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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내력 ㅣ 호밀밭 소설선 소설의 바다 2
오선영 지음 / 호밀밭 / 2017년 12월
평점 :
특별한 누군가가 아닌 우리 모두
[모두의 내력]에서 느낀 첫인상은 찜찜함이다. 제목부터 누군가의 은밀한 사생활을 몰래 엿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제목이 나에게 찝찝함을 주지만 그만큼 뇌리에 강한 이름이다. 이 책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 책을 떠올리면 제목이 선명하게 기억났다. 앞서 말했듯이 ‘내력’이 주는 의미는 강렬하다. 내력이라는 단어를 사전에 찾아보니 ‘지금까지 지내온 경로나 경력’, ‘일정한 과정을 거치면서 이루어진 까닭’, ‘부모나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유전적인 특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타인의 인생에 관심이 있지 않다. 오히려 무관심하다. 아주 유명하거나 특별한 사람이 아닌 이상 우리는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 즉, 자기 자신만을 생각할 뿐이다. 하지만 이 책은 독특하게도 ‘모두의 내력’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누군가의 내력이 아닌 우리 모두의 내력을 작가는 소설로 만들었다. 줄거리를 보면 각 단편 소설의 주인공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의 내력까지 짤막하게 다루고 있다. 다른 소설은 주인공을 부각한다는 느낌을 주지만 이 소설은 주인공과 주변 인물 그 누구 하나 부각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사실을 말하듯 서술할 뿐이다. 문체가 담담해서 건조하고 냉정한 느낌이 있다. 작가에게 주인공은 부각해야 할 특별한 대상이 아니고 아무도 궁금하지 않은 사람을 선택한 것에서 ‘내력’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닐까. 그들을 담담한 시선으로 작가가 바라보는 것 같다.
믿음, 나를 잡아줄 공간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오선영이라는 작가에 관해 알고 있는 사실이 전혀 없었다. 물론 지금도 그 작가에 관한 것은 잘 모른다. 그야말로 전혀 모르는 낯선 책과 마주한 것이다. 이 책은 총 8편의 단편 소설집으로 구성되어있다. 8편의 소설 모두 다른 이야기지만 소설에서 다루어지는 주인공들은 어떻게 보면 사회에서 외면받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이 있을 곳을 찾아 헤매고 있다. 저 자신의 존재에 안정감을 느껴야 할 장소가 없는 그들은 부랑자이다. 단편 소설집이지만 읽고 나면 비슷한 이야기들이 있다. [해바라기 벽]과 [밤의 행진] 그리고 [부고들]은 비슷한 소재를 사용하고 있다. 마치 시리즈 소설처럼 줄거리가 이어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세 편은 공통으로 ‘집’이라는 소재를 사용하고 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노려서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집’이라는 요소가 자주 등장한다. 그 의문을 ‘소설가와 만나는 시간’이라는 장에서 작가가 해소해주었다. 처음부터 의도를 가지고 ‘집’에 대한 이야기를 쓴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마음이 끌리는 주제를 택해서 소설을 지었다고 한다. 작품집을 본 후에야 집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이 책 곳곳에서 작가의 사상과 정서를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집’이란 소재는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다. 우리나라, 좁게는 부산이라는 이 좁은 땅에서 소설 속 인물들은 자신을 필요로 해줄 장소를 찾아 헤매고 있다. 이들 모두가 있을 곳을 찾고 있지만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다. [해바라기 벽]과 [밤의 행진], [부고들]의 각 주인공은 가난에서 벗어나 자신이 온전하게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찾는다. [로드킬]에서는 정규직이 될 수 있을 확실한 미래라는 공간을 그리고 [백과사전 만들기]는 앞의 소설들과 비슷하게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사회 속의 계급을 뛰어넘어 한 개인의 자존심과 인격을 뭉개지 않는 곳을 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상자]는 앞의 단편 소설과는 다른 양상과 분위기를 보인다. 자신을 사랑하고 지탱해줄 가족이라는 공간을 찾아 헤맨다. 앞의 소설들은 주로 돈과 생계에 관련된 것이지만 냉정할 정도로 가족에 대한 언급이 없거나 부정적이다. 반면에 [상자]는 이 단편 소설집에서 유일하게 가족의 사랑과 애정을 무의식적으로 갈망하고 있다. 지금까지 현실 상황 때문에 좌절감을 느끼는 인물들이었다면 [상자]는 앞 소설들보다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갈등을 다룬다. 그리고 모든 소설이 예민하고 힘든 주제지만 마지막 소설인 [상자]에서 갑자기 분위기와 주제가 무거워진다.

오선영 작가의 소설은 여성이 강인한 인물로 나온다면 남성(아버지)은 무기력하거나 존재가 부재해있다. 유일한 남성 화자인 [로드킬]의 K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소심한 남성으로 등장한다. 그 외의 소설에서도 아버지의 자리는 지워져 있거나 무기력하게 그려진다. 그와 반면에 여성 화자들은 갈등에 놓인 상황 속에서 감정을 표출하거나 스스로가 생각하는 최선의 돌파구를 직접 행동으로 옮기는 대담함을 보인다. 남성의 무능함과 여성의 강인함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도가 절로 연상된다. 하지만 단편 소설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해바라기 벽]과 [칼] 그리고 [상자]를 제외하고 주인공을 여자로 할지 남자로 할지 성별을 정하는 것은 의미 없다고 본다. 즉, 어떤 성별이든 그 상황에 부닥칠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앞서 작가의 문체에 대해 짤막하게 말했는데 이 단편 소설집은 가독성이 좋아 문장이 빨리 읽힌다. 하지만 [로드킬]과 [칼]은 난해함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로드킬]은 K가 인턴에서 정규직이 되려는 노력이 한순간 무너지는 소설이다. 몇 번 읽으면 줄거리가 보이지만, [칼]은 그중에서 어디까지 난해함이 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 같다. 지금 서평을 쓰고 있는 나도 여전히 [칼]이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무엇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다. 뒤에 작가의 작품에 관한 생각이 적혀 있는데 [칼]에 관한 언급이 없다. 이 소설집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한 작품이다.

변두리 속 그들
오선영 작가의 문체는 담담하고 냉정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일까. 이 책의 인물들은 메마르고 무언가 결핍이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작가도 그에 맞춰 최대한 누구 하나 동정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 책에서 나오는 상황들은 실제로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함부로 도촬 당하는 십대 여성, 전세도 얻기 힘들어 월세를 내며 살아가는 사람과 함부로 사람을 오해하고 상처받는 사람에 관한 주제 등을 다룬 작품이 많이 없는 것 같다. 지금도 무수히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지만 쉽게 외면받고 잊힐 수 있는 현실을 소설로 끄집어낸 점에서 앞으로의 작가 행보가 기대된다. 몇몇 작품이 난해하고 이해가 안 되는 점이 분명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변두리에서 외면받는 이들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도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