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레이의 겸손과 순종 - 겸손과 순종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한다
앤드류 머레이 지음, 임종원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40년동안 광야에서 헤매면서 순종의 열매에 대한 끔찍한 계시를 받은 이후에에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롭게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

지금은 차로 달리면 한두시간이면 지나갈 길을 애굽백성들은 40년이라는 시간동안을 거치면서 비로소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순종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 이었나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이것은 그들에게만 한정된 이야기가 결코 아니라는 것 또한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우리에게도 겉으로의 모습속에서는 순종과 겸손이 모양을 갖추고 있다고 할지라도 결코 그것이 진정한 하나님 앞에 내세울만한 모습으로써의 순종과 겸손인 것인가 하는 것은 누구도 자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닐것이다.

그만큼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에 것으로써의 순종을 자랑할 수 있는 이는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이해하고 생각하는 만큼의 순종은 누구나 작은 노력만 한다면 어렵지만 갖출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갖추어야 하는 순종의 모습은 우리들의 이해가 가능할 그만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적당한 미소와 작은 낮춤을 가지고 겸손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나를 감추고 숨기는 모습의 또다른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세상삶은 갈수록 나를 알리기 위해서 어떠한 모습으로도 무한 변신을 하기를 요구하고 또 그렇게 해야만 건재할 수 있다고 강요하는 듯 하다.

그런 문화속에서 생각속에서 우리는 결코 겸손해지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에덴동산에서도 천국에서도 역시 순종만이 우리를 존재하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만큼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조건은 참으로 우리가 이루기에는 힘들고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넘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축복은 우리가 무엇을 상상하든지 그 이상이 될 것이다.

우리는 가끔 아주 작고 얕은 나의 지식과 경험으로 모든것을 판단하고 결정한다. 그리고 누군가를 향한 건방진 정죄를 스스럼없이 하기도 한다.

나서려는 나를 주저앉힐수 있어야 하고 고개드는 나의 교만함을 억누룰수 있어야 하지만 우리에게는 주저앉힐 힘도 억누룰수 있는 힘도 아주 미약하기에 한 곳을 누르면 다른 한곳이 삐죽하게 고개를 들게 되는 것이다.

 

순종 없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예배하신 축복을 바라보고 요청하고 간직할 만한 능력이 있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에서 가장 본질적인 요소는 그것이 모두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중보기도만큼 우리에게 겸손과 순종을 선물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나를 위함이 아니라 그 누군가를 위한 부르짖음을 한다는 것은 그 만큼 내 안에 주님의 사랑이 임재하시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내안에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더 많은 겸손한 모습들을 위해 애써야 할 것이다.

모양만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가득 채울수 있는 진실함을 말이다. 그것이 우리를 겸손의 길로 순종의 길로 안내할 것이다.

 

어렵다고 생각하면 한 없이 어려운 것이지만 하나씩 하나씩 작은 것 하나에서부터 나의 욕심을 내려놓고 비워간다면 아마도 어느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이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의 품안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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