 진평왕 때에 이르러서는 성골 출신의 남자가 한 명도 남지 않게 되었다.
신라시대의 골품제는 단순히 신분과 벼슬을 구분 짓는 것뿐만 아니라 신라 사람들의 생활 하나까지 영향을 미쳤다.
광종은 왜 과거제를 실시했을까?
고려 4대 왕인 광종에게 고민이 한 가지 있었다. 태조 왕건이 고려를 세운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왕의 힘이 강하지 못했다.
과거는 시험을 통해 관리를 뽑는 제도인데 원래 중국에서 먼저 시작되었고 광종 때 중국에서 귀화한 쌍기라는 신하의
건의에 따라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되었다. 고려시대의 과거는 그리 활성화되지 못했고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와서야
관리의 등용문으로 자리 잡았다.
역사속 사건 속에는 그 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원인이 있고 그 사건이 낳은 역사적 결과가 담겨 있다.
오천 년 역사 동안 이어졌던 여러 가지 역사 사건을 보다 보면 우리나라의 사회 모습이 어떻게 변했고 발전했는지 알 수 있었던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