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라일락 시인의일요일시집 13
석민재 지음 / 시인의 일요일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정된 형태나 모양을 지니지 말고 물처럼 유연해야 한다. 물을 컵에 따르면 물은 컵이 된다. 물을 병에 따르면 물은 병이 된다. 물을 찻주전자에 따르면 물은 찻주전자가 된다. 물은 한 방울씩 떨어지기도 하고 요란하게 쏟아져 내리기도 한다. 물이 되어라, 친구여 – 이소룡

이소룡이 입었던 모양과 같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배꼽에 힘을 팍 주고 그녀는 걷는다. 어디로 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걷고 또 걸어서 보폭을 확보해나가는 일 그 걸음걸음마다 호흡을 심고 형상을 심고 세계를 심는 일 그래서 그 세계에 누군가를 초대하는 일 그게 바로 그녀의 시 쓰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에게 자주 충고한다. 그리로 가면 안 된다. 저리로 가라. 그렇게 걸으면 안 된다. 이렇게 걸어야 더 돋보인다. 사람들과 같이 걸어라. 앞서 걸어라. 하지만 그녀는 그런 소리를 가만히 두고 다른 길을 걷는다. 자신만의 보폭으로. 그리고
사람들이 흩어진 후에
-
울고 싶은 대로 울었다
내가
입을 다물면
돌이 소리 지를 것 같았다 - 울고 싶은 대로 울었다 중에서
그러니까 그녀의 울음조차 그녀의 걸음과 유사하다. 그러니까 그녀가 걷는 방식은 목적과 쓸모를 따라가지 않는다. 그녀의 걸음은 정말 정말과 진짜 진짜의 세계에 귀를 기울이는 방식.
-한곳에 오래 있으면 발이 간질거립니다 무리에 어울리는 요령이 없는 내게 사건을 순서대로 적는 습관을 길러라고 합니다 바람은 제가 불고 싶은 대로 부는 것 같아도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 화심 중
그러니까 자신만의 보폭을 확보하지 않으면 닿을 수 없는 세계에 그녀는 감히 닿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가가 귀찮아서 기뻐서 티격태격 다음에도 어색해서 처음이라서 말할 수 없어서 이게 전부라서 기가 차서 비 온다고 눈 왔다고 배부르다고 들었다고 좋겠다고 띄어서 아니 마구마구 붙여서 발전도 방향도 없이 가가를 이 만큼 저런 사례 축하한다고 반갑다고 맛도 멋도 아니라고 앞으로도 뒤로도 필사 필사적으로 기대도 이익도 없이- 가가는 가가 중에서
그러니까 어쩌면 그녀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걸음을 믿고 그 걸음이 이끄는 곳에 닿고자 하는 것 같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훌륭한 말들은
돌아서서 성큼성큼 가버립니다 – 내시경 중
그러니까 자신도 모르게 튀어 나가는 걸음이 이끄는 곳은 아름답고 쓸모 있다고 불리는 세계가 아니라 서러운 귀신의 세계 그러니까 그녀는 귀신의 계승자
조금 놓아버리면 조금의 평화가 오고 크게 놓아버리면 큰 평화를 얻을 것이니* 냉정하게 뒤집어도 나는 모방범이 아니다 유일한 계승자다 - 回 중
그러니까
- 나는 나를 뒤집어야 살 수 있다 – 오뚝이에게 중
그녀는 살기 위해 살아 있기 위해 어른의 문법과 어른의 세계에서 뛰쳐나와 걷고 또 걷는 중
-
모든 대답이 빠져나가도
우리는 노래로 전전할 수 있으니
입이 총구가 되지 않게
밥이 벽이 되지 않게 - 어떤 경우라도 나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중
그러니까 그녀의 걷는 방식은 그녀가 숨 쉬는 방식 그리고 노래하는 방식 춤추는 방식 악착같이 자신에게 닿고자 하는 울음
그래, 라일락

봄에 찾아온 그녀를 닮은 시집 울음을 감춰둔 이들에게 울고 싶은 대로 울라고 말하며 권하고 싶다.

모든 대답이 빠져나가도
우리는 노래로 전전할 수 있으니

입이 총구가 되지 않게
밥이 벽이 되지 않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