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의 사랑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20
막스 뮐러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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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하고 서정적인 마음을 그려낸 <독일인의 사랑>은 개인적으로 정말 아끼는 작품이다(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이 책을 두고두고 펼쳐 보곤 했다 - 나에게는 주기적으로 펼쳐 보게 되는 책이 늘 있다. 예를 들어 중요한 시험이 끝나면 무조건 해리 포터를 마법사의 돌에서 죽음의 성물까지 - 이가 출간되기 전에는 가장 최근에 발간된 파트까지 - 전부 읽곤 했다). 책을 펼쳐 보는 것만으로도 풀꽃과 잔디, 그리고 초여름의 푸릇한 나뭇가지와 바람 향기가 '나'의 마음과 함께 아스라이 쏟아져나오는 것만 같다. <독일인의 사랑>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부터 시와 사상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묘사와 설명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이러한 화려함은 독자의 시선을 흩뜨리는 대신 오히려 '사랑'이라는 책의 메세지를 강조한다. 이 책에 담긴 '나'와 '마리아'의 마음은 결국 주체하지 못한 채 다양한 은유들과 함께 '쏟아지고 흘러나오게' 된다. 마음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토해내는' 두 인물의 상황은 오히려 그 동경과 사랑의 애절함과 순수함을 부각시킨다.

어찌하여 이 같은 무의식과 지순의 현존이 종식을 고할 수밖에 없는가? 무엇이 우리를 이처럼 완전하고 편재하는 행복감에서 몰아내어, 우리로 하여금 느닷없이 어두운 생의 한가운데 외롭게 홀로 서게 하는가?

"대체 낯선 타인이라는 게 뭔데요? 그럼, 다정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좋아하면 안 된다는 건가요?"

"그들을 좋아할 수는 있단다. 그렇지만 그걸 겉으로 드러내면 안 되는 거야."

"그럼,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이 옳지 않은 일인가요? 왜 내가 좋아하는 마음을 보이면 안 되는 거지요?"

<독일인의 사랑>이라는 제목은 마리아에 대한 '나'의 애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한 소년이 청년으로 자라나면서 겪고 깨닫는 마리아에 대한 동경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자, 이를 통해 깨닫는 삶에 대한 고찰이자 예찬이기도 하다. 어린아이 시절의 '나'가 애정을 느끼는 존재에게 어째서 사랑을 표현할 수 없는 건지 질문하는 부분에서도 이와 같은 주제의식은 잘 드러난다. 독일인인 '나'는 소년에서 청년으로 자라나면서 삶을 경험하고, 서서히 삶과 타인에 대한 애정과 아이러니를 느낀다. 결국, '독일인'인 '나'가 이해하고 사랑하고자 하는 대상은 마리아 단 한 사람이 아닌 자신을 둘러싼 세계 전체가 된다.

그래서 나는 곧잘 생각에 잠겨 앞에 서서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 여자도 낯선 타인에 속할까?' 하고 자문해보곤 했다. 그럴 때 그녀는 종종 내 머리에 손을 얹곤 했다. 그러면 마치 무엇인가 내 온몸을 통해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나는 도망칠 수도, 뭐라고 입을 뗄 수도 없이 꼼짝없이 사로잡혀 그녀의 그윽하고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눈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래서 너희들 모두에게 반지를 하나씩 가져왔어. 지금은 이것을 너희들 집게손가락에 끼워두렴. 그리고 너희들이 자라면 그 반지를 차례로 옮겨 끼는 거야. 나중에는 새끼손가락밖에는 맞지 않게 되겠지만...... 그렇지만 평생 동안 이 반지를 끼는 거야, 응?"

어린아이에서 소년으로 자라난 '나'는 애정을 적절히 표현하는 방법을 어느 정도 배우고, 성에 살고 신분이 높으나 몸이 매우 약한 마리아를 만나게 된다. '나'는 마리아를 만나고 그의 눈을 마주하자마자 마리아에게 사로잡힌 채 서로가 같은 영혼을 소유하고 있음을 느낀다. '나'는 마리아가 마치 유품처럼 남기고자 한 마지막 반지를 받기를 거부하고, 이를 마리아에게 돌려준다. '나'는 마리아의 희생을 거부하고, 삶에 대한 의지이자 사랑을 마리아에게 돌려준다.

어느덧 소년은 어엿한 청년이 되었다. '나'는 그동안 마리아를 수호천사로 여겨 왔으며, 단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고 독자에게 고백한다. '나'는 마리아를 절대적인 삶의 기준으로 삼아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해 왔다. 즉, '나'가 마리아에게 품는 감정은 단순한 애정이나 에로스적 사랑이 아닌 동경이자 플라토닉한 사랑에 가깝다. 마리아는 'Du'(가까운 사람을 부르는 2인칭 단수)라고 '나'를 칭하며 반겨주고,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영혼의 충만함을 느낀다. 마리아 또한 '나'가 돌려준 반지를 아직까지도 새끼손가락에 낀 채로 간직하고 있다. - 다음 장에서 마리아는 "내가 이렇게 오래 살게 되리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견신례날 이 반지를 당신에게 드렸을 때, 이미 곧 세상을 하직하리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이토록 여러 해를 살아오며 여러 가지 아름다운 일을 누리다니요"라 고백한다. - 그러나 마리아는 '나'가 손에 키스를 하는 것을 신분의 차이와 자신의 병세 때문에 허용하지 못한다.

그렇게 그녀는, 마치 한아름 꺾어 모은 꽃을 서슴없이 잔디 위에 다시 던지는 어린애처럼, 자신이 수집한 생각을 남김없이 털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처럼 기탄없이 내 마음을 열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괴롭혔다.

그녀에게 그런 점을 솔직히 털어놓고, "당신은 나를 모릅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게 간절한 나의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진실 그대로 구현할 말이 아무래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마리아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충만해하고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을 느낀다. '나'와 마리아는 초상화와 시, 그리고 신학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나누면서 견고한 우정을 쌓아 간다(이는 '죽음'과 가까이할 수밖에 없었던 마리아의 환경에서 기인하지만, '나'는 이를 방해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나'는 마리아처럼 자신의 마음을 훌훌 털어내고 고백하지 못하는데, 이는 '나'가 진정으로 마리아를 사랑하고, 그 점을 뼈저리게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리아의 친구로 남는 것만으로도 충만함을 느꼈던 '나'에게도 고난이 찾아온다. 마리아의 주치의 선생님은 마리아의 건강을 위해 '나'가 그를 떠나 여행을 갈 것을 권한다. '나'는 별 수 없이 제안을 받아들이고('나'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는 마리아였으므로) 여행을 떠나 자연에서 깨달음을 얻고 돌아온다. 그 깨달음이란, 자신은 '도피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 왔으며, 최대한 빨리, 그리고 오래 마리아의 곁에 머무를 수 있도록 돌아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나'는 마리아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데 성공한다. 성공하나 후회한다. 괴로워하는 마리아의 모습을 보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은 없으니까.

나는 당신에게 다정하고 솔직하게 대했지요. 왜냐하면 당신을 그토록 오래 알고 지냈고, 또 당신 곁에 있으면 아주 편안했으니까요. 왜 이런 말까지 내가 모조리 하는지 모르겠군요. 그리고 당신을 사랑했으니까요.

결국 마지막 장에서 마리아에 대한 '나'의 마음은 흘러넘쳐 터져나오고야 만다. '나'를 향한 마리아의 사랑 또한 마찬가지다. 마리아는 결국 자신 역시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고백하고야 만다 - 이를 어째서 말하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로. '나'의 억눌러 온 마음은 마리아를 향한 절절한 고백이자 약속으로 이어진다. 그들은 신분제나 필멸과 같은 인간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고자 하나, 이는 결국 사랑과 두 사람의 의지 앞에서 무용지물이 된다.

"왜 당신은 나를 사랑하나요?" 그녀는 결정의 순간을 마냥 미루려는 듯 나직한 소리로 물었다.

"왜라니요? 마리아! 어린애한테 왜 태어났느냐고 물어보십시오. 꽃한테 왜 피었느냐고, 태양에게 왜 비추느냐고 물어보십시오. 나는 당신을 사랑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겁니다."

많은 독자들이 그러했듯이, 나 역시 이 대사 덕분에 이 책을 읽었고, 결국에는 사랑하게 되었다. 플라토닉하고 순수한 사랑일지라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는 결국 소리높여 터져나올 정도로 강력하다. '나'는 마리아에게 고난을 함께 할 것을 약속하고, 마리아는 결국 '나'의 마음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튿날 새끼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를 남긴 채 사망하고 만다. 여기서 주치의 선생님의 비밀이 밝혀진다. 그는 마리아의 어머니를 사랑했지만, 어머니의 안녕을 위해 후작과 어머니가 결혼하게끔 자신의 행복을 희생한다. 하지만 마리아의 어머니는 마리아를 출산하다 사망하고야 말았다. 주치의 선생님의 삶에 대한 사랑은 곧 마리아에 대한 사랑이었던 것이다.

몇 년이 지난 이후에도 '나'는 마리아에 대한 사랑, 곧 삶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이를 비통하게 여기는 대신, 오히려 이를 통해 위로를 받고 아직까지도 세상을 둘러싼 사랑을 느낀다. 마리아를 사랑함으로써 '나'는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이는 결코 비극적인 서사가 아니다. 오히려 이 작품은 단순한 러브스토리보다는 '나'의 성장을 그린 이야기에 가깝다.

싱그럽고 풋풋한 풀밭을 밟아 가며 철학과 시를 노래하는 이 책은 '인생의 아름다움'을 마리아와의 사랑을 얘기하는 부분 외에서도 깨닫게끔 돕는다. <독일인의 사랑>을 통해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지, 무언가를 사랑함으로써 나의 삶이 얼마나 행복하고 충만해질 수 있는지를 다시금 알게 되었다. 지금 가장 사랑하는 존재인 우리 고양이에게 감사인사를 전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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