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런의 공식 - 욕하면서 끌리는 마성의 악당 만들기 어차피 작품은 캐릭터다 1
사샤 블랙 지음, 정지현 옮김 / 윌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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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전부터 어딘가 검게 비틀린 구석이 있는 빌런 캐릭터를 어쩌면 그 행동을 예측할 수 있는 슈퍼히어로보다 훨씬 좋아해 왔다. 특히 슈퍼히어로가 넘쳐나는 요즘, 많은 사람들이 <바스터즈>의 한스 란다(나치즘은 절대로 묵과해서는 안 되지만 - 나는 당연히 쇼샤나의 편이다 - , 극 중의 모든 인물을 '가지고 노는' 도구로 쓰이는 그의 언어 감각은 정말이지 천재적이다),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 모든 <셜록 홈즈> 시리즈의 모리어티, <어벤져스>의 로키와 같은 매력적인 빌런에 끌리기 마련이다. 빌런과 히어로의 경계를 넘나드는 안타고니스트와 안티히어로에 대한 챕터 또한 존재한다. <처음 만나는 자유>의 수잔나는 이 책에서 안티히어로로 분류된다. 아마도 사랑해 마지않는 <와호장룡>의 소룡은 안타고니스트에 가까울 것이다.

작법서인 만큼, 이 책은 빌런 캐릭터를 어떻게 단순한 클리셰(검고 우아한 옷을 입고, 시가를 피면서 고운 털을 가진 페르시아 고양이를 무릎 위에서 쓰다듬는 남성)에서 벗어나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촘촘하게 짜인 스토리에 녹아든 캐릭터로 만들 것인지 유쾌하고 밝은 문체로 - 책의 표지와 강조하는 데 쓰인 초록색 글씨는 꼭 코믹스를 연상시킨다 - , 그러나 세심하고 상세히 조언한다. 또한, 소설을 쓸 때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갈등과 같은 공식이나 트롭trope처럼 알아야 하는 용어를 설명해 주어 초보 창작자인 나에게는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책에 예시로 나온 빌런과 히어로는 우리가 한 번쯤은 접해봤을 만한 캐릭터들이 대부분이다(아마 공포영화를 싫어한다면 몇몇 캐릭터는 제외되겠지만 말이다). 예를 들자면 매트릭스의 네오neo가 있다. 매트릭스 1편은 1999년작이지만, 여전히 네오의 존재감은 작년에 매트릭스: 리저렉션이 나왔을 정도로(정말, 정말 재밌었다!) 선명하고, 우리는 아직도 장난삼아 허리를 뒤로 젖히는 장난을 한다. 또 다른 대표적인 캐릭터로 히어로인 토르와 빌런인 로키 형제가 있을 것이다. 마블 시리즈를 한 편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토르 시리즈부터 어벤져스 시리즈를 거쳐 지금의 토르 4까지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는 이 형제의 서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빌런인 로키의 팬인 점도 재미있다). 이 책은 마치 훌륭한 빌런이 나오는 명작만을 추천하는 아카이브 같기도 하다. <아메리칸 사이코>의 패트릭 베이츠만(책에서는 표기가 다른 것으로 기억한다)도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빌런이다 (지금은 특유의 강박적인 모닝 루틴이 유튜브 영상에서 많이 패러디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명함 장면'을 봐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저자 사샤 블랙의 조언과 설명은 체계적이고,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을만큼 간결하며 쉽다. 사샤 블랙은 심지어 도표를 이용하여 '반영웅'의 범주를 설명하기도 하고, 챕터의 마지막 장마다 자신의 요지를 요약해서 정리해놓을 정도로 빌런 캐릭터를, 그리고 새로운 창작자들을 진심으로 아낀다. '프로타고니스트'이자 '빌런'인, 보다 복잡한 경우를 설명할 경우 저자는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를 비교하여 정확히 정의를 내릴 뿐만 아니라 섬세하게 예시를 들어 설명한다. 이 경우에 해당하는 인물은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이다(이 작품의 경우, 히어로는 클라리스 스털링 요원이 된다). 또한 빌런은 어쩔 수 없이 현대 사회와 엮여서 설명될 수밖에 없는데, 저자는 이 점을 예리하게 꼬집으며 사회의 기준은 계속해서 변화한다는 것을, 상황에 따라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지가 그 인물을 결정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또한 저자 사샤 블랙의 빌런과 신인 작가들에 대한 열정과 애정은 남다르다. 그는 포스트잇으로 계속해서 메모를 할 것을 강조하고 끊임없이 주의깊게 책을 읽어내려가도록 우리를 독려하여 창작의 세계로 독자들을 이끈다. 그리고 그는 대표적인 예시로 토르와 로키를 설명하며 두 인물이 왕좌를 원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짚어낸다. 또한, 그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소개하며 캐퓰릿 가문과 몬태규 가문 사이의 증오 자체를 빌런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빌런은 '무형'과 같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이때, 이 책의 제일 큰 장점은 '정신 질환'을 가진 빌런을 결코 가볍게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신 질환을 가진 빌런을 분류해 소개하되, 작가는 이를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 다룰 것과 충분한 자료 조사를 거칠 것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이와 같은 작가의 태도를 통해 세상을 존중하면서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하여 배울 수 있었다.

사샤 블랙은 다양한 엔딩 또한 다루고 있다. 해피엔딩, 열린 결말, 행복하지만은 않은 수많은 결말 등에 관한 것이다. 그는 클리셰에 최대한 빠지지 않는 방법을 찾는 동시에 어째서 예시의 저자가 그러한 결말을 선택했는지를 빌런의 입장에서 설명한다. 히어로가 아니라 빌런의 시각으로 책을 바라볼 수 있다니, 너무나도 흥미롭지 않은가?

이 책을 접할 때 '작법서'라는 장르에 두려워 할 필요는 전혀 없다. 창작자이든 아니든, 히어로보다 빌런을 좋아하고 유쾌한 문체를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이 책을 권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빌런 캐릭터들과 반갑게 조우하는 자리가 될 테니 말이다. 빌런에 관심이 있다면, 선보다 '악'을 다루는 장르나 관점을 좋아한다면 분명 이 책을 즐겁게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운이 좋게 서평단에 당첨되어 <빌런의 공식>을 빨리 접할 수 있었다. 즐겁고 유익한 책을 보내주신 윌북 출판사에게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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