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어른이 되서 사회 생활을 하면서 바른말 하기가 쉽지 않다. 마음속으로는 잘못된 것을 알지만
바른말을 윗사람 한테 한다는 것은 쉬운게 아닌것 같다.
하물며 정치를 하면서 바른말 하기는 정말 쉽지 않을듯 하다.요즘 세상에도 바른말 하기 쉽지 않은데 그 옛날 조선 시대에
바른말을 했던 분들이 계셨다는게 정말 대단하신듯 하다.
조선 백성을 사랑한 바른말 쟁이들은 정말 훌륭하신 분들 같다.




조선시대에는 대통령보다 힘이 센 왕이 있었다. 가장 존경을 많이 받는 조선의 왕인 세종대왕은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였고 신분이 낮은 백성의 말도 들을 줄 아는 왕이었다.
덕분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조선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연산군처럼 자기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려 했던 왕도 있었다.
그걸 보더라도 얼마나 세종대왕은 존경할 만한 왕인가 싶다.
바른말 하는 신하의 의견과 백성의 말을 들어 주신던 세종대왕 님 지금 생각해도 대단하신 왕이다.
이 책에는 목숨을 걸고 바른말을 했던 조선의 공무원 일곱 명의 이야기가 나온다.
조선의 공무원 일곱 명의 한 분인 김육 선생님은 1580년에 출생했고
임진왜란 때 아버지를 잃고 과거시험에 합격에 성균관에서 공부를 하였다.
벼슬을 포기하고 가평의 잠곡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충청도 관찰사의 관직을 받고 대동법과
균역법을 시행하자는 상소를 올렸다.
우의정이 되자 대동법이 여러 지역에도 시행되도록 노력하며 대동법의 문제점을 개선했고 효종에게 전라도 대동법의
건의 했고 호남지역에서도 대동법이 시행하게 만들었다.
평생을 백성들의 세금을 줄이기 위해 애썼던 김육은 79세에 여전히 고민을 하며 눈을 감았다.
마지막 유언도 전라도의 대동법을 부탁한다는 내용이었고 김육의 유언대로 그가 죽은 뒤,효종 9년에 전라도에서도
대동법이 시행되었다.
김육의 장례를 치르는 그의 집에는 백성들이 수도 없이 찾아왔고 사람들은 그의 업적을 돌에 새겨
비석으로 세웠다. 비석에는 백성들의 편안함을 늘 먼저 생각했던 김육의 마음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 중 김육 선생님의 바른말 중
왜란과 호란이 지나간 자리에 백성들은 굶주리고 있습니다.
굶주린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대동법만한 게 없습니다. 백성은 원하나
수령이 원차지 않고 원하는 이는 백만 명이나 원하지 않는 이는 50여 명에 불과한데 이50여명 때문에 백만 명이 원하는
것을 시행하지 못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라고 하였다.
곧은 마음으로 곧은 말을 했던 조선 시대 공무원들을 보고 우리 아이도 그 분을 본받아
바른말 하는 어른으로 자랐으면 하고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