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창의 고전 다시 읽기
장희창 지음 / 호밀밭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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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도 언제나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고 사랑받는 책은 고전일 것이다. 많은 고전들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고전은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 시대마다 풍습과 생활 모습은 다르지만 가치와 사회의 모순을 보면 기원전이나 백 년 전이나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는 놀라우리만치 비슷한 점이 많다. 그래서 고전이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줄거리를 간략히 요약하자면 각 장마다 주제가 있다. 그 주제에 맞는 고전들을 작가가 생각하는 바를 담은 책이다. 즉 이 책은 다양한 고전 작품들에 관한 작가의 견해가 실린 서평이다. 사실 책 제목만 보고 고전 작품의 줄거리를 간략히 요약한 책인 줄 알았지만 예상과 달리 고전에 대한 작가의 서평이 담긴 책이다.

앞서 말했듯이 각 장마다 주제가 있다.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조건 없는 사랑만이 인간 구원의 길"
2부는 "자유혼의 열망은 민주공화국"
3부는 "배우고 때때로 실천하면 기쁘지 아니한가"
4부는 "바로 지금, 이곳에서부터"

이 책은 고전을 접하고 싶지만 선뜻 읽기에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그나마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해준 책이다. 현재의 상황과 맞추거나, 혹은 그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특히나 그 고전에서 꼭 얻어야 할 것들에 대해 알려주었다. 주제별로 나누어 고전들을 이야기해 주었기에 관심이 가는 주제에 해당하는 고전을 접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고전은 대가들의 건강한 정신과도 마주하게 해주면서도 그 시대가 처한 고통의 뿌리까지 마주하게 도와준다.

사랑, 운명으로부터의 보호
나는 모든 것을 집 밖에서 배웠다.
- 어린 제제의 독백

진정한 시는 꽃이 아니라 강물에 떨어져 바다로 떠내려가는 이파리들을 노래한다.
-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中

내 것은 모두 다 네 거야. 우린 가장 친한 친구잖아.
- 뽀르뚜가

초등학교 시절 때 읽은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는 읽으면서도 다 읽은 후에도 종종 내 가슴을 울렁이게 만드는 몇 안되는 책들 중 하나이다. 그 시절 고전이란 책을 고르기 힘들어하던 나에게 그나마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선택권일 뿐이었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는 그런 선택 속에서 뽑힌 그저 한 권의 책일 뿐이었다. 이 책 때문에 나는 거의 3개월을 후폭풍에 시달렸다.

가족이 있지만 커다란 고독 속에 살아가는 제제에게 뽀르뚜가 아저씨는 사막의 단비 같은 존재이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진실한 우정을 나누는 둘의 사랑은 그 당시 나에게 새로운 세계였지만 그만큼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당시 난 어른과는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친구란 또래 아이들만이라고 생각했다. 제제와 뽀르뚜가 아저씨는 내 강한 믿음을 깨부숴버렸다.

제..... 지금도 그 이름은 나를 울렁이게 한다. 슬프다. 안타깝다. 그리고 제제 그 아이가 대견하다. 그 아이의 고독과 외로움, 절망, 체념 등 복합적인 감정이 내 마음을 휩쓸어갔다. 그 당시 나는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그저 울었다. 울면서 읽었다. 지금 가만히 돌이켜보면 어린 나이에 그런 감정을 가진 제제가 한편으로 무서우면서도 슬퍼서 울었던 것 같다.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이해받고 있다는 사실이 제제를 달라지게 만들었다.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만 배우는 법이다. 기쁨은 마음속에서 빛을 발하는 태양이다. 행복도 잠시. 뽀르뚜가는 세상에서 가장 힘센 망가라치바 기차에 치여 죽는다. 망가라치바는 천민자본의 폭주 혹은 거스를 수 없는 인간 운명의 상징일 것이다. 커다란 슬픔은 제제를 철들게 하고 성장시킨다. 아빠는 다시 취직해 가족에게 웃음을 찾아 주었지만, 제제의 마음속 아빠는 이 세상엔 없다. 진실한 사랑 없이는 만남도 헤어짐도 무덤덤할 뿐이다.

위의 인용문은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에 대한 작가의 서평이다. 작가는 '조건 없는 사랑만이 인간 구원의 길'이라고 말한다. 나도 그리 믿고 싶다.

타자를 안다는 것은
생각해보니 어릴 적, 아버지가 폭력을 행사했을 때도 자기는 순응했지만, 고지식한 영혜는 곧이곧대로 대응했다. 자신의 성실함은 조숙함이 아니라 실은 생존을 위한 비겁함이었다. 기쁨과 자연스러움이 제거된 세월이었다. 문득 이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었다는 느낌마저 든다. 늦게나마 제대로 알려고 노력하는 인생은 아름답다.
- 채식주의자 中

아쉽게도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은 적이 없어서 내용은 모르지만 작가의 서평을 읽어보면 타자와 하나 되려는 그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타자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미래까지 우리가 늘 고민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작가는 '타자와의 절절한 마주침이 없으면 삶의 고양도 없다. 타자의 문제는 사람살이의 절대 화두이다.'라고 말한다. 과거도 그랬지만 특히 현재에서도 사람들은 사람과의 관계에 고민하고 고통받는다. 우리는 사람과의 관계에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상처도 받는다. 하지만 그만큼 관계 속에서 힘을 얻고 서로 사랑한다.

작가가 다룬 고전들을 보면 대부분 주제가 무겁고 암울했던 시대 속 작품들이다. 읽다 보면 사람에 대해 회의감이 든다. 그러나 책을 다시 읽어보면 안 보였던 것들이 보인다. 몇 년 전 우리 사회는 아픈 사건들이 많았고 과거에도 몇 번이나 나라를 빼앗길 뻔한 큰일들이 있었다. 작가는 그런 아픔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모습이 보인다. 작가는 38편의 고전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담담하면서도 다정한 문체로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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