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대왕의 한글 연구소는 우리 아이가 제일 존경하는 위인중 한 분인 세종대왕 이야기 이다.
세계의 많은 학자가 알파벳보다 한 단계 더 발전한 과학적인 문자라고 칭찬한 한글은 정말 위대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영어에 밀려서 그 위대함이 잘 드러나지 않아서 참 속상한 생각이 든다.
그래도 언제가는 우리의 언어 한글이 더 유명해 질것라고 믿고 있다.



조선의 제4대 임금인 세종 대왕은 세자 시절,책을 펼쳤다 하면 책 속의 숨은 뜻을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 백번 읽고
백번 써야 끝을 맺었다고 한다.
항상 독서를 즐겼던 세종 대왕은 백성들도 자신처럼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길 바랬다.
하지만 한자는 과거에 급제해 출세하기 위해 공부만 해야 했던 양반들조차 막힘이 없이 쓰려면 20년을 공부해야 했을
정도로 어려운 문자였다.
세종 대왕은 1446년에 우리글인 훈민정음을 만들었노라 세상에 알렸다.
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당시 훈 이라는 글자는 여자들이나 신분이 낮은 아랫사람에게
쓰던 말이다. 이 이름만으로도 세종 대왕이 글을 모르는 백성을 위해 글자를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한글은 말소리를 고스란히 기호로 나타낸 소리글자라서 읽기만 해도 단박에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한자는 글자마다 그 뜻을 모르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없다.
양반들이 한글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유는 백성들이 글을 알게 되면 자신들이 수월하게
일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똑똑해진 백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과거를 봐서 출세를 할 테고 더는 몸을 쓰는 험한 일을 하려들지 않으려 할까봐였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든 가장 큰 이유는 남자든 여자든 신분이 높든 낮든 조선의 백성이라면 모두 자기 생각을 글로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훈민정음이 백성들 사이에 퍼지면서 편지로 서로 소식을 전하기도 하고 한글로 쓴 소설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양반들만 읽던 문학 작품을 백성들도 즐기게 되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후 문종과 세조 때까지만 해도 한글은 나날이 쓸모가 많았다.
하지만 연산군 대에 이르러 큰 화를 당하게 되었다.
세종 대왕이 한글을 만들기 위해 궐 안에 설치했던 언문청이 사라진뒤로 양반집 여자들과 일부 백성들만 사용하던 한글은
1894년 11월22일에 드디어 공식 문지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1910년 일본에 강제로 국권을 빼앗기면서 나라말의 자리를 일본어에 내줄 수밖에 없었다.
1945년 광복을 맞이하여 우리 민족은 우리글을 쓰고 이름도 마음껏짓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 세계 언어학자들은 한글에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남녀 노소 모두가 쉽게 배울 수 있는 우리에 글
우리의 자랑이자 우리 민족의 힘,한글
우리가 소중한 우리에 언어 한글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분별한 외래어 사용은 하지말고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