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지 않을 권리 - 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위한 인문학적 보고서
강신주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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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강신주 신드롬이라고 할만한 현상이 지나가고 있는 2014년의 끄트머리, 2010년작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통해 강신주를 본격적으로는 처음 접했다.  부제는 '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위한 인문학적 보고서'. 

신문의 칼럼이나 인터뷰 등 주로 쪽글을 통해 강신주라는 이름을 알게되어 매력을 느끼던 터에 도서정가제 확대시행 며칠 전에 이 책을 단돈 3천900원에 구했다.  성장지상주의의 함정에 빠진 현대 자본주의를 철학적으로 탐색한 역작으로, 3천900원의 열배 스무배는 가치가 있는 좋은 책이다. 

제목만 보면 흔해 빠진 자기계발서처럼 보이는데, 이 얄팍한 제목보다는 내용이 훨씬 깊고 풍부하다. 

여러 인문사회철학 고전들에 대한 일종의 컴패니언북이자 가이드북이다. 

 

즉, 강신주가 읽은 이상(李箱), 게오르그 짐멜, 막스 베버, 샤를르 보들레르, 발터 벤야민, 미셸 투르니에, 피에르 부르디외, 유하, 장 보드리아르 론(論)인 셈. 개인적으로 미셸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와 부르디외, 보드리아르의 이론들에 대한 독법이 아주 와 닿았다.  

 

투르니에가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의 모험>를 패러디해 쓴 소설 <방드르디...>에서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개념을 읽어내고, 부르디외의 <자본주의의 아비투스>의 난해한 구절들을 강신주만의 친절하고 쉬운 말들로 풀어 설명해주는 식이다. (여기서 아비투스는 쉽게 말하자면 구조, 의식구조 같은 것)

 

부르디외의 가장 중요한 저작으로 꼽히는 <구별짓기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는 미적 성향, 즉 취향의 차이가 어떤 계급이 자신을 다른 계급으로부터 구별짓게 하는 가장 원초적이고 직접적인 원리라는 게 핵심이다.

 

" 부르디외가 말했듯이 우리 주인공은 트로트를 좋아하는 그 사람의 취향에 대해 불쾌감을 느낍니다. 전시회장에서 서둘러 나오면서 주인공은 자신이 트로트를 좋아하던 그 사람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합니다. 부르디외가 "특수한 생활조건으로부터 만들어지는 미적 성향은 동일한 생활조건을 공유한 모든 사람을 함께 묶어주는 반면, 그 밖의 다른 사람들과는 구분시켜준다"고 말했던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구별짓기>에서 부르디외는 경제적 자본 외에 문화자본, 학력자본, 사회관계자본이 더 고려돼야한다고 주장하는데, 돈만으로 이 세 가지 자본을 확보할 수는 없고 지속적인 시간과 여유가 있는 상류계층만이 세 가지 자본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이 자본들이 하류층에서 상류층으로의 진입하려는 벼락부자들을 막는 방어막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밖에 유하의 시집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 <천일마화> 등과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를 연결지어 자본주의의 작동방식을 파헤치고 소비욕망이라는 굴레로부터 벗어날 대안을 모색하는 부분, 조르주 바타이유의 <일반경제> 이론을 설명한 부분 등은 그저 그렇게 산업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우리들의 눈을 뜨게 하는 부분이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여러 문제적 고전들에 대한 컴패니언 북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고 읽기가 쉽다. 원저자들의 책에 대한 징검다리 역할을 잘 수행한다. 그런데 "그래서 뭐 어쩌자고?"라는 생각을 지운 채 읽기가 쉽지 않다. 현대 산업자본주의가 인간을 소외시키고 상처주는 방식들에 대한 이해는 분명히 할 수 있으나, 대안의 일종이라고 제시된 가라타니 고진의 '생산-소비 협동조합' 등은 지나치게 순진하고 실현가능성이 떨어지는 얘기로 들린다. 저자 역시 이 점을 인정하고는 있다.

 

아무튼 이 책의 핵심은 이 문장으로 요약된다 "자본주의와 기독교는 미래의 좋은 삶, 장밋빛 삶을 약속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고된 노동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며, 각자의 삶을 경건하게 검열할 것을 요구합니다. 자본주의나 기독교가 제공하는 달콤한 미끼를 덥석 무는 순간, 우리의 현재와 삶은 깊은 허무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현재의 순간이란 잇을 수 없게 되지요"(303쪽)

 

이 책 말고도 강신주 본인이 가장 맘에 드는 저서로 꼽은 <김수영을 위하여>도 사 두었다. 강신주에 대한 비판도 여럿 있는 것으로 아는데, 내 생각에는 그냥 너무 잘나가니까 시기하는 목소리로 밖에 읽히지 않는다. 오랜만에 아주 좋은 거리의 철학자, 인문 소매상을 만난 것 같아 읽고 나서 기분이 좋다. 그의 책들을 더 읽어봐야 겠다. 

 

아 또, 이 책에 등장하는 책 중에 가장 땡기는 것은 투르니에의 소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이었다. (강신주의 설명에 따르면 투르니에는 철학자 질 들뢰즈와 고교시절 친구였는데, 들뢰즈가 철학을 너무 잘해서 자신은 철학에 소질이 없다고 판단, 소설로 길을 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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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여, 바다여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5
아이리스 머독 지음, 최옥영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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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lebenswelt/220177890166



영국의 여류소설가 아이리스 머독의 장편소설 <The sea the sea> 완독. 이 독특한 분위기의 긴 소설을 어떻게 해야 간략하고 함축적인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사랑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듬뿍 담긴 로맨스 소설이지만, 환타지와 희비극의 연극적 요소 또한 고루 녹아있다. 전반부 중반부는 셰익스피어의 헛소동이나 템피스트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1인칭 화자인 찰스 애로비는 셰익스피어 전문가로 영국의 저명한 연출가 겸 배우다. 한마디로 영국 연극계의 거물. 

 

독신이지만 여러 여자들과 연애사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그는 은퇴 뒤 잉글랜드 북부지역의 해변으로 전원생활을 즐기러 이사를 온다. 그러나 평화로운 전원 생활에 대한 소망은 처참히 깨어지고 마는데...소설은 이 해변의 집에서 이어지는 애로비의 사랑과 연애, 이별, 죽음 등의 연쇄 소동을 다룬다. 다채로운 개성을 지닌 등장 인물들이 끝없이 등장하는데 다음 사건 혹은 다음 등장인물이 누굴까 한치도 예측할 수 없다. 이 예측 불가능성이야 말로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저자인 아이리스 머독은 명문 옥스퍼드에서 철학 교수를 지낸 전후 최고의 영국 여류 지식인 중 한명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머독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이 소설에서 머독의 철학적 사유를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사랑, 연애, 죽음, 종교, 선불교, 각종 신화 등에 대한 생각들이 시각화되어서 또는 등장인물의 글과 말 등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개인적으로 철학의 관념적 사유보다 문학을 통해 구현되는 구체성에 더 끌리는 편이라 이런 부분들은 참 좋았다. 하지만 소설의 말미에서는 그 관념성이 너무 짙어지고, 소설이 갑자기 환타지로 흐르면서 사건과 등장인물의 개연성이 뚝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막판 50여 페이지를 놔두고는 소설을 붙잡고 있기가 힘들 정도로 집중력이 떨어졌다. 여기서 집중력은 독자로서의 나의 집중력이기도 하지만, 저자인 머독의 집중력이기도 하다.

 

그래도 이런 훌륭한 작품을 만나다니, 이 소설은 재독 삼독의 가치가 있다. 여기저기 좋은 아포리즘이 너무 많다.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이 간 인물은 귀엽고 열정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Lizzy였고, 많은 독자들이 그러하겠지만 신비에 휩싸인, 합리성과 종교적 성찰을 두루 갖춘, 애로비의 사촌 제임스는 가장 궁금한 인물이었다. 소설을 다 읽은 지금까지도 그의 정체가 궁금하다. 주인공 찰스 애로비가 감정적이고 즉흥적이고 열정을 대변하는 인물이라면 그의 사촌 제임스는 그 반대편에 서 있다. 합리성, 조용한 종교적 성찰, 신비주의, 금욕, 등등. 그런 제임스를 애로비는 질투하고 시기하지만, 결국에는 죽을 뻔한 사건에서 제임스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고, 평생의 짝사랑이었던 하틀리를 마음속에서 놔주는 과정에서 제임스의 조언을 받아들이면서, 제임스를 용서하는 것을 넘어서 자기 자신의 영혼의 쌍둥이 같은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인식은 결국 제임스의 죽음 뒤에서야 찾아오게    되는데...

 

이 소설은 머독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진다. 1919년생인 머독이 59세때인 1979년에 완성했고 이 소설로 부커상을 수상했다. 머독은 국내에 그리 널리 알려진 작가는 아니지만, 영미권에서는 이름을 날린 유명한 작가였다. 로버트 갤브레이스(조앤 K. 롤링의 탐정소설 쓸 때 필명)가 영국의 문단을 배경으로 해서 쓴 탐정소설 <The Silkworm>에도 '지가 뭐 아이리스 머독이라도 되는 줄 알아'라는 식의 대사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만큼 영국에서 `아이리스 머독' 하면 아직도 지적인 여류소설가의 대명사로 통하는 것 같다. 

 

아이리스 머독은 말년에 치매를 앓다가 죽었다. 문학평론가이자 같은 작가인 남편의 시선에서 본 아이리스의 젊은 시절과 늘그막을 묘사한 동명의 영화 <아이리스>도 꼭 봐야겠다. 케이트 윈슬릿이 젊은 시절의 아이리스를, 007 시리즈의 여성 정보국장으로 유명한 주디 덴치가 늘그막의 아이리스로 분해서 열연했다고 하니 꼭 찾아봐야할 영화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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