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시대의 갈림길
5장에서는 기미년 그날, 고종과 안중근, 왕족, 조선은 무엇을 했는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기미년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데, 초등학교 시절 국경일에 관한 노래대회를 한다고 삼일절, 광복절, 개천절 등의 노래를 배운 적이 있는데, 다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삼일절 노래 앞부분이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 이렇게 시작했었다. 기미년 1919년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기미년에는 삼일운동이 일어난 해. 그해 그들은 무엇을 했을까??
고종은 삼엄한 (분 단위) 감시 속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후궁들과 어린아이들을 보는 낙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고종이 왜 그리도 덕혜옹주에게 애정을 쏟았는지 이해가 갔다.
안중근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고 1910년 2월 14일 사형선고를 받고 3월 26일에 처형됐다. 그가 없었으면 지금의 대한민국도 없지 않았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왕족들은 일본 천황가의 일원인 왕족, 그 형제들은 공족으로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일본의 왕족보다는 높았고 재산 또한 막대했다. 그래서 살만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중에 고종의 5만 의친왕 이강은 다른 가족과 달리 독립 활동을 했다. "나는 독립된 우리나라의 평민이 될지언정 일본의 황족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p279) 이런 분도 계셨다. 의친왕 이강의 아들 이우는 일본 황실 반대를 무시하고 조선 여자와 결혼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1945년 히로시마에서 폭사했다고 한다.
결국 대한민국의 독립은 백성이 아니 시민이 이루어낸 결과라고 생각을 한다. 왕족들은 크게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무능력한 왕실 사람들, 지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