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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 ㅣ 지식여행자 5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마음산책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첫인상.
아…. 정말 예쁘고 사랑스러운 책이다. 우리나라에 출간된 해가 2008년인데 이제야 내 눈에 띄었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매력적인 제목과 내용을 담은 책. 어쩐지 제목이 도발적이지만 낯설지 않다고 느낀 건 다 이유가 있었다. 독신인 친구들이 늘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아닌가. 그 오지랖 넓은 독신의 징글징글한 무리 속에 내가 포함된 건 당연지사일 테고. 아무튼 지난 주말 내내 노란 바탕에 앙증맞은 고양이가 그려진 이 책을 독파하는 데 시간을 보내느라 정신이 혼미했다. 마리여사네 포유류 아홉 가족의 얽히고설킨 이야기 속에 빠져있다 보면 어느새 자신이 고양이 인간, 강아지 인간이 된 듯 한 착각에 공중부양을 시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개에 관한 오래된 기억 하나.
중학교 몇 학년 때인지 기억이 가물거린다. 하여튼 그 즈음에 우리 집에는 쭈쭈라는 잡종(아니, 비순종)수캐한마리가 자라고 있었다. 쭈쭈라는 이름은 아버지가 지어주셨는데 입으로 ‘쭈쭈’거리며 부르기 쉬우라고 지어주신 이름이다. 아버지는 특별히 그 개를 아주 사랑하셨는데 약주를 드신 밤이면 대문을 열고 들어오시며 "쭈쭈야, 아빠 왔다!“라고 외치곤 하셨다. 쭈쭈는 멀리서도 아버지의 발자국 소리를 귀신 같이 알아채고 컹컹거렸다. 저절로 엄마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살가운 풍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개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에게 여쭸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개를 잡아 개소주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유난히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던 쭈쭈는 그렇게 아버지와 큰 형부의 몸보신을 위해 장렬히 전사했다. 나는 아침저녁으로 개소주를 한 방울도 남김없이 시원하게 들이키는 아버지를 보며 혐오감을 느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우리 집에서 길렀던 개들은 대개 쭈쭈와 같은 운명의 길을 걸었다. 우리 집 남자들의 몸에는 틀림없이 개의 피가 흐르고 있을 것이다.
고양이에 관한 오래된 기억하나.
초등학교 저학년 때 쯤. 이모 댁에서 새끼고양이 한 마리를 얻어왔다. 이름을 지어야 하는데 엄마가 실찐이로 지으란다. 살찐이는 어미고양이의 이름인데 고양이는 다 살찐이라고 부르는가보다 했다. 여동생과 나는 살찐이라는 이름이 재미있어서 “살찐아~ 살 쪘나, 안 쪘나?”라며 놀리곤 했다. 갈수록 애교와 장난이 늘어가는 고양이를 보는 낙이 쏠쏠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양이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집을 나가 버렸다. 엄마가 원래 고양이는 한번 집을 나가면 안 들어온다고 무심히 말했다. 동생과 나는 도저히 엄마처럼 무심해 질 수가 없어서 온 동네를 뒤졌지만 살찐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의 상실감이 너무 커, 꼬리달린 짐승에게는 절대로 정을 주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개에 관한 몇 년 전 기억 하나.
몇 년 전 친하게 지내던 직장동료 언니의 집에 놀러갔다. 독신인 언니는 집에 다섯 마리의 개를 기르고 있었다. 회사에서 하도 언니가 자랑을 해서 개들의 미모가 뛰어날 것이라는 상상은 했지만 막상 거실에 들어가 보니 상상했던 것 보다 더 예쁜 푸들과 마르티즈 종이 경쟁하듯이 달려들었다. 다섯 마리가 모두 언니의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니 그 광경이 참으로 볼만했다. 하지만 왠지 결혼을 할 생각은 않고 개들에게만 둘러싸여 사는 언니의 모습이 그때는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자식처럼 개들을 뒤치다꺼리하는 언니의 모습이 왠지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것처럼 보였다. 저런 정성으로 제 아이를 낳으면 얼마나 지극정성일꼬... 그런 생각을 잠시 했었다. 어렸던 그때는.
고양이에 관한 가장 최근의 기억 하나.
일 때문에 만나 언니, 동생, 하는 사이가 된 언니가 있다. 남편과 이혼하고 중학생 딸 하나를 키우고 있는데 어느 날 길고양이 하나를 데려다 키우더니 고양이 박사가 돼 버렸다. 수컷인 그 고양이를 중성화 수술시키고 딸내미보다 더 비싼 음식을 사 먹이며 디카로 찍은 사진을 자랑삼아 보여주기도 했다. 내 눈에는 길가다 발길에 차이는 흔하디흔한 고양이로 보였지만 언니에게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둘째아들이었다. 어느 날 언니와 만나 저녁을 먹기로 한 날. 언니가 저녁을 먹기가 무섭게 부랴부랴 귀가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엥? 하며 바라보는 내게 양해를 구하더니 고양이 밥 때문에 일찍 집에 가야한다나 뭐라나. 에휴... 이러다 고양이 한 마리 때문에 인간관계 다 끊어지겠다. 어쩔 수 없이 밥만 먹고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고양이 때문에 버림 받은 기분이었다.
마리여사네 고양이 마리와 도리, 타냐와 소냐, 그리고 충견 겐과 노라, 모모의 좌충우돌 동거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내게도 고양이와 개에 관한 추억담이 새록새록 떠올라 기록해 본다. 어린 시절 대가족 속에서 자라다보니 자연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과도 친해질 기회가 많았지만 요즘처럼 애완용으로 키우진 않았다. 당시에는 동네마다 개 짖는 소리가 요란했고 지금처럼 길고양이가 득실대지도 않았다. 그냥 개와 고양이, 인간이 한데 어우러져 자연의 일부처럼 부대끼며 살았던 것 같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가 예전보다 좋아진 듯 보이지만 언제부터인가 버려진 개들이 늘어나고 길고양이가 늘어나면서 실제로는 더 강퍅해 진 느낌이다. 현대인들은 뭐든 필요에 따라 소유하려고만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나는 첫 장을 읽자마자 마리여사의 팬이 되었다. 아니, 제목을 잃는 순간 이미 그녀와 나의 동질성을 발견하고 쾌재를 불렀다. 나도 어느새 예전에 그토록 불쌍히(?) 여겨 마지않았던 노처녀 언니와 비슷한 연배가 되었다. 결혼을 이야기하기엔 너무나 멀리 와 버린 나이가 되고 보니 오히려 결혼이라는 제도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 것도 같다. 결론은 인생에 있어 결혼이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 때 독신인 친구들끼리 모이면 매번 하는 소리가 있었다. 결혼은 싫지만 아이는 하나 낳아서 기르고 싶다고! (헉! 뱉고 보니 매우 위험한 발언이다. 미성년자 독서금지?) 우리나라 법률상 독신은 입양도 안 되니 어쩌면 반려동물을 키우는 독신가구들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독신에게도 입양의 기회를 준다면 아이들을 해외로 보내는 일 따위는 줄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요네하라 마리 씨처럼 요즘 유행하는 표현으로 골드미스는 아니지만 나는 나 나름 독신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살고 있다. 문득 외로움에 봉착할 때도 있지만 고독을 즐기는 법도 어느 정도 터득한 것을 보면 독신이 체질인 모양이다. 하지만 아직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어릴 때 묻지마 가출을 한 고양이가 준 상처도 분명 그 이유가 되겠지만 그들을 도저히 잘 돌 볼 자신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책 속의 마리 씨도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을 걔네들에게 투자하고 있는지... 내 몸 하나 건사하기에도 벅찬 나로서는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이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나도 애완견이나 고양이를 정말 키우고 싶다는 욕망이 불쑥불쑥 솟아올랐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인간에게 느끼는 소외감 때문에 동물을 기르지는 말자라는 결심을 한다. 그 빈자리가 채워지는 날 어쩌면 나도 모르게 기르던 개나 고양이를 버리게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개와 고양이 중 어느 쪽이냐 하면 개 쪽이다. 주인의 은혜를 배은망덕으로 갚는다는 고양이의 속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인지 평생을 주인을 위해 희생하는 개에게 더욱 정이 간다. 우리 쭈쭈는 주인을 위해 정말 살신성인하지 않았던가. (미안하다, 쭈쭈야, 아버지와 형부, 오빠를 대신해 내개 사과할게.) 그런데 책을 읽으며 고양이에 대해 새롭게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가령 새로 고양이가 들어오면 이전에 있던 고양이는 주인의 사랑을 잃는 것이 두려워서 신입을 괴롭히거나 괜히 오해해 가출을 하는 경우가 있고(혹시 우리 살찐이도???) 혼자 키우는 고양이는 자신을 사람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완전히 잠에 곯아떨어진 고양이일지라도 콘크리트 벽이 가로막고 15미터 떨어져 있더라도 쥐가 갉아대는 소리를 놓치지 않는다거나, 고양이 언어는 만국공통어 라는 것 등등 말이다.
책을 읽는 도중 문득 문득 잔뜩 취하신 채 집 안으로 들어오시며 “쭈쭈야, 아빠 왔다!”라고 호기롭게 외치시던 젊은 시절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눈시울이 불거졌다. 이제는 뵐 수 없는 아버지. 대가족 장손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셨던 아버지는 그렇게 자신의 힘듦과 외로움을 푸셨는지도 모른다. 가족들에게 할 수 없는 푸념도 쭈쭈 앞에선 장난스럽게 풀어놓으실 수 있었으리라. 다섯 마리의 개를 바라보던 동료 언니의 따뜻했던 눈길도 새롭게 각인된다. 고양이 밥을 주기 위해 자리를 뜨던 그 언니의 마음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다음번엔 내가 먼저 말을 꺼내야겠다. 책을 통해 배운 고양이의 특성을 자랑삼아 늘어놓으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마리여사네 아홉 가족이 언제나 행복하길 빌어본다. 그동안 가족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그 후의 이야기도 무척 궁금하다. 나도 언젠가는 마리여사처럼 포유류가족을 이루고 살게 될지 모르겠다. 어쩐지 그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동물에 대한 사랑은 박애정신의 궁극이라고 한 황인숙 시인의 말이 그런 나를 자꾸 채근하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