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 여섯 개의 세계
김초엽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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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등장했던 재난 영화들이 모두 허구라는 듯이 COVID-19로 인한 팬데믹이 시작됐다. 비현실이 현실이 된 세상에서 SF 작가들은 독자드에게 어떤 이야기로 경이감을 줄 것인가? 하루에 100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오던 9월, 뜻밖에도 문학과 지성사에서 국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SF 작가 6명을 모아 책을 발표했다. 이 SF 앤솔러지의 제목은 이 시대 그 자체를 담은 '팬데믹'이다.






존재와 존재가 나누는 따뜻함으로 보여주는 경이감

김초엽 '최후의 라이오니'



광속을 넘나드는 시대에 나누는 따뜻함은 어떤 모습일까? 김초엽이 그리는 SF의 경이감은 존재와 존재가 나누는 따뜻함에서 온다. 자가복제를 통해 영생을 살 수 있다고 믿던 사회가 감염병으로 멸망하는 동안 시스템 유지를 위해 제작한 인공지능 로봇들은 그 곳에 남겨진다. '라이오니'는 이 곳에 최후에 남아있던 인간으로 다시 오겠다는 약속과 함께 감염병을 피해 탈출한다.


몇 백년 후, 멸망한 거주구의 회수 작업을 진행하는 종족이지만 멸망을 맞이한 세계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결함을 가진 주인공이 이 곳에 찾아온다. 시스템을 통제하는 로봇 '셀'은 죽음을 앞두고 그녀를 계속 라이오니라고 부르며 행성에 붙잡아 놓는다. 그리고 주인공은 이 곳에 머무르며 자신의 결함이 사실은 결함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린다.


김초엽의 세계에서 장애나 결함은 상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따뜻함을 나누는 종족의 경계도 없다. 그저 존재했기에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주며 몇 백년이 지나도 그 사랑을 잊지 않는다. 이러한 세상을 따라가는 독자는 순간 바운더리 없이 넓어지는 세계에 해방감과 경이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서사의 전개에 과학이 필수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너무나도 SF적이면서 서사의 방향은 말도 못하게 아름답고 서정적이다. 팬데믹을 주제로 한 책의 처음 이야기가 "처음과 끝"이며 김초엽이라니 너무나 완벽하다.








"만약 정말로 힘든 상황이 온다면 시계를 되돌리고 싶을 순간이 바로 오늘일 것입니다"

정소연 '미정의 상자'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나는 그 이전의 시대로 되돌아 간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미정의 상자'는 팬데믹이 장기화되어 유령도시가 된 근미래 사회에서 2020년 8월 25일을 기점으로 2019년 3월 5일까지 되돌아가는 타임라인을 배경으로 진행된다.


도입부에 2030세대의 영원한 숙제가 될 주거문제로 시작하여 현실감을 높이며 시간을 되돌아갈 때마다 초기, 정부 방역지침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과 기업의 대처를 보여준다. 그 속에서 이미 희생된 연인과의 사랑은 너무나 아름답지만 주인공 미정은 결국 그 상자를 덮는 것으로 사랑의 방법을 결정한다.


SF를 비롯한 장르 문학은 현실의 문제점을 긴밀히 파고들고 장르적 상상력과 장치를 이용하여 이를 실험한 뒤, 이야기를 끝맺으며 자신의 해답을 내놓는다. 정소연 작가는 현실 문제에 대한 깊은 인식과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이 작품을 설계하였다. 팬데믹 사회에서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요구되는 도덕의식이 어떻게 일그러지는지를 말이다. 


굉장히 사회적인 이야기는 희생된 연인의 이야기가 더해져 그들이 사랑스러운만큼 가슴이 아팠다. 미정과 유경이 처한 현실이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기에.








언어가 미래의 세계관을 구축하는 시도

배명훈, '차카타파의 열망으로'





처음에는 맞춤법에 실수가 있는 줄 알았다. 인더넷, 귿난다, 한 학기 고스, 동과, 혜댁 등. 팬데믹이 100년 후의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문화의 가장 기본적인 바탕인 언어의 형식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니!


ㅎㄱ은 언어다 위대한 참. 내내 이런 표현들이 한 페이지 나와도 내내 파악할수 있다 문맥을

한글은 참 위대한 언어다. 한 페이지 내내 이런 표현들이 나와도 문맥을 파악할 수 있다. 한국어가 모국어인 분들이라면 같은 문장이 두 번 반복된 것을 알 수 있듯이ㅎㅎ


언어 형식의 충격 때문에 묻힌 것 같지만 주인공이 역사학과 대학원생이며 졸업 논문을 위해 '격리'실습에 들어간다는 설정도 무척 재밌었다. 무언가를 '개달은' 주인공이 가다르시스는 카타르시스로 발화해야 언어의 참맛이라는 걸 느끼는 장면도!


마지막 '작가 노드'마저 세계관을 관철한 작가정신에 정말 좋은 자극을 받았다. 이 작품은 두고 두고 낭독하며 음미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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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의 분위기
박민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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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지워지지 않는 소문과 영상에 갇혀버린걸까? 읽으면서 계속 한숨을 쉬고 몇 번을 고라니처럼 소리쳤다. 지워지지 않는 영상과 소문너머의 이야기. 괴롭지만 꼭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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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 - 지중해의 태양 아래에서 만난 영원한 이방인 클래식 클라우드 16
최수철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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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삶과 작품이 반드시 긴밀하게 연결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치열한 삶 속에 자신의 의지를 관철해 온 작가의 작품을 따라가는 것은 조금 더 특별하고 깊은 사색을 가능케 한다. 나에게는 카뮈의 작품들이 그러했다.

클래식클라우드 카뮈편은 최수철 작가의 안내를 따라 카뮈의 작품과 생애를 따라가는 여행서이자 작가의 삶에 대한 해설본이다.

카뮈는 어려운 환경과 병마, 전란의 시대와 생활를 거친 이후에 '이방인'으로 작가로서 명성을 얻는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자신의 내면 밑바닥까지 흟고 내려와서 자신의 위선을 고발하는 '전락'을 발표할 만큼 자신에 대한 감시를 놓지 않는다. 표지 바로 뒷장의 사진이 저렇게 멋진 것은 카선생이 그렇게 살아왔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자기검열을 그치지 않는건 스스로를 비하하기 위함이 아닌 삶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병마와 비극이 연속되어도 카뮈는 자신의 일을 하며 살아감으로써 스스로 실존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최수철 작가는 카뮈에게 빚을 갚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책 곳곳에 카뮈에 대한 마음이 녹아있다. 카뮈의 팬이라서 이 책을 골랐는데 프롤로그에서 이미 과몰입된 상태로 작가의 가이드를 따라가다보면 서로의 팬심을 대결하는 기분까지든다ㅋㅋ 그만큼 카뮈의 비극들을 포르노적인 시각이 아닌 그의 작품을 따라갈 수 있는 길라잡이로 경로를 잡아준다.

카뮈의 인생도 그렇지만 작가가 직접 찍은 알제의 사진들은 아시아 밖으로 나가보지 못한 나의 작품 이해력을 넓혀주었다. 직각으로 내리쬐는 햇빛과 아랍풍의 하얀색 건물들을 보니 뫼르소가 왜 햇빛 때문에 총을 쐈다고 했는지 너무 알겠더라. 물론 당시 알제인들과 아랍인들의 갈등이 더 주된 이유겠지만.

이 책의 단점을 꼽자면 첫번째로 카뮈의 전작이 읽고 싶어진다는 점이고... (그래서 대학생 때 빌려봤던 #이방인 도 충동적으로 구매;;) 두번째로 앞날개의 '프랑스의 니체'라는 표현. 니체가 카뮈보다 유명한가...? 니체를 싫어하거니와 카뮈는 카뮈로서 실존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너무 멋진 책에 한 가지 아쉬운 점이었다ㅠㅠ

어려운 철학을 붙이지 않아도 삶을 사랑하기 위해 내가 나로서 사는 방법을 고찰한 작가를 뛰어난 통역가이자 가이드의 안내로 따라갈 수 있는 만나기 어려운 기회였다. 언젠가 알제만을 내 눈으로 바라보며 다시 최수철 작가와 카뮈를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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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의 부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
잭 런던 지음, 권택영 옮김 / 민음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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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국 남부의 따뜻한 정원에서 살던 개 '벅'이 견신매매를 당해 알래스카 땅을 횡단하는 썰매개가 되어 사회에 길들여 지다가 종국에는 야성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다룬 나름 로드소설... 야성의부름.


잭런던 의 출세작으로 참가하고 있는 독서모임 '여행'기수의 첫 책이라 읽게 되었는데 10페이지쯤 읽고나서 알았다. 이 책은 여행기가 아닌 견신매매기임을😭 초반부는 강아지판 노예12년임.

벅이 썰매개가 되고 7~8명 되는 동료개들 사이에서 우두머리가 되는 과정, 인간들에게 신뢰를 가지게 되었지만 결국엔 정리되는 과정 들이 딱 IMF 이전 샐러리맨의 삶 같았고... 요즘 곧장 라떼를 떠올리는 나는 스피츠에 자꾸 감정이입이 되서 벅이 좀 미웠다ㅋㅋ

작가는 주인공 벅이 썰매개로 길들여지는 것의 대척점으로 계속해서 야성의 본성을 내세우는데 그 야성이란 것도 자연의 야성이 아닌 1세계 백인 남성이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억눌리지 않는 세계로 보여서 '나는 자연인이다'가 떠오름.

책 자체가 냉소적이어서 리뷰도 그렇게 썼지만 중장편 분량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내내 몰입감 있고 등장견, 인물 등의 갈등구조가 확실해서 텐션이 짱짱하다.

나는 좀 과몰입해서 힘들었지만 겨울에 뜨신 방에서 읽을 재미있는 민음사 고전, 겨울배경 소설을 찾는 분들께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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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단경로 - 제25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강희영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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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주의) 리뷰의 처음에는 텍스트에 대한 줄거리를 제시해야 한다. 단편적으로 말하면 강희영 작가의 최단경로 는 계획하지 않은 아이를 만든 부모가 사고로 아이를 잃고 각자의 방법으로 아이를 추모하며 죽음으로서 삶을 마무리하고자 하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팩트에 가까운 이야기의 큰 줄기이지만 팩트는 아니다. 소설에서 그들의 끝을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기 때문이다.
애영과 진혁에게 아이가 생긴 것은 그들의 우발적인 성욕때문이 아니다. 이유를 찾자면 방탕한 남편에게 실망한 애영의 어머니가 복수를 꿈꾸며 안방의 콘돔에 구멍을 뚫어서이다.

그럼 이 사건의 가해자가 애영의 모친인가? 그녀는 두 사람의 딸을 태어나게 했지만 결국엔 손녀와 함께 암스테르담에서 목숨을 잃는다.

진혁은 학생 때 생긴 자신의 아이와 애영을 곧바로 따라 나서지는 못했지만 늘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아이가 죽었을 때엔 공중파 라디오에 비밀스럽게 아이의 옹알이 소리를 섞어내어 추모한다. 그리고 아마 바다에서 자살한다.

애영은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는다. 대신 제도로 보장되는 안락사를 선택한다. 약 1년 후의 안락사를 앞두고 가장 많은 일을 하는 이는 역설적으로 애영이다. 문화지원을 받아 스튜디오에 입주하여 예술가들을 만나고 대학원을 등록하고 한국에서 온 혜서도 만난다. 그 모든 것은 다시 아이와 엄마를 만나기 전에 그들이 목숨을 잃은 이유를 밝히기 위해서다.

여기에 마리에와 혜서의 서사, 그리고 다미안이 강의하는 최단경로를 찾는 프로그래밍 이야기가 섞여 소설은 완성된다.

이야기는 비극적이지만 누구 한 사람에게 그 비극의 원인을 돌리지 않는다. 사고를 낸 가해자조차 시스템의 피해자로 만들만큼. 그럴수록 가슴이 아프다. 실제로 애영은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그래서 안락사를 선택한다. 원망을 할 삶의 의지조차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애영이 안락사 심사기간 동안 만난 마이레는 그녀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그렇다면 혜서는? 회사를 그만두고 애영의 옆에 남기로 한 그녀의 "어디 가지 말아요"라는 말은 애영을 묶어두었을까.

사실 그 점이 궁금하지 않다ㅋㅋ 나는 안락사 제도를 지지하고 애영이 편안하게 쉬었으면 하기 때문에. 하지만 살아남을 힘이 있다면 그녀의 다른 선택도 응원할 수 있다.

켜켜이 쌓인 등장인물들의 서사와 누구나 겪을 수도 있는 가족의 사고를 소재로 이렇게 뭉근한 아픔을 겪는건 참 오랜만이다. 어떻게 보면 카뮈 이방인과는 정반대적인 책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

근래에 등장하는 남자인물을 안타깝게 느끼는 경우가 잘 없는데 진혁이 양육을 포기하는 순간마저 그가 안타까웠다. 문학의 순기능.
단점이라면 남자작가임을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진짜 남자작가라는 게 알겠던 그 지점. 여성작가는 생리주기를 굳이 이렇게 장치로 쓰지 않는다. 심지어 과도했다고 본다.

현재 AI가 만드는 최단경로는 충분히 이 책과 같은 사고를 낼 수 있다. 나는 최단경로보다 애영이 과제로 제출한 그런 경로를 채택하는 사회에 살고 싶다.

그리고 애영이 살아갈 시간이 얼마이건 그 동안 평안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진혁의 유품같이 남겨진 곰인형이 필요한 아이의 집에 간게 맞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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