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남한산성이 있다.
그래서 우리가족은 남한산성을 올라가게 되었다. 남편과 아이가 저만치 가고 내가 따라가고 있었다.
나는 편한 마음으로 가볍게 산책 하듯이 가려 했지만
막상 남한산성 가는 길은 험하고 가파랐다.
가다가 포기 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에 남한산성에 도착했다.
아이도 남한산성을 다녀온후 병자호란에 관심이 많아지던 찰라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책으로만 보는것보다 직접 다녀온후 아이가 책을 읽으니 많이 이해를 하면서 읽는것 같았다.



남한산성은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에 있는 조선 시대 산성이다.
도성을 지키던 성으로 산세을 그대로 이용했으며 병자호란 때 인조가 청나라군과 대치하여 격전을 벌인 곳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주변의 다른 나라에 변화가 있을 때마다 큰 위기에 빠지곤 했다.
몽골의 원나라가 멸망의 길을 걷고 명나라가 우뚝 서자 왜구들이 물밀듯이 몰려와 나라 전체를 짓밟았고
홍건적 20만 명이 고려를 침범해 들어와 개경을 함락 시키는 등 많은 피해를 입혔다.
결국 고려는 멸망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원나라를 무너뜨리고 일어선 명나라가 힘이 약해지자 이번에는 일본이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1636년 12월에 청나라는 정묘호란에 이어 조선에 2차 침입을 했다.
이것이 바로 병자 호란이다.
병자호란은 명나라와 조선을 손아귀에 넣으려는 일본의 야망으로 부터 시작된 전쟁이었다.
분열된 일본을 통일한 사람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였다 .
통일을 성공시킨뒤 날로 강해지는 일본 내의 신흥 세력이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신흥 세력을 내몰고 국민을 한마음 한뜻으로 뭉치게 할 뚜렷한 방책이 필요했다.
그 방책이 바로 명나라 공격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명나라를 공격할 테니 조선이 앞잡이 노릇을 하라고 요구했다.
조선은 당연히 그 요구를 거절했다. 결국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명나라 공격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조선을 공격하기에 이르렀다.
그 무렵 조선은 200년 동안 지속된 평화로 전쟁에 대한 준비가 거의 되어 있지 않았다.
정묘호란 이후 조선과 청나라는 형제의 나라였지만 병자호란 이후에는 임금과 신하의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다.
전쟁이 끝난 뒤 조선 백성 50만 명이 청나라로 끌려가고 나라 전체가 쑥밭이 되었다.
조선은 명나라와 관계를 끊고 청나라에 해마다 엄청난 조공을 받쳐야 만 했다.
뿐만 아니라 청나라가 명나라를 공격할 때마다 청나라에 군사 지원을 해 줘야 하는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 뒤 우리나라가 36년 동안 겪은 일제 강점기는 병자호란의 치욕보다 더 부끄러운 역사가 되고 말았다.
호란일기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안보를 튼튼하게 할 수 있을지를 깨닫게 해 준다.그것은 바로 경제력
군사력 문화적 힘을 길러 강대국들이 우리 대한민국을 감히 넘 볼 수 없는 강한 나라로 키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