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과학자 갈릴레이와 동양의 과학자 장영실은 서로 다른 나라 서로 다른 시대에서 살았지만 닮은 점이 아주 많았다.
갈릴레이는 이탈리아반도에서 세종과 장영실보다 100여 년 뒤에 태어났다.갈릴레이는 장영실만큼 불우한 처지는 아니었지만
어려운 환경에서 열심히 노력한 수학자이면서 과학자였다.



장영실은 관기의 아들이었다. 관기란 관아에 소속된 기생이다.
기생은 조선 신분제로 따지면 천민 중에서도 아주 천한 계급이었다.
장영실 아버지는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 수가 없다. 부모 중 한 명이라도 천민이면 그 사이에 태어난
자식은 천민이다. 장영실은 어머니 한테 글을 배웠고 관노였지만 씩씩하게 자랐다.
취미는 밤하늘 별 관찰하기였고 특기는 대장간에서 각종 공구를 만드는 것이었다.
세종의 시대는 과학,문화,경제 등 나라 안의 모든 일이 골고루 발전했던 때였다.
세종은 궁궐 안의 평범한 기술자였던 장영실의 남다른 재주를 알아보았다. 장영실은 문화 군주 세종을 만나
그의 기술과 재주를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갈릴레이는 1564년 2월 이탈리아 피사에서 태어났다.
갈릴레이는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넉넉하지 못한 집의 장남이었던 갈릴레이는 아버지 권유로 의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갈릴레이는 의대가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는 의학보다는 수학이나 물리학에 관심이 더 많았다.
갈릴레이는 수학을 좋아해서 과학을 연구하게 되었다.
장영실도 갈릴레이도 하늘의 별을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장영실은 1400년대 조선에서 활동한 과학자이고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1500년대 후반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과학자다. 장영실이 갈릴레이 보다 100년 이상 앞서 태어나고 활동한 것을 알 수 있다.
두 과학자는 하늘의 별을 통해 자연의 원리를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시간과 시계의 소중함을 드러낸 과학자들이다.
갈릴레이와 장영실은 모두 위대한 발명가였다. 갈릴레이는 맥박계,망원경,물을 끌어 올리는 기계,군사용 컴퍼스 등 수많은것을 발명했다.
장영실 역시 해시계,측우기,자격루,갑인자 등을 발명하거나 완성하는 데 참여했다.
이런 발명품 덕분에 생활이 한결 편리해졌으며 문화가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