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양귀자 지음 / 쓰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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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운명을 거부한다. 절망의 텍스트는 그러므로 나의 것이 아니라 당신들의 것이다.

모든 금지된 것은 유혹이고 아름다움이다. 죽음조차도.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란 제목과 푸른 색 표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아무 정보 없이 이 책을 계산했던 날이 생각난다. 이 도서는 선명한 파랑과 그 속의 균열처럼 모던하면서도 강렬한 몰입감을 자랑하는, 어찌 보면 괴상한 책이다. 장담하건대,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완전히 끝을 맺을 때까지 손을 떼거나 눈을 돌릴 수 없을 것이다.

여성을 위한 상담소에서 일하는 대학원생 강민주는 남성을 혐오한다. 여성 혐오의 미러링 같은 게 아니다. 그는 남성을 정말 벌레 보듯이 대한다. 그는 자신의 사상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가장 유명한 영화배우이자 만인의 이상형인 배우 백승하를 납치해, 남성이 가진 본성이 얼마나 추악한지 폭로하고자 한다. 강민주가 철두철미하게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동안, 강민주의 곁을 지켜 온 황남기는 품어서는 안 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 강민주의 손 안에서 진행되던 납치극과 이야기는 점차 예측할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시원시원하고 파격적인 전개는 어떤 면에서는 부조리함을 다룬 연극을 떠올리게끔 한다(특히나 마지막 장면에 가까워질수록 말이다). 강민주의 가차없는 시선과 빈틈없는 일처리는 카레이싱만큼이나 급박한 긴장감과 속도감을 선사한다. 그와 황남기가 납치를 실행하는 과정은 어떠한 트릭보다도(나는 코난도, 김전일도, 셜록 홈즈 시리즈도(영화든 드라마든) 정말 좋아한다!) 철두철미하며, 강민주는 그 과정에서 조금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자신을 '손님에게 호의를 베풀 줄 아는 친절한 사람'으로 포장한다. 안전과 생존을 위한 백승하의 대응도 우리의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특히 파국 직전 백승하의 소원이었던 연극을 준비하면서, 둘의 관계는 더 이상 납치범과 피해자만으로 규정지을 수 없게 된다. 이 소설은, 특히 (의도적으로 바깥과의 연락을 끊어 낸)강민주의 집 안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세계처럼 보인다. 언론과 경찰마저도 체스의 '폰'처럼 강민주의 의도에 맞게 움직이고, 세 등장인물인 민주, 승하, 남기만이 소설 속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하지만 불청객이 들이닥치고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 동떨어진 세계의 암묵적인 평화는 파괴되고 만다.

이 소설을 읽고 통쾌함을 느끼신 분들도 분명 있으실 것이다. 전화기를 붙잡고 울음을 터뜨리는 내담자들은 결국에는 생존과 돈이라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때로는 남아있는 애정 때문에 남성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강민주에게 집착하고 스토킹하는 남자가 등장하기도 한다. 슬프게도, 여전히 크고 작은 혐오와 폭력은 실재하고, 이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란 불가능하다. 이러한 폭력을 강민주라는 캐릭터는 가차없이 비난하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반응을 정확히 예측해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머리 꼭대기에서 누구보다 영향력이 큰 백승하와 강한 무력을 지닌 황남기를 포함해 모두를 조종하는 것처럼 굴던 강민주의 세계와 '오만'은 '고작' 남성의 손에 의해 와해되고 만다.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가 잊고 있었던 현실이 갑자기 해일처럼 쏟아져 들어온다.

속도감이 빠르고 흡입력이 좋은 소설을 찾으시는 분, 추리물을 좋아하시는 분, 아플 정도로 통찰력이 깊은 문장을 좋아하시는 분, 그리고 한국 문학을 사랑하시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즐겁게 읽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350 페이지가 넘어가는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책갈피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이 책은 속도감과 몰입감, 그리고 '순수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종종 등장하는 강민주의 노트는 아름답고 날카로운 문장들이 가득하고, 가차없을 정도로 단호한 강민주의 말투는 어떤 면에서는 속이 시원하기까지 하다. 누군가의 팬이시라면 '백승하' 역이 누구일지 상상해 보시면서 읽어봐도 재미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개인적으로 하오체를 매우 선호하는지라 백승하의 대사를 읽을 때면 늘 즐거웠다). 이 글이 부디 호기심을 자극하길 바란다. 플롯부터 예측 불허인 이 소설이 어떻게 흘러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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