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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시대의 종말
비비언 고닉 지음, 홍한별 옮김 / 엘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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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사랑은 우리의 삶을 구원할 수 있을까?

이 책은 미국의 저명한 비평가이자 에세이스트인 비비언 고닉이 종신형 결혼이 스러진 시대를 맞이하여 구원적 사랑과 연애소설에 종말을 고한 문학 비평 에세이다.

*도서제공 #연애시대의종말

📑버지니아 울프, 이디스 워턴, 조지 앨리엇, 케이트 쇼팽, 진 리스, 샬럿 브론테, 윌라 캐더, 한나 아렌트, 그레이스 페일리 등. 저자는 1900년대에 활약한 진실한 여성 작가들의 삶과 작품을 소환하여 구원적 사랑이 어떻게 스러졌는지를 증명한다.

특히 마지막 챕터인 <연애소설의 종말>은 비비언 고닉 자신의 사랑과 결혼, 이혼을 반추하여 현실에서도 더 이상 결혼과 사랑이 여성의 삶을 구원할 수도 성장시킬 수도 없다고 단언한다.


📝1997년에 발간된 책을 가져오며 출판사에서 원제 《연애소설의 종말》을 《연애 시대의 종말》로 수정했다고 하는데 바꾼 제목과 출간 시기가 매우 적절하다. 한국에서 여성 서사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 대략 2010년대 중후반인데 이 즈음만 해도 가부장제 신화가 꽤 굳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 10년 전부터 페미니즘과 여성 서사가 주목 받으며 국내에도 꽤 많은 변화가 생겼다. <작은 아씨들>, <정년이> 같은 연애를 성장 요인으로 두지 않는 여성 서사 드라마가 출연해 인기를 얻기도 하고 카카오에서 연재되는 로맨스 판타지 작품의 대부분이 로맨스보다 주인공의 성장 서사에 주목하게 됐다.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연애 예능 프로그램에서조차 커플 성사율이 30%를 밑돌고 사랑보다 삶의 주체성을 우선하는 시대가 한국에도 도래했다. 구원적 사랑의 신화가 깨진 시대에 이 책을 만나서 기뻤다.


✨️이외에도 🩷검은색 바탕에 핑크색 은박이란 아름다운 책의 물성과 함께 🔪펜이 아니라 칼로 쓴 것 같은 날카로운 문체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최근에 읽은 고닉의 다른 에세이는 이 정도로 날카롭지는 않아서 예상을 빗겨난 부분까지 즐거웠다.

📍강도 높게 결혼의 허상을 비판한 글을 읽고픈 분들
📍19세기의 천재적 여성작가들을 알아가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추천드리고 싶다.

🔖“오늘날 소설의 중심에 낭만적 사랑을 놓고 인물들이 사랑을 추구하다 무언가 거대한 것에 도달한다고 하면, 독자를 설득할 수 있을까?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는지, 우리가 사는 시대는 왜 이러한지, 그런 중대한 사실을 깨닫게 한다고 설득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늘날 사랑을 은유로 사용하는 것은 발견의 행위가 아니라 향수에서 비롯된 행위일 것이다.”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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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에 불꽃이 있어
장아미 지음 / 황금가지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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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네게 이 얘기를 꼭 들려주고 싶었다. 나는 너를 선택했어. 우리는 늘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해.”

|서평단| 🏹이무기 사냥을 나서던 신화시대부터 소헌왕후 시절 조선시대, 일제 강점기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강압과 부조리함 속에서 소중한 것들을 지켜온 여성들의 이야기,《우리 안에 불꽃이 있어》🔥


(🥬배추도사, 무도사 아는 분들은 스포 없음)

📖책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뉘어진다.

조선시대 한양 대화재 사건을 설화적 해석으로 구성한 <꽃불>부터 이무기 설화를 다룬 <붉은 돛>, 호랑이의 제물로 바쳐진 마을 소녀의 이야기를 전복한 <빨간 제비부리댕기> 등. 역사와 설화, 전래동화를 전복하여 희생양이었던 여성들이 이야기의 진정한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는 섬뜩하지만 한계가 없는 카타르시스를 보여준다.


🧸이후 일제 강점기 마루타 실험과 1980년대 착취당한 여공들의 호러블한 복수를 다룬 <도련님과 아가씨와 나>, <인형들>를 거쳐 일상 속 백귀야행 같은 에피소드 <토우>, <눈물이 달콤한 이야기>까지. 12편의 다른 이야기 속에서 여성들은 온도는 다르지만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마음 속의 불꽃을 터뜨리고 지켜낸다.


📝전반부의 스케일 큰 신화의 재해석은 아들린 밀러의 <키르케>와 발터 벤야민의 <이야기꾼 에세이>를 떠올리게 한다. 벤야민에 따르면 “이야기는 사태를 전달자의 삶 속에 한번 가라앉혔다가 건져 올린다. 도기에 도공의 흔적이 남듯 이야기에 화자의 흔적이 남는다.”고 한다.

장아미 작가에게 잠겼다가 건져 올려진 한국의 설화 속 희생양들은 부조리함에 맞서 불꽃이 되었다. 광기를 곁들여 뜨겁게 타오르는 그들은 무섭지만 아름답다.

같은 책에서 벤야민은 “최초의 진정한 이야기꾼은 예나 지금이나 동화를 들려주는 이야기꾼이며 유익한 조언이 귀했던 곳에서 귀한 것을 들려주고 가장 힘든 상황에서 허물없이 도와주는 것이 동화”였다고 한다.

10대에 읽은 전래 동화집을 떠올리며 2026년에 이만큼 진화한 한국의 설화들을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무척 행복한 시간이었다. 뛰어난 이야기꾼인 장아미 작가를 만나 즐거웠다!

#우리안에불꽃이있어 #장아미 #황금가지 #한국설화

🔖”아가. 네게 이 얘기를 꼭 들려주고 싶었다. 나든 너를 선택했단다.” 어머니의 형상이 몰아치는 잿가루로 뒤바뀌어 허물어졌다. “나는 너를 선택했어. 우리는 늘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해.” <꽃불>

🔖문영은 자신이 바다에 머물리라는 것을 알았다. 뭍에서 보낸 나날들일랑 잊고 새하얀 돛을 부풀린 배가 자신을 죽일 영웅을 싣고 나타날 때까지. 긴 세월 바다와 섬, 파도와 안개, 꼬리로 움직이고 아가미로 숨 쉬는 것들을 호령하는 존재로 살리라는 것을. <붉은 돛>

🔖삼각산의 왕은 죽임을 당했다. 제물에게. 인간에게. 한날 조그마한 소녀에게. 통곡바위를 디디고 선 이홍이 머리채에 드리운 제비부근 댕기를 풀었다 “이 산의 주인이 바뀌었도다! 오늘부터는 내가 왕이다!” 산 전체가 새 왕의 등극을 경하했다. <빨간 제비부리댕기>

🔖부용은 맞춤 양복을 빼입고 몸단장한 그 남자가 조선 명 에서 행하는 죄악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살기 위해 타워음 해처야 한다면 휠씬 큰 죄를 지은 자를 처단하는 것 이 올지 않을까. 결백하게 살해당하는 이들이 무수히 많은 시대. 죄인 몇 내 손으로 직접 처벌한다 한들 그 무슨 대단 한 잘못이라고. <도련님과 아가씨와 나>

🔖꿈속에서 나는 태산처럼 웅대하고 드높은 존재였다. 달빛에 낮을 씻고 별빛에 머리를 감았다. 내 팔은 뒤얽힌 가지들이었고 심장은 숨겨진 샘이었다. 들꽃을 엮은 관을 쓰고 맨발로 대지의 갈비뼈를 디떴으며 까풀이 없는 눈으로 옛 시절의 비밀을 꿰뚫어 보았다. <푸른 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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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고 무해하게, 팔리는 콘텐츠를 만듭니다
옥성아.채한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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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5G의 런칭과 함께 KT 무선사업본부에서는 SBS의 10년차 PD와 협업하여 오리지널 컨텐츠를 만들기로 한다. 처음엔 KT의 5G 기술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만들려던 두 사람은 이 기획에 시청자의 니즈가 들어있지 않다는 걸 깨닫고 프로젝트를 뒤엎는다.


​'누가 우리 콘텐츠를 보고 싶어 할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일까?' 오직 시청자를 중심에 놓고 세심히 관찰하고 깊이 있게 고민하여 명확한 기획의도를 수립하는 과정을 다시 진행해야 했다.

채과장, 그런데 시청자는 이게 보고 싶을까? p.37


시청자의 니즈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프로젝트로 두 사람은 모바일 콘텐츠 <고막메이트>를 고안해낸다. 김이나 작사가를 중심으로 딘딘, 이원석, 정세운 같은 젊은 뮤지션들을 모아 시청자의 고민을 진심으로 상담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상담 후에는 <고막라이브>라는 출연진들의 특기를 살린 음악 라이브 까지 이어진다.


책의 앞 부분은 <고막 메이트>의 탄생 배경을 설명하며 프로그램 기획 단계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프로그램 형성 단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단계에서 PD님들의 학창시절과 사회 초년생 시절에 겪은 차별과 무례를 이야기하며 <다정하고 무해한> 컨텐츠에 심혈을 기울이게 된 사연을 소개한다.



시청자들은 콘텐츠에 애정을 가지고, 그다음 출연자에 애정을 가지며, 최종적으로 제작진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품게 된다. 여기까지 이르게 되면 콘텐츠와 팬덤이 주고받는 선순환 구조로 그 세계관은 더욱 깊어지며 지속가능해진다.

옥피디, 막둥이(고막메이트 시청자 애칭)의 탄생 p.111


나만의 색깔을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는 내 안에 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의 안에도 있다. 그래서 Everything Counts, 모든 것은 쌓인다.

다른 어떤 것이 아닌 오직 나만의 결 p.163





책의 마무리를 향해 달려가는 후반부에는 미디어 매체의 흐름과 이러한 환경에서 어떻게 무해하게 팔리는 콘텐츠를 만들어갈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유튜브 내에서도 거대 채널의 힘을 믿지 않고 자신의 취향을 중시하는 시청자들의 '마이픽' 성향에서 어떻게 콘텐츠를 무해하게 전해 나갈 것인가. 이를 위한 협업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이에 대해 <고막 메이트>의 제작자 두 사람은 개인의 삶의 형태를 진정성 있게 다루고, 가치관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더 큰 사회적 통합을 지향하고자 한다. 이로 인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또한 협업에서 한 업체가 튀려는 노력은 콘텐츠 품질의 저하를 가져올 뿐이다. 협업은 서로 경쟁하는 게임이 아니며 시청자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최우선으로 두고 업무를 진행해야 한다는 점이 너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일선에서 이런 기본적인 일들을 지키지 못해 콘텐츠가 망하는 일이 너무 비일비재해서 지난 업무들이 떠올라 잠깐 화가 났다고 한다...ㅋㅋㅋ



나와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느끼고 이 불편함이 혐오로 발전한다면, 우리는 무시무시한 취향 세분화의 시대에 몰이해와 고독으로 나와 다른 모든 것들을 혐오하게 될 것이다. 이해보다는 혐호하는 것이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반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며, 나아가 위로와 공감을 전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데에는 오랜 시간과 섬세한 노력이 필요하다.

혐오와 불편의 시대를 넘어 p.184


우리는 초기 기획을 과감히 버리고 시청자에게 집중했다. 디지털 콘텐츠 생태계에서는 시청자의 니즈를 반영한 콘텐츠만 살아남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시청자에서 시작된다. p.195


'진정성의 힘, 관계성의 힘, 공감의 힘, 함께 만드는 힘.' 이 네가지 <고막메이트> 제작 이론을 바탕으로 콘텐츠의 본질과 색깔을 지키며 모두가 한 마음으로 노력한 결과, 시청자와의 끈끈한 유대감을 바탕으로 공감의 세계관을 확장해나가는 '빛이나'는 콘텐츠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콘텐츠 경쟁력이다. p.202-203



이 책은 <고막메이트>라는 콘텐츠가 4년 넘게 론칭되어 의미있는 성적을 올리고 있다는 것을 꾸준히 강조하는데 그 과정에 대한 두 사람의 철학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자극적이고 비윤리적인 컨텐츠 말고 시청자에게 다정한 컨텐츠, 진정성 있는 컨텐츠,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히지 않는 무해한 컨텐츠로도 매스미디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사이버 렉카가 판을 치고 혐오가 조회수를 보장하는 시대에 스스로의 부정적인 경험을 전달하는 것이 아닌 배재하고자 하는 콘텐츠를 어떻게 시청자들에게 알릴 것인지, 유튜브 알고리즘에 어떻게 따라갈지에 대한 고찰도 흥미 깊었다.


꼭 영상 콘텐츠가 아니더라도 요즘 유행하는 구독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런칭 및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할지 정론을 다시 되짚어 볼 수 있는 책이었다.

‘진정성의 힘, 관계성의 힘, 공감의 힘, 함께 만드는 힘.‘ 이 네가지 <고막메이트> 제작 이론을 바탕으로 콘텐츠의 본질과 색깔을 지키며 모두가 한 마음으로 노력한 결과, 시청자와의 끈끈한 유대감을 바탕으로 공감의 세계관을 확장해나가는 ‘빛이나‘는 콘텐츠로 성장할 수 있었다.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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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블렌드 다이어리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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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이면 마시는 양이라 분쇄해서 받았습니다. 봉투 열었을 때 체프가 많아서 라이트 로스팅인가 했는데 중배전 원두에 약배전 원두를 조금 섞었나봐요. 내려보니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도 밸런스와 향이 좋은 원두였습니다. 최근 트렌드의 원두는 아니지만 책 읽으면서 편하게 마시기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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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헤일메리 앤디 위어 우주 3부작
앤디 위어 지음,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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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우주에서 눈을 뜬 남자는 기억을 상실한 채 자신의 존재 의의를 묻는다. 내 이름은 무엇이고 나는 왜 우주에서 표류하고 있는가.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평범한 선의를 가진 뛰어난 생명학자가 멸망을 앞둔 지구를 지키기 위해 외행성계로 날아가 특별한 생명체와 교류하며 마지막까지 자신의 있을 곳을 찾는 이야기다.


근 미래를 다룬 SF 소설에서 685p 동안 이야기의 당위성을 지켜내며 독자의 몰입도를 유지하는게 가능할까? 굉장히 기초적이지만 어려운 질문인데 그 소설의 작가가 '앤디 위어'라면 좀 믿음직 하다. 한국에서만 500만 가까운 관객을 동원한 <마션>의 원작 작가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말이다. 전작에서 화성에 조난당한 우주인을 전 세계를 동원하여 구해낸 작가는 이번엔 지킬 대상을 '지구'로 상정하고 인간을 태양계를 벗어난 은하계로 보낸다. 그리고 끝내 지구를 지켜낸 그는 지구 귀환보다 외계에서 만난 친구와의 우정을 지키며 스스로 자신이 존재할 장소를 선택한다.



개인적으론 책을 읽을수록 작가의 캐릭터 빌드업과 충실한 이야기 전개에 놀랐다. 독자가 지루하지 않도록 액자식 구조를 취하되 가장 중요한 이야기의 당위성인 지구의 멸망 위기에 대한 설명을 초반에 밝히고 오히려 주인공이 우주로 나온 이유를 숨긴다. 이야기 초반부터 주인공 그레이스는 꾸준히 더 적합한 인물이 있었을텐데 자신이 인류를 대표하여 우주에 나온 것을 의심한다. 아마 그 의심 중에는 본인이 인류를 위해 편도의 우주선을 타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도 주인공은 헤일메리 프로젝트의 총책임자 스트라트에 의해서 강제로 우주선에 태워졌고 이 사실은 이야기의 후반부에 밝혀진다.



"날 죽이겠다고? 좋아! 난 당신 임무를 죽여버리겠어! 내가 우주선을 망가뜨릴 거야!"

스트라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당신은 그러지 않을 겁니다. 말했다시피 당신은 근본적으로 좋은 사람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당신은 엄청 화가 나겠죠. 하지만 결국 당신들 셋은 우주로 나갈 것이고 당신은 당신 일을 하게 될 거예요. 이건 인류가 달린 문제니까. 나는 당신이 옳은 일을 할 거라고 99퍼센트 확신합니다." _p.567~568



...실제로도 그레이스가 이 사실을 기억해 냈을 때는 이미 새로운 외계의 친구 로키와 태양의 열기를 좀 먹는 아스트로파지의 천적 타우메바를 발견한 뒤였고 그는 이 사실에 슬퍼하면서도 지구에 자신보다 타우메바를 먼저 보낸다.



"상처 입은 자아요? 이건 제 자아 문제가 아닙니다! 이건 우리 아이들 문제라고요!"

"아이 없으시잖아요."

"아니, 있어요! 수십 명이나 있습니다. 아이들이 매일 제 수업을 들으러 와요. 그런데 우리가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그 아이들 모두가 매드맥스식의 악몽 같은 세상을 맞이하게 될 겁니다. (...) 제 관심사는 아이들이에요. 그러니까 그 못된 아스트로파지 녀석들 좀 주시겠어요!"_ p.106~107

(아마도 여기서 스트라트는 그가 인류를 책임질 수 있는 과학자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제 무덤 을 파고 만 그레이스...)


또한 그가 촉망받는 생명학자 였다가 학계에 환멸을 느끼고 중학교 과학교사가 된다는 설정도 이야기 전체를 관통한다.

1. 학계에서 살아남을 정도로 정치력이 강하지는 못하지만 이직한 곳에서 진심으로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점.

2. 중학교 과학교사가 되기 위해 전공인 생명학 외에도 지구과학, 물리학 법칙 같은 기초과학을 폭 넓게 알고 있다는 점.


1번은 앞선 스트라트의 예언에도 영향을 끼치지만 이야기의 완결에서 그가 지구로 귀환하지 않고도 자신의 자리를 찾는데도 이용된다. 마션의 주인공 마크가 혼자서 화성에서 고군분투 하다 무사히 지구에 안착한 것과 달리 그레이스는 외계에서 만나 함께 타우메바를 연구한 친구 로키를 구하고 지구 귀환을 포기한다. 그리고 친구의 행성에서 타우메바족 아이들을 가르치며 중년에서 노년으로 접어드는 생활을 그린다.


2번은 작가가 물리학에서 어긋나지 않은 SF 소설을 완성하는데 영향을 끼치는데 이야기의 화자는 주인공이기에 그가 자연스럽게 상대성 이론을 비롯한 우주의 중력과 에너지 계산을 설명할 수 있는 당위성을 부여한다. 외계 종족인 로키와 대화를 나누는 방법도 그레이스의 과학적 지식에 의거하고 있다.


덤으로 주인공의 긍정적인 성격까지 더해져 이야기는 분명 한 사람의 뛰어난 과학자가 지구를 구한 플롯임에도 책을 읽은 전세계의 독자가 함께 헤일메리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과 같은 감동을 준다. 모든 계획은 완벽하지 않고 계산은 엇나가고 실수하기도 하지만 그레이스는 지구를 구하고 자신이 있을 장소를 스스로 찾아낸다. 지구 멸망을 막는 SF야 은하계의 행성보다 많겠지만 앤디 위어가 고수하는 낙관적인 분위기는 독보적이다.


사람들에게 사랑 받을 수 있는 주인공과 악역 아닌 악역의 구성도 놀라웠고 독자들의 상상력이 빈공간을 만드는 시점엔 '매드맥스'나 '스타트렉', 고전 우주영화를 이용하여 메꾸는 스킬도 매우 놀라웠다. SF를 좋아하지만 디스토피아가 조금은 버거울 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귀여운 외계 친구 로키도 만날 수 있다! 지구에는 없는 참 우정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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