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선집 1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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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운애착


  엄마와 딸 사이의 관계를 그린 작품 중 내가 가장 처음으로 접한 것을 소개하면서 이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사나운 애착을 사랑하는 독자께서는 분명 유명 시리즈인 길모어 걸즈도 알고 계시지 않을까. 시리즈에서는 엄마 로렐라이와 딸 로리의 인생을, 그들 사이의 유쾌한 수다와 진한 유대감을 따뜻한 시선으로 함께 그려나간다. 엄마와 (어쩌면 지나칠 정도로)친밀하고 가까운 사이로 자라난 나는 그 드라마를 십 년 넘게 돌려보면서 끊임없이 웃었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엄마와 딸 사이가 저토록 가까운데 저렇게 평화로울 수 있다니!(변명을 하자면 늘상 그렇지만은 않다) 비비언 고닉의 사나운 애착은 예측할 수 없는 극심한 폭풍우처럼 변화무쌍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안에서 살아 움직일 수 밖에 없는 보다 현실적인 모녀관계를 누구보다도 통찰력 있고 날카로운 문체로 거침없이 써내려가고 있다. 나 또한 오늘 엄마와 단 둘이(어쩌면 고양이를 포함하여 셋이) 커피와 파와 오뎅을 잔뜩 넣은 국물떡볶이를 신나게 만들어 먹었고 남동생이 일으키는 소음 때문에 곧바로 한바탕을 했다. 

  비비언 고닉은 유년시절 거주하던 아파트의 계단을 뛰어다니듯이 과거와 현재를, 브롱크스와 맨하탄을 자유자재로 오르내린다.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는 서술은 그녀가 그려내는 모녀관계와 이웃들과의 관계와도 잇닿아 있다. 과거는 흐려지기도 하지만 엄마와 딸의 한 마디에 파도처럼 기억과 감정은 휩쓸리듯 쏟아진다. 모녀의 대화도 그러하다. 고의 여부와 관계없이 던져진 한 마디, 한 단어는 지나치게 짧은 도화선, 제어장치가 없는 스위치로 변하고 모녀는 모든 감정을 서로에게 쏟아부으며 전력을 다해 싸워낸다. 어머니가 없을 때 타인과 대화를 나누는 상황에서도 그러하다. "말도 안 돼!" 와 같이 어머니는 갑자기 딸의 내면에서 튀어나와 자신의 절대적인 의견을 피력하고, 딸은 그 말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 저자가 떠올리고 그려내는 이미지와 기억은 지나칠 정도로 생생하고 산만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일직선상으로 흘러가는 타임라인은 적어도 꿈과 기억 속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니까. 

  "여기도 써 있네. 여자도 대학에 가야 한다고." 와 같은 응원, "그러니까 네가 다 써봐라. 처음부터 끝까지, 잃어버린 걸 다 써야 해."와 같은 최고의 찬사를 어머니에게 받은 후로도, 작가는 '엄마한테 어떻게 보일 지는 나도 모른다'라 말한다, 모녀는 여전히 한 마디에 폭발해 분노를 서로에게 쏟아내고 자신을 방어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기억과 여정과 삶을 공유하며 떨어지지 않는 것을 선택한다. 불안정하지만 영원한 공존이야말로 지극히 어머니와 딸 다운 결말이자 관계가 아닐까. 

 

이 책이 글항아리의 비비언 고닉 선집의 제 1편이라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반가웠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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