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장석주 지음 / 을유문화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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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행복을 믿지 않았다. 기대하지 않는 삶이 더욱 풍요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행복한 삶을 전제하는 것보다 불행한 삶을 전제하는 것이 더 힘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책을 선택하게 된건 급작스레 업무 환경이 크게 바뀌면서 라이프 없는 워크에 질리던 참이었다. 고난의 순간은 반등의 기회라는 걸 알면서도 마음이 다잡아지지 않아 그 동안 믿지 않던 것을 쫓아보기로 했다. 짧은 문장 하나 하나에 삶을 담아내야 하는 시인이 연구해온 행복은 엉덩이가 귀여운 복숭아나 곰처럼 보이는 사자가 말하는 행복보다 조금 더 와닿을 것이라 생각했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지금, 처음의 기대는 절반 정도 들어맞았다. 불행을 회피함으로써 얻는 안녕, 찰나의 만족감에서 느끼는 충실성, 여유럽고 고즈넉한 시간, 좋은 삶에 대한 긍정가 낙관에의 약속이 전제되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것(p.21)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데 참 살면서 이루기 어려운 것들이 아닌가. 시인은 이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행복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하며 행복 그 자체도 선택이라 말한다.


행복을 정의 내렸으니 이를 얻기 위해 시인은 무엇을 하였을까? 여름의 제철과일을 맛있게 먹고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삶을 택하고 물건보다 경험을 구매하며 가을날에는 뒷산을 오르며 걷기 좋은 날씨에 햇빛을 받는걸 행복이라고 느낀다. 시인 스스로가 바꾼 라이프스타일을 배경으로 일생동안 읽은 철학서, 인문서를 배경으로 이러한 행복의 원리를 설명한다. 



*****


[독서는 내면의 불안과 혼돈의 소용돌이를 잠재우려고 할 때 그 유용성이 빛난다. 독서란 침묵의 밀도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그것을 더없는 행복으로 바꾸는 행위다. (p.109)]


엄청난 다독가는 아니지만 책을 놓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으로써 제일 공감가는 파트는 역시 책을 읽으며 느끼는 행복 부분이었다. 독서모임 처돌이라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재미가 더 크긴 하지만 떠올려보면 모임 전에 침묵의 시간 속에서 혼자 책 속의 세상을 구성하는 순간의 행복이 덜하진 않다.


뒤돌아보니 책을 읽기 시작한 뒤로 점점 말수가 적어지는 나도 좋고 그것을 부족하다 여기지 않는 나도 꽤 만족스럽다. SNS, 유튜브, 드라마를 끊지 못해서 시인처럼 많은 책을 읽을 순 없지만 책을 들고 오롯이 빠져있는 그 시간은 내가 행복을 믿지 않아서 깨닫지 못했을 뿐, 나에게도 찰나처럼 느껴지는 행복의 순간이란 걸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


이 책의 단점이라면 너무 정론만을 말하는 시인을 내가 따라갈 수 없다는 점이라고 하겠다ㅋㅋ 소비하지 않는 삶, 물건보다 경험을 사는 삶은 7년 넘게 추구하고 있지만 불행의 순간들마다 너무 쉽게 무너진다. 


물건을 사는게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학문으로도 경험으로도 배웠지만 불행의 순간들마다 너무나 쉽게 잊혀진다.(그렇다, 최근 3개월만 해도 현실도피용 ㅅㅂ비용으로 카드값이 빵꾸날 정도였다ㅠㅠ) 행복을 위한 노력이 우리의 통장도 지켜줄 수 있다. 행복도 잔고도 잡는 얼마나 유익한 책인가ㅎㅎ


사실 서평을 쓰는 지금도 행복이 선택이란 말에는 100% 동의하기 어렵지만. 노력하면 그 찰나를 조금 더 많이 잡을 수 있다는 말에 희망을 걸고 싶다. 내 삶의 안녕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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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과 물 배수아 컬렉션
배수아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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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일어났다고 알려진 일은 일어나지 않은 일보다 신비롭다

그것은 동시에 두 세계를 살기 때문이다. (p.191 뱀과 물)


만일 그것이 정말로 일어났다면, 모든 기억이 이토록 생생할 리가 없다. (p.188, 도둑자매)


197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한 이 단편집의 주인공들은 어린 소녀들이다. 그녀들은 어린 소녀로 등장하여 서커스 단원, 반두의 여왕, 마을의 미치광이, 여승, 여교사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성인이 된 그녀들은 사회에서 스스로의 모습으로 서지 못하고 서커스 단원처럼 점점 존재가 희미해져 여성의 육체로만 사람들의 입에서 대상화되어 남는다. 마치 작가님이 직접 고른 이 책의 표지처럼. 다만 그것이 시간의 순서를 따르지 않고 같은 시간대를 배경으로 펼쳐지기 때문에 환상적이다.


이 책을 처음 읽었던 2018년 2월에는 희생양처럼 친구를 잃은 소녀(얼이에 대하여)와 딸 또는 여동생을 잃은 어머니(도둑 자매)가 죄책감으로 인해 직관을 잃고 미치광이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그것이 온 몸에 아로새겨져 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이라고. 그래서 표제작 뱀과 물이 유독 낯설었다. 그렇다면 여교사는 어째서 자신의 아이를 씹어먹었는가?


2018년 10월 다섯번째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카프카의 소설들을 떠올렸다. 이 책의 여성들은 전혀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부조리한 현실 속에 내던져진다. 이로 인해 자신의 존재를 잃어가고 범죄의 피해자임에도 사회에서 비난을 받는다. 비난 받지 않더라도 스스로 죄책감에 파묻힌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면 나는 여교사가 꿈의 세계에서 이 영겁회귀와 같은 굴레를 끊어 냈다고 생각했다. 원치 않는 생명을 자신의 입으로 씹어 먹고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또 다른 나인 여승을 보내면서.





날 죽여줘. 소리도 없이. 직관도 없이. (p.216)

날 죽여줘. 소리도 없이. 몸도 없이. (p.218)

날 죽여줘. 소리도 없이. 어린 시절도 없이.” (p.224)


그가 어린시절에 대해서 쓰고 있는 동안은 어린 시절을 잊는다. 갖지 않는다. 사라진다. (p.223, 뱀과 물)


이 책을 환상적이고 몽환적이라고 말하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작가의 자기반복이란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 책의 작품들은 모두 정확히 현실 위에 발을 딛고 있으며 작품의 주인공들이 모두 비슷해 보이는 건 이 땅위의 여성들이 비슷한 어린시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렇지 않게 여제자를 성적 대상화하고 접촉하며 동료 교사의 성폭력 사건을 묻어주는 교사나(1979) 어린 아이들만을 대상으로 노리는 범죄자(얼이에 대하여)에게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여자아이들은 자신을 숨긴다. 냄새를 지우고, 성별을 숨기고, 늘 그림자처럼 걸으며 존재 그 자체를 숨기고자 한다. 하지만 어떻게든 아이들을 찾아낸 추악한 목소리들은 그녀들을 욕보이려고 한다.


배수아 작가는 어린 소녀들이 평생을 간직할 죄책감에 대해 구구절절 늘어 놓거나 데이터를 가지고 반박하지 않았을 뿐이다. 띄지에 쓰인 비밀스런결속감은 이 땅에서 소녀들과 여성들이 겪었을 일들을 이 책을 통해 읽어낼 수 있는 자에게만 느껴질 것이다. ‘과 같은 이는 대머리 썅년(p.255)이나 찾으라지.




이 비밀스러운 결속이 나는 기쁘다


좋은 책에 대한 기준은 모두 다르겠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읽으면 읽을수록 좋은 책'이 좋은 책이라는 기준을 새로 세우게 됐다. 1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같은 소설을 5번 읽으며 2번의 독서모임을 참가하고 책소개 영상을 만들고서 리뷰까지 쓰는 일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드문 일일 것이다.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작가님이 어떤 비밀을 알아내길 바랬는지 찾고 그를 통해 내가 얻는 결속, 즉 연대감은 추악한 현실 속에서도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위안을 준다. 고전에서 느끼기 힘든,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한국작가에게 느끼는 이 비밀스런 결속이 나는 무척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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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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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잼인 책은 이북으로 읽어도 놀랍도록 쑥쑥 읽히는데 이 책이 특히 그러했다. 재미와 열정과 음악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흔치 않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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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프라우
질 알렉산더 에스바움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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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하지만 제 말 잘 들으세요. 영혼에 어둠의 빚을 지면 안 돼요"
"그것에 굴복할 계획은 없어요."
"계획은 이와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우리는 계획을 하죠. 악마는 우리 계획을 비웃어요"
#열린책들 #하우스프라우 - p.274

현대판 안나 카레니나와 마담 보바리를 연상시키는 이 작품의 주인공 이름 또한 안나이다. 안나 벤츠. 미국에서 자랐으나 스위스인 남편과 결혼하면서 이민하고 10년동안 두 아들과 딸을 낳은 하우스프라우, 아내이다.

목차에 나와있지 않지만 이 이야기는 총 3개의 챕터로 나뉘어 있으며 그녀가 독일어 수업에 다니기 시작한 9월부터 11월 까지의 표면적인 이야기와 과거를 오가며 그녀의 결혼생활, 불륜생활을 다룬다. 스위스에 이민온지 10년만에 정식으로 독일어를 배우기 시작한 그녀의 독일어 실력이 향상될 수록 그녀의 내밀한 이야기도 더 깊어진다.

안나는 끊임 없이 자신의 마음 속 양동이에 사랑을 갈구하지만 그 양동이 밑에는 구멍이 있다. 이야기가 진전될 수록 그녀의 외로움과 고독함은 깊어진다. 한 번에 두 남자와 불륜을 하며 몸을 섞어도, 사랑했던 남자와 함께 했던 시기에도 그러했다.

안나 카르디예브나와 마찬가지로 안나 찰스의 불행은 자신과 맞지 않는 남성과 결혼한 데서 시작한다. 사랑받고 싶지만 항상 그 사랑이 채워지지 않는 안나는 자신을 이상적인 아내로 필요로 한다는 브루노의 프로포즈에 응한다. 그녀로서는 그것이 그 시기의 양동이를 메우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낼수록 안나 자신을 그 무엇도 이해해주지 못하며 그녀를 은연중에 깔아 뭉개고 구분 지으려 하는 남편과의 사이는 멀어질 뿐이다.

그녀는 처음에 지루함 때문에 다른 남자와 몸을 섞는 외도행위를 한다고 하지만 이야기 중반을 지나면 그녀의 육체적 외도는 지루함이 아닌 남편과의 타지 생활에서 오는 외로움과 슬픔 때문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애초에 깊은 마음을 나누는 것에 서툰 그녀는 불륜 생활에서조차 깊은 사랑을 나누는 일에 실패한다.

(본격적 스포)
이 작품은 안나 카레니나와 같이 기차역에서 시작하여 기차역에서 끝난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스위스 답게 항상 정시에 도착하는 기차는 사람이 뛰어들었을 때만 지연된다. 지연되는 기차를 기다리는 안나와 마지막 모든 불륜사실을 들키고 남편에게 심각한 물리적 폭력을 당한 뒤 하루아침에 내쫓아진 그녀가 스위스에서의 '의식의 흐름'적 기법으로 삶을 돌아보며 기차에 투신한 것을 암시하며 작품은 끝난다.

독일어 클라스에서 만난 외도상대 아치나 동성 친구 메리는 그녀가 유일하게 사랑했던듯한 외도상대 스티븐과의 인연이 끊어지지만 않았어도 그녀가 상대했을 인물들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생활을 위협하고 끊임없이 위기에 내모는 그들을 내칠 수 없었던 건 그녀가 그만큼 외로웠기 때문이다. 외로움은 그녀의 이성을 잠식하고 아내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자 그녀의 남편 브루노는 끔찍한 폭력을 휘두른 후 다음날 바로 그녀를 내쫓는다.

이야기는 정말 명확하게 어디로 향할지를 끊임없이 첫장부터 암시한다. 하지만 작가가 이중, 삼중으로 파놓은 이야기의 트릭에 조금씩 넘어가다보면 책장을 멈출 수 없다. 후반부 100 페이지는 정말 잡은 순간 놓을 수가 없을 정도이다. 안나 카레니나의 마지막 처럼.

책을 읽으며 안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사랑스럽기 때문이 아니라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안나카레니나 를 악착같이 완독해내고 현기증을 느꼈던 분이라면 똑같은 어쩌면 더 지독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3개월동안 안나 카레니나부터 시작해서 체호프 사랑에 관하여, 위대한 개츠비 등등 어쩌다보니 슬픔과 외로움에 빠진 결혼생활을 보내는 이들의 불륜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읽게 되었는데 단연 그 중 하이라이트는 이 작품이었다. 읽고 나서 여운이 그치질 않고 자꾸 내 안에서 그 외로움과 슬픔이 반복된다. 책 한 권 읽고 짧게는 이틀 길게는 2달동안 되새김질을 할 수 있는 여운남는 책을 원하신다면 단연코 이 책을 추천한다. 안나를 이해하게 된 순간 당신은 메설리 박사가 말한 어둠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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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블렌드 다크 - 1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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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고 드시면 실망하실수도 있지만 기대 없이 책에 곁들일 적당한 바디감에 고소한 블렌드 원두를 찾으신다면 추천드려요~ 드립으로 내려도 아메리카노 같은 느낌이어서 요즘 같은 계절에 식사 하고 머그컵 가득 내려 천천히 마시면서 책 읽기 좋은 원두입니다. 이전에 마셨던 미묘한 화이트 블렌드 보다는 훨씬 좋았습니다. 다음엔 케냐 피베리를 먹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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