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의 책략에 관한 이야기는 많지만, 상대적으로 그의 정치적 성과에 관한 이야기는 많지 않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일찍이 그는 적과 아군의 형세를 정확하게 분석한 ‘융중대’를 바탕으로 유비 무리를 생존, 발전시켰고, 결국 ‘삼국의 역사’로 이끄는 데 성공했다. (장따커(張大可) 《삼국사 연구(三國史硏究)》) 촉한을 다스리기 시작한 뒤로는 덕행을 기준으로 관리를 뽑고 나라를 다스리는 방식을 대담하게 정착시켰고, 명백한 조항을 제정함으로써 ‘상벌을 명확하게 해서 잘못이 없으면 벌하지 않고, 잘한 것이 없으면 상도 주지 않도록’ 했다. ‘법치’를 통해 촉한 정권은 빠르게 안정을 찾았고 계급 간의 갈등도 완화되었다. 이 모든 것들을 통해 그의 정치가로서의 안목과 패기, 수완을 느낄 수 있다. 일부 사학자들은 심지어 그를 삼국 시대에 조조, 손권, 유비 세 영웅에 준하는 ‘네 번째’ 걸출한 정치가라고 말하기도 한다. -p. 178
세 마리 말이 한 구유에서 먹이를 먹다
조조는 ‘세 마리 말이 한 구유에서 먹이를 먹는’ 꿈을 꾸었고, 그는 이것이 사마 씨 3명이 조조 가문을 무너뜨릴 거라는 계시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사마의의 세력이 커질 것을 우려해 중용하지 못했지. -p. 233
사마염 고양이가 즉위할 때 그의 나이는 겨우 30세였어.
사실 땅은 조상들과 아버지 대에서 일군 것이고, 황위는 친척 공신들이 만든 것이니 제국의 창시자로서 사마염 고양이는… 존재감이 약했지. -pp. 296~2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