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실과 이천의 과학 이야기~

아이랑 과학책을 읽다보면 우리나라 과학자보다 외국의 과학자들에 대해서 더 많이 책을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도 장영실과 같은 훌륭한 과학자들도 있다.

세종 때를 전후한 조선 전기는 우리 역사상 과학의 발전이 돋보인 시기였다. 민생 안정과 부국강병에 힘쓴 세종은

과학 기술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조선은 세종 시대에 들어서면서 학문과 제도 과학과 음악등 다양한 분야들이 발달했다.

특히 과학에서 눈부신 업적이 많았다. 이런 발전이 가능했던 이유는 세종이 각 분야의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또한 장영실과 이천 그리고 세종의 운명적인 만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볼수 있다.


당시 장영실은 신분이 낮고 천대받던 노비여서 능력을 발휘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세종은 장영실의 실력을 인정하여 노비의 신분을 풀어 주고 상의원 별좌라는 벼슬까지 주어 능력과

열정을 펼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이천의 과학적 능력을 높이 사서 이천에 과학 기술을 담당하게도 했다.

이로 인해 이천은 화포 제작과 금속 활자를 개발하는 등 큰 공을 세웠다.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결과물을 만들수 있도록 지원한 세종의 지휘 아래 장영실과 이천은 서로 힘을 모아

뛰어난 발명품을 많이 만들었다.


태양과 달 별들의 움직임을 한눈에 보여 주는 천문기구로 중국의 혼천의를 참고하여 이천과 장영실이 혼천의가 들어 있는 혼천 시계는 우리나라 과학 문화재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문화유산이다.


측우기는 1441년에 세계 최초로 만들어졌으며 홍수나 가뭄 같은 자연 재해를 예방하여 농사 짓는 데 도움을 주었다.

학문이 발전했던 세종 때에 많은 책들이 만들어지면서 활자와 인쇄 기술도 발달하게 되었다.

세종의 명으로 장영실과 이천,김돈 등은 구리 활자인 경자자의 결함을 보완한 금속 활자 갑인자를 만들었다.

갑인자는 글자의 모양이 선명하고 아름다워서 책을 읽기에 좋았고 인쇄하기도 편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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