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성 인권으로 한 걸음 - 가해자를 만들지 않는 성교육을 향하여
엄주하 지음 / 을유문화사 / 2020년 5월
평점 :
내가 받아왔던 성교육을 생각하면, 별로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이론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차이, 생식기에 대한 설명, 그리고 성을 금기시하는 무언가의 분위기에 항상 압도되곤 했다. 그런 부족한 성교육들이 아쉽다. 사회에 나가 보니, 성교육의 부재로 인한 갖가지 문제들이 곪아서 터지고 있었다.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n번방 사건 등 혐오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잘못된 인식들로 인해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던 중, <성 인권으로 한 걸음> 이라는 책을 접하게 됐다. '성 인권'이란 말이 생소하게 들렸다. 배운 적 없는 워딩이었기 때문이다. 성교육이라고 하면 말그대로 '성별'에 더 방점이 찍히게 되는데, '성 인권'이라는 단어를 보면 '인권'이라는 워딩에 더 큰 중심이 가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선진국에서는 성교육의 목표가 성범죄 예방임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이 목표를 가지고 일관적으로 교육이 이뤄지고 있었다. 하지만, 국내의 상황은 너무나도 다르다. 그동안 한국 성교육은 주로 보건교사들이 체육시간에 '생물학적 성 영역', '성폭력 영역'등 단순한 차원에서 수업하는 방식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성교육에 대한 어떤 철학이 부재했고, 일관적이지 못한 교육과정도 문제였다.
미투와 같은 거대한 담론들이 숨죽여있다가 폭발해버리고, n번방 사건처럼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성범죄들이 도처에 깔려있다. 심지어 세대를 넘나들며 10대부터 기성 세대들까지 모두에게 적용된다.
책을 읽으며, 내가 가졌던 성에 대한 고정관념부터 돌아봤다. 나는 모순적인 이중 잣대를 가졌던 건 아닌지, 또는 성별로 구분지어 갈등에 일조하고 있던 것은 아닌지 돌아봤다. 모두가 자신이 가진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엎는 것으로부터 근본적인 성교육이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피해자가 숨어 들어가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피해를 알릴 수 있고, 그보다 전에 가해자를 만들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성교육에 대한 패러다임은 '성 인권'에 대한 명확한 인지부터 시작해야 한다. 25년 경력의 보건 교사로서,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성' 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깊게 깨달아왔던 저자의 경험들이 녹아난 이 책은 지금 우리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것 같다.