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 스물여섯의 사람, 사물 그리고 풍경에 대한 인터뷰
최윤필 지음 / 글항아리 / 201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날 새벽. 오랫만에 일찍 눈을 떴을 때의 세상은 왠지 낯설었다. 매일 전쟁하다시피 아침을 맞곤 했는데 흐릿한 미명이 커튼 사이로 비치는 이른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평소보다 몸도 가벼웠고 정신은 맑았다. 그런데 가슴을 채워오는 건 일찍 일어났다는 충만감이 아니라 무기력한 허무감이었다. 마치 딴 세상에 홀로 뚝 떨어진 것만 같은  으스스한 외로움이 엄습해 다시 이불로 어깨를 감싸야만 했다. 분명 익숙한 내 방, 내 침대였다. 어제도, 그제도, 한달 전에도 늘상 그 자리에 있던 가구들, 그 장소였다. 아무 것도 달라진 건 없었다. 그날 밤. 오랫만에 만난 친구는 마흔의 나이를 걱정하며 흑염소를 넣은 보약 한 재를 주문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중년의 여자에게는 흑염소가 좋다는 말을 침이 마르도록 해대는 친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4월인데 느닷없이 흩날리는 눈발을 맞았다. 문득 세상도 나도, 뭔가 고장난 게 틀림 없다는 생각에 갑자기 서러움이 복받쳐 올랐다. 일순간 모든 것이 방향성을 잃고 헤매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 그전에... 정말 살아는 있는 것일까?  

  그랬다. 삶은 때로 매정하게 나를 구석으로 내몰다가 어르다가 했다. 밀고당기는 연인들처럼 티격대격하다가 어느날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땐 나이 마흔을 넘긴 중년의 여자가 거울 앞에 서 있었다. 남들 다 하는 결혼도 못한 여자. 현실과는 담을 쌓고 아직도 꿈이라는 추상을 찾아 헤매는 여자. 주류도 아닌, 비주류도 아닌, 삶의 태도마저 어정쩡해져 버린 여자. 이성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끝없이 추락하는 좌절과 비탄을 맛보고 있을 그 즈음... 이 책, [어느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를 만났다. 이 책에 끌렸던 건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안으로 들어간 게 아니고 바깥으로 들어갔다니... 흔히 바깥으로 나갔다고 표현하지 않나... 어딘지 현재의 시름많은 내 처지와 맞닿은 지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몽글몽글 솟아올랐다. 각자 독특한 사연을 간직한 스물여섯명의 사람과 사물, 공간, 풍경들... 그들의 성긴 틈새에 동그마니 앉아있는 내가 보였다. 나는 저자인 최윤필 기자의 노련함에 압도당했다가 결국 조근조근하게 사연을 풀어내는 초보 인터뷰이가 되어 있었다. 첫느낌의 머쓱함과는 달리 시간이 갈수록 그와의 인터뷰는 한없이 따뜻하고 편안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삼성이라는 재벌기업이 '초일류기업'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대대적인 홍보를 하면서 우리의 의식 속엔 오로지 1등만이 기억되고 존재하기 시작했다. 이런 사회풍조를 어느 한 기업의 홍보때문이었다고 예단하기는 곤란하겠지만, 당시 '역사는 2등을 기억하지 않는다'던 삼성의 획기적인 광고문구는 성장지향적인 정부의 정책과 맞물려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고 그 영향은 현재까지 유효하다. 광고의 힘이었을까? 삼성은 말 그대로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했고 세계적인 기업의 반열에 올랐다. 해마다 대학생들의 취업 1순위는 언제나 삼성의 차지였다. 하지만... 그 광고를 보고 자란 수많은 젊은이는 과연 일류국가의 일류국민이 되었을까? 거슬러 올라가보면 나도 그 광고카피에 매료된 청춘 중의 하나였다. 세계화를 부르짖는 열풍에 휩쓸려 새벽 댓바람부터 영어학원 문턱을 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지조없이 시류에 휠쓸렸던 청춘이었고 그 여파로 아직까지 자아실현에 목을 매는 신세가 돼 버렸다. 요즘 TV예능 프로그램에서 어떤 개그맨이 외치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1등이 되기 위해, 주류의 품에서 기득권을 획득하기 위해 경주마처럼 달리고 달렸지만 결국 1등 언저리에도 가보지 못한 채 트랙에서 이탈한 자의 비애... 바로 나한테 대고 외치는 소리같아 무릎을 쳤다.
 

  이 책의 최고 미덕이라면 피사체를 바라보는 최윤필 기자의 삐딱한 시선과 그런 삐딱함 뒤에 포도송이처럼  알알이 맺혀있는 인간미와 참신함을 발견하는 재미일 것이다. 처음엔 세속적인 기준으로 분명 문의 안쪽에 있는 기자가 풀어내는 문 바깥의 세계가 미심쩍었다. 이해하는 척하면서 젠체하거나 기자의 공명심으로 잣대를 갖다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있었다. 하지만,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바깥으로 들어갔다'라는 문장을 조어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분명 보통사람이 찾아내지 못하는 진정성을 끄집어내 줄 것 같은 기대감도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줄곧 놀랐다. 한권의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절친한 대화를 나눈다는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삶과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사이 그들의 언어는 나의 언어가 되었다. 때로는 먹먹함으로, 때로는 절박함으로, 때로는 후련함으로 다가온 유쾌한 수다였다.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지팡하는 일이 없다는 불혹의 나이에 비로소 나는 내가 '안'이 아닌 '바깥'에 존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급작스런 혼돈이 아니었다. 국가와 자본이라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허덕이다가 스스로 찾아낸 구명의 방식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나는 비로소 온전히 바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효용이나 가치의 세계로 병합되려는 시대에, 세월의 속도를 감내하지 못해 바깥으로 밀려난 이도 있고 안쪽에 포섭되지 않으려고 맞버티다 변방의 우짖는 새가 된 이도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안의 논리로부터 극복된 바깥의 존재들이 있다. 이 책은 바로 이 같은 바깥으로 들어가려는 시도이다.」

  누군가 나에게 안의 논리를 극복했느냐고 묻는다면 '아니오'라고 말할 수 밖에 없겠다. 만약 안의 논리를 완전히 극복했다면 자기연민에 빠져 허우적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모든 절망은 바깥의 허허로움이 주는 두려움과 외로움 탓이었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아쉬움 때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국가가 지원하는 사회안전망이 턱없이 낮고 소수자(아웃사이더)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수준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해 위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도 몰랐다. 마흔이 넘어서도 결혼을 못할 줄은. 그래도 30대엔 결혼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이라고 우길 힘은 있었다. 서른 세살. 어떤 이는 부러움의 눈길로 바라봤을 탄탄한 공기업을 내 발로 걷어차고 나왔을 때는 꿈이 있었고 패기와 열정도 있었다. 좀 더 빨리 내게 있는 상상력을 발견했더라면 더욱 좋았지도 모른다. 잃을 것이 없는 20대였더라면 좀 더 많은 시도를 해 보고 절벽의 끝에서 목숨을 건 일생일대의 자충수를 둘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30대 초반에 새로운 인생을 시험해 보기엔 다소 무모함이 있었다. 이것이 세월이 지나 스스로 내린 현실적인 진단이다. 꿈이고 뭐고 어쩌면 다 허세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누군가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호히 '아니오'라고 말할 것이 분명하다. 끊임없이 내 안의 나와 내 밖의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불현듯 불끈불끈 삶에 대한 애정이 용솟음침을 느낀다. 무겁게 축 늘어져 있던 마음에 누군가 신선한 공기라도 불어 넣어준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졌다. 
 

  최윤필 기자가 미려한 언어로 풀어낸 책 속의 사람들도 아름다웠지만 퇴역마 다이와 이라지, 40원의 폐지로 절판되는 책들, 민초의 삶을 품는 풀피리, 전흔과 망각이 공존하는 DMZ, 작은 네모 속 세상 우표 등의 이야기가 참 매혹적이었다. 스스로 바깥의 세계를 선택할 수 있는 인간과는 달리 그저 밀려나고 버림받을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처지에 묘한 공감이 갔다. 하지만  흘러가는 대로 삶에 순응하며 자연의 순리에 몸을 맡기는 것 또한 타고난 운명이라는 듯 초연한 모습에서 순한 위로를 받는다.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든, 무모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 당당해 보였다. 아하, 그렇구나. 이 책은 안과 바깥의 삶을 구분짓기 위해 씌어진 책은 아니겠구나.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볼 여유도 없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앞만 보며 달리지 말고 잠시 멈춰 서서 하늘도 올려다보고 바람도 느껴보고 사람들의 몸짓도 구경해 보라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자기가 선 곳이 어디이든 치열하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제 자리를 바깥에 둔다고 적당히 그 선에서 안주 한다는 건 아닙니다. 안이든 바깥이든 팽팽히 긴장하지 않으면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다들 치열한 마당들이니..."(P. 338) 이 두 줄의 문장이 마중물이 되어 가슴이 쿵덕쿵덕 뛰기 시작했다.  

  책의 감흥이 조금씩 잦아들 즈음... 다시금 가슴을 팔딱거리게 만든 문장을 만났다. 경향신문에 실린 고려대 자퇴생 김예슬 씨의 인터뷰 기사였다. 학내 대자보를 통해 '저항하지 않으면 젊음이 아니다'라고 당당히 외쳤던 김예슬 씨의 용기에 한껏 고무받았던 터라 그 일부를 옮긴다. 삶의 궤적을 바꾸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역사는 그런 사람들의 도전에 의해 진화하고 발전해 왔다는 걸 믿는다. 그들의 대부분은 집단가치의 울타리를 넘어선 사람들이다. 예컨대, '바깥'에 뿌리를 둔 사람들이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어느 하나를 극단적으로 선택해야만 하는 사회가 아니라, 변방과 중앙의 중간에 서서 다양한 생각과 선택이 유연한 경계인이 많아지는 사회를 꿈꾸며 글을 마친다. 이 또한 이상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을찌라도.

정해진 몇 개의 직업이 꿈이 되어버린 것들에 대해 분노하면서 다른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상상력을 너무 쉽게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예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